그녀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된 거라고 믿었던 때
나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내 감정을 흘려보낼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몇 안 되는 친구들 중,
몇 안 되는 이성 친구 하나가 있었다.
그 친구는 나와 그녀 모두를 아는 사이였다.
내 상황을, 내 감정을,
내가 감추려 해도 들켜버리는 감정선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술자리가 길어질 때면
나는 늘 그녀 이야기를 꺼냈고,
그 친구는 늘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정신 차려.
너를 사랑해 주는 사람 만나.”
하지만 그 말이
내 가슴에 박힌 적은 없었다.
아니, 애초에 들릴 리가 없었다.
그 친구는 말하곤 했다.
“걔는 너 그냥,
오래된 동네 오빠쯤으로 생각해.”
그 말이 사실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조차 감사했다.
오래된 동네 오빠.
버릇처럼 연락할 수 있는 사람.
잠깐 고민이 생겼을 때 전화할 수 있는 사람.
그 정도라도 그녀 곁에 있을 수 있다면,
그땐 그걸로 충분했다.
그녀에게
좋은 사람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을 때,
처음엔 이상하게 질투보다 축복이 앞섰다.
“그래,
그녀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된 거지.”
진심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축복은 조금씩 갈라졌다.
행복해지는 그녀를 보며
나는 점점 초라해졌고,
기뻐하던 마음은
언젠가부터 질투와 짜증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의 행복을 바랐다.
나보다 그 사람이 더 소중했기 때문에.
그래서—
그녀가 웃는다면,
그게 나 때문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그땐…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