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의 사랑 #8 나는 먼저 나를 버렸다

나는 먼저 나를 버렸다

by 박동욱

언젠가 우리 집 공원 근처를 걷다가
낯선 고급 스포츠카가 눈에 들어왔다.
불쑥, 이런 생각이 스쳤다.

‘저런 차가 있으면,
그녀는 나를 사랑할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사랑하겠지’도 아니고,
그럴 ‘확률’이 높아지겠지—
그 말 안엔 이미
내가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스스로의 판단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 차 안에서
키스하는 남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여자—
내가 사랑한 그녀였다.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심장이 아니라,
내 존재 전체가
그 순간 조용히 꺼지는 기분이었다.

아,
그녀에게는 새로운 남자가 생겼구나.

고백도, 다툼도,
이별도 없는 패배였다.
졌잘싸가 아니라,
비벼보지도 못한 콜드게임.
경기장에 들어가기도 전에
점수판은 기울어 있었다.

그들은 모르겠지.
내가 얼마나 오래,
그녀를 사랑해 왔는지.
내가 매번 스스로를 지우며
그녀의 곁에 서 있으려 했던 걸.

그 후로 연락은 없었다.
익숙한 공백.
익숙한 무소식.
그녀의 세계에서 내가 지워지는 게
이제는 너무 당연하게 느껴지는 순간.

하지만 가장 참기 어려운 건—
그 모든 걸 겪으면서도
나는 그녀에게 묻지도 않았다는 거다.
슬프지도 않은 척했고,
충분히 이해하는 척했다.

왜냐하면,
버려질까 봐,
먼저 나를 버렸으니까.

마음을 접고,
감정을 눌러 담고,
스스로에게
“괜찮아, 이럴 줄 알았잖아.”
몇 번이고 되뇌며
나는 조용히 나 자신을 포기했다.

물론,
그건 나 혼자만의 감정일 수도 있다.
애초에 시작되지 않은 사랑이었을지도.

하지만,
그 사랑을 가장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은
분명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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