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한 우리』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거나, 오래 바라던 목표가 눈앞에 나타날 때의 설렘은 묘하다.
마음 한쪽에서 작은 불꽃이 일고,
‘이번에는 정말 잘해내야지.’
그 다짐이 스스로를 단단하게 잡아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다짐은 종종 무게로 변해 나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처음엔 그 무게를 ‘건강한 긴장감’이라고 생각했다.
적당한 압박은 나를 더 집중하게 만들고,
제한된 시간과 높은 목표는 내 안의 잠재력을 끌어올린다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깨닫게 된다.
그 무게가 적당선을 넘는 순간,
그건 긴장이 아니라 옭아매는 족쇄가 된다는 걸.
잘하고 싶은 마음은 본래 긍정적인 힘이다.
그런데 그 마음이 ‘반드시 잘해야 한다’로 바뀌면, 그때부터 마음은 경직된다.
시야는 좁아지고, 작은 변수에도 마음이 크게 흔들린다.
심지어 내가 가진 실력과 능력조차 발휘하기 힘든 상태에 이른다.
이건 마치 연필을 너무 세게 쥐는 것과 같다.
선명하게 글씨를 쓰겠다는 의지가 오히려 연필심을 부러뜨린다.
힘은 있지만, 그 힘이 방향을 잃어버린 것이다.
나는 한동안 완벽을 기준으로 삼고 살았다.
결과는 흠잡을 데 없어야 하고, 과정에서 흔들림이 보여서도 안 된다고 믿었다.
그 완벽의 기준은 누구도 내게 강요하지 않았다.
그건 내가 스스로 세운 잣대였고, 그 잣대 위에서 나를 시험대에 올려놓았다.
문제는, 그 기준이 결코 만족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90점을 받아도 아쉬움을 찾고, 잘 해낸 하루 속에서도 작은 흠을 발견했다.
완벽을 향해 달릴수록, 만족은 멀어지고 불안은 커졌다.
어느 날, 이런 말을 들었다.
“완벽이 아니라, 충분함으로도 괜찮다.”
그 말은 처음엔 타협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곱씹어 보니, 충분함은 포기가 아니라 ‘여유’였다.
목표를 ‘완벽’에서 ‘충분’으로 옮기는 순간, 마음이 조금 느슨해졌다.
그 느슨함이 주는 숨통 속에서, 나는 오히려 더 나다워졌다.
생각이 부드러워지고, 실수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게 됐다.
마치 꼭 쥔 주먹을 펴는 순간, 손끝에 피가 다시 도는 것처럼.
사람들은 흔히 “부담감이 동력이 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지만, 그 동력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 힘은 시작은 빠르지만, 마모도 빠르다.
반대로, 부담을 줄이고 나를 가볍게 만드는 힘은 오래 간다.
그건 ‘나는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아니라, ‘못해도 괜찮다’는 허락에서 나온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허락이 있을 때 우리는 오히려 더 잘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니 시도할 수 있고,
틀려도 괜찮으니 생각이 넓어지고,
결과가 전부가 아니니 과정이 더 충실해진다.
이제는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이렇게 다짐한다.
“이번엔 충분히 잘하면 돼.”
그 한마디가 나를 가볍게 하고, 시야를 넓히며, 내 안의 힘을 고르게 흐르게 만든다.
그렇게 하면, 나는 더 오래, 더 멀리 갈 수 있다.
완벽이 내 발목을 잡았던 시간들을 돌아본다.
그 무게는 내 열정을 더 빛나게 한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빛을 가리고 있었다.
완벽 대신 충분함을 선택하자, 그제야 내 열정이 제 온도로 타올랐다.
혹시 지금, 잘하고 싶은 마음이 무거움으로 변했다면
결과의 목표치를 살짝 낮춰보자.
그건 패배가 아니라, 나를 지키는 기술이다.
그 기술이 익숙해지면, ‘잘하고 싶은 마음’은 더 이상 짐이 아니라 날개가 된다.
완벽을 내려놓는 순간, 마음은 가벼워지고
그 가벼움이 나를 끝까지 데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