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한 우리』
살다 보면 나를 너무 쉽게 놓아버린 순간들이 있다.
그때는 그게 배려라고 생각했고, 양보라고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야 알았다.
그건 배려도 양보도 아닌, 나를 지키지 못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하루의 계획을 포기한 날들,
관계를 지키고 싶어 내 마음과 다른 대답을 했던 대화,
작은 불편함을 피하려고 내 의견을 삼킨 순간들.
그렇게 조금씩 나를 덜어내다 보면, 어느새 나는 희미해진다.
겉으로는 관계가 무난하게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 안에서는 작은 균열이 자란다.
그 균열은 소리 없이 넓어지고,
결국은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은 종종 경계를 흐리게 한다.
타인의 문제를 내 문제처럼 짊어지고,
그들의 불편함을 덜어주는 것이 나의 몫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경계가 무너진 자리에는 이해가 아니라 소진이 피어난다.
소진은 처음엔 느리게 찾아온다.
그러나 한 번 깊어지면, 회복하는 데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는 건, 나를 지키지 못했다는 후회다.
살아보니, 나를 지키는 건 ‘아니요’라는 단어에서 시작될 때가 많다.
그 한마디가 차갑게 들릴까 두려웠지만,
결국 그건 나를 존중하는 최소한의 방법이었다.
거절은 타인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잃지 않게 하는 방어선이었다.
나를 지키지 않으면, 결국 타인과의 관계마저 오래 유지할 수 없다.
내가 나를 존중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존중해 줄 수 있을까.
관계의 건강함은 서로의 경계가 있을 때 가능하다는 걸 이제야 안다.
나를 너무 쉽게 놓아버린 순간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여전히 무겁다.
하지만 그 순간들이 있었기에,
나는 이제 안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흔들리고, 어떤 이유로 나를 먼저 포기하는지를.
그 깨달음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부끄러움 속에도 배움은 숨어 있다.
그 배움이 쌓이면, 다음에는 나를 더 잘 붙잡을 수 있다.
이제는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이번엔 나를 먼저 지킬 거야.”
그건 이기적인 선택이 아니다.
나를 지켜야만, 타인을 향한 마음도 오래 지속될 수 있다.
혹시 지금 누군가의 기대와 상황 속에서 자신을 희생하고 있다면,
잠시 멈춰서 이렇게 물어보자.
“이 선택이 나를 지키는가?”
그 질문에 선뜻 ‘예’라고 답하지 못한다면,
그건 잠시 내려놓아야 할 짐일지도 모른다.
나를 지키는 일은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내가 나를 붙잡지 않으면, 세상은 생각보다 쉽게 나를 흘려보낸다.
그리고 그 순간을 놓치면,
다시 나를 되찾는 데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오늘도 조금 더 단호하게, 조금 더 단단하게,
나를 먼저 선택하려 한다.
그 선택이야말로 내가 나를 오래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