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회. 평범함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

『불안정한 우리』

by 박동욱

가끔은 평범함이 나를 작게 만든다. 특별한 무언가를 내놓지 못한 날이면 어깨가 조금씩 내려앉고, 하루는 또렷한 표정 없이 회색빛으로 흘러간다. 화면 속 사람들은 끝없이 빛나고, 소식은 늘 누군가의 성취로 반짝인다. 그 속에서 내 조용한 식탁, 오래된 머그컵, 닳아 있는 산책로의 아스팔트는 초라해 보인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나는 왜 이렇게 평범할까.”

그런데 이상하다. 평범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한 번 사라지면 그 빈자리는 생각보다 크다. 매일 켜던 전등이 나간 저녁처럼 방은 금세 낯설어지고, 익숙한 자리에서 벗어난 의자는 괜히 삐걱거리며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평범함은 늘 거기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을 뿐, 내 일상의 구조를 조용히 지탱해 온 굵은 기둥이었나 보다.




나는 어느 날부터 일부러 보폭을 줄였다. 크게 달리지 못하는 날에는 더 또렷하게 걷기로 했다. 그렇게 걷다 보면, 기적까지는 아니어도 단서 같은 것들이 나타난다. 물을 올려둔 주전자가 끓기 직전에 내는 낮은 숨소리, 창문 틈으로 들어와 책상 모서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햇빛,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모자를 고쳐 쓰며 건네는 모르는 노인의 작은 인사. 이런 것들은 뉴스가 되지 않는 사건이지만, 내 하루의 바닥을 매끄럽게 닦아준다.

그래서 나는 오늘의 작은 기쁨 세 가지를 적어본다. 막 끓인 보리차를 머그컵에 따를 때 올라오는 고소한 김, 그 향이 목을 지나 배까지 내려앉는 감각. 버스를 기다리던 정류장에서 스카프 사이로 스며든 바람, 그 순간 내가 누군가의 스냅사진 속 인물이 된 것 같은 착각. 저녁 무렵 하늘 가장자리에서 번져오던 분홍빛, 그 색이 나를 살며시 어루만지던 느낌. 기록해놓고 나니 오늘은 갑자기 빈약하지 않았다. 평범한 시간을 통과한 나에게, ‘살았다’는 단정한 문장을 줄 수 있었다.




평범함은 종종 비교의 자리에서 초라해진다. 비교는 눈을 좁혀 지나치게 밝은 것들만 보게 만든다. 그 틈에서 오늘 내가 이룬 작고 견고한 일들은 쉽게 빠져나간다. 오래된 책장을 정리한 일, 냉장고 속 시든 상추를 데쳐 새 반찬을 만든 일, 친구에게 안부를 묻는 짧은 메시지를 보낸 일. 트로피처럼 반짝이지는 않지만, 이 일들은 삶의 질서를 회복시키는 실무자들이다. 대단함이 내일을 약속해 주는 건 아니지만, 평범함은 내일도 돌아오겠다고 매일같이 약속한다. 약속을 지키는 것의 품격은 생각보다 크다.




나는 가끔 상상한다. 만약 지금의 모든 평범이 닫혀버린다면 어떨까. 익숙한 마트가 문을 닫고, 매일 걷던 골목에 공사가 시작되고, 밤마다 밥 냄새가 새어 나오던 창문들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면. 그제야 알게 되겠지. 일상은 내가 소유하고 있던 가장 넉넉한 풍경이었다는 것을. 그 넉넉함이 사라진 자리에서 우리는 고백할 것이다. 평범함은 사라지면 그리워지는 가장 단단한 행복이라고.

이 깨달음이 하루의 감상으로만 끝나지 않으려면, 나는 계속 작은 기록을 남기려 한다. 거창한 일기장이 아니어도, 휴대폰 메모장 빈칸에 세 줄이면 충분하다. 오늘이 나를 사랑했다는 증거를 세 가지 남기는 일. 언젠가 마음이 흔들려 “나는 별게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어질 때, 그 메모는 조용히 반박해 줄 것이다. “너는 너의 하루를 돌봤고, 그 하루가 너를 지켜냈어.”




평범은 바닥이다. 화려한 춤은 바닥이 평평해야 출 수 있다. 사람을 지치게 하는 건 비범함의 부재가 아니라, 바닥의 균열일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바닥을 닦는다. 설거지를 끝내고 마지막 컵을 뒤집어 놓는 마음으로, 책상 위 연필을 제자리에 두는 마음으로, 불필요한 미안함을 조용히 거두는 마음으로. 그 반복이 쌓일수록 나는 덜 흔들리고, 더 단단해진다. 누가 보지 않아도, 내 안의 관객석에서 나는 나를 향해 조용히 박수를 친다.

특별함은 찾아오면 반갑고, 오지 않아도 괜찮다. 나를 작게 만드는 건 평범함이 아니라, 평범함을 깎아내리는 내 시선이었다. 오늘의 세 가지 기쁨을 적고 나면, 나는 더 이상 초라하지 않다. 나는 분명히 살았고, 그 사실이 내일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다. 그렇게 하루가 하루를 데려오고, 수많은 평범이 나를 지탱한다. 그 단단함 위에서 언젠가 특별함이 지나가더라도, 나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무대가 비면 객석이 있고, 낮이 지면 저녁이 있고, 아무 일도 없는 날에야 비로소 삶은 내게 말을 건다. “여기 있잖아. 다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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