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스케치북:하루마음그리기
9월을 맞으며 가을을 손에 쥔다고 생각했다.
해야 할 일을 정리했고, 마음을 단정히 묶어두었다.
그런데 좋은 사람들과 잔을 기울이다 보니, 마음이 풀려 있었다.
몇 번의 술자리가 지나고 정신을 들어 올리니 달력은 벌써 22일.
술은 이제 하루의 기쁨이 아니라 사흘의 공백을 데려온다는 것을, 몸이 먼저 알아버렸다.
억지로 몸을 이끌어 앉아도 결과물은 흐렸다.
시간을 채웠다는 사실만 남고, 시간에 내가 비워진 느낌. 젊을 때의 체력이 아직 내 편일 거라는 미련이 남아 있었지만, 그 착각도 여기까지였다.
외면하던 문장이 눈앞에 또렷해졌다.
“나는 술이 아니라 시간을 마셔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멈췄다. 22일 이후로 약속을 덜고, 잔을 내려놓았다.
불면의 꼬리표가 밤마다 따라붙지만, 적어도 아침을 되찾고 싶다는 의지는 깨어 있었다.
의지는 거창한 맹세가 아니라, 오늘의 흐릿함을 덜어내는 작은 걸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일찍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 일찍 무너지지 않기로 했다.
밤을 다 이기지 못하면, 아침을 조금 더 아끼는 방식으로.
나는 다시 루틴을 부른다. 정해진 시간에 자리를 펴고, 정해진 호흡으로 마음을 묶는다.
한 번에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기로 한다. 점진적으로, 아니 지속적으로.
꾸준함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라는 걸, 오래 돌아서 이제야 배운다.
오늘의 나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은 대단한 성취가 아니라, 흐르던 리듬을 다시 손에 얹어주는 일.
9월은 절반이 흘렀고, 남은 절반은 아직 맑다.
잔을 비우는 대신 창을 연다. 바람이 들어오고, 스스로에게 미뤄두었던 약속이 다시 포개진다.
내가 목표했던 것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멀어지지 않았다. 잠시 술에 젖어 흐릿해졌을 뿐, 사라진 적은 없다.
나는 오늘을 건너뛰지 않겠다.
취하지 않은 시간으로 돌아가, 느리게라도 내 쪽으로 걷겠다.
하루가 반나절만큼 맑아지는 그 지점부터, 가을은 다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