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함을 안다는 것

by 박동욱


소중함을 안다는 건, 한 번 더 같은 풍경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이 문득 멈춰 서고, 다시 빛을 찾게 되죠.

바로 그때 하루는 저절로 흘러가는 영상이 아니라, 손에 쥘 수 있는 작은 접시처럼 느껴집니다.

얇지만 분명하게 손끝에 전해지는 무게, 그리고 나를 따뜻하게 살려주는 온기가 차오릅니다.

감사란 그 접시에 조심스럽게 수저를 얹는 일과 비슷합니다.


잘 우러난 아침차 한 잔, “수고하세요”라는 짧은 인사, 오래 신어 편해진 운동화의 느낌,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1초 동안 열림 버튼을 눌러준 다정한 마음.

“고맙다”는 말을 속으로만 떠올려도, 흑백 같던 하루가 조금씩 색을 되찾기 시작합니다.

현실이 달라지지 않아도, 보는 관점이 달라지면 체감 온도도 달라집니다. 우리는 대개 무언가를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깊이 배웁니다.


곁을 떠나간 사람, 고장 나 움직이지 않는 몸, 어느새 멀어진 계절.

그래서 더 서두르고 싶어집니다. 아직 내 옆에 있을 때, 아직 본연의 역할을 해주는 동안, 아무 일 없는 오늘 하루에 먼저 고개를 끄덕여 보는 일.

많이 소중히 대해온 인연은 상실 앞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충분히 사랑하고, 충분히 고마워했다는 기억이 결국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소중함을 알게 되면,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집니다.


제때 밥을 챙기고, 잠을 지키고, 힘들 땐 잠시 멈추는 것. 무작정 버티는 게 늘 강한 건 아니고, 때론 자기 자신에 대한 무관심일 수도 있습니다. 오래 가고 싶다면 속도를 조절해야 하고, 함께 가려면 숨도 나눠야겠죠. 방법은 거창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름 붙여보는 것부터 시작해도 좋습니다.

“행복”처럼 거창한 단어 대신, 구체적인 장면들을 떠올려 보는 거죠.


늦은 밤 창가에 앉아 듣던 빗소리, 퇴근길 길 건너 손을 흔들던 누군가의 얼굴, 대화 끝에 번졌던 미소의 떨림. 이렇게 장면이 된 소중함은 흔들려도 쉽게 흐려지지 않습니다.

연습하는 방법도 어렵지 않습니다.

잠들기 전에 오늘 고마웠던 세 가지를 속으로만 다시 떠올려 보세요. 배수구가 막힘 없이 내려간 일, 지하철 안에서 내릴 틈을 만들어준 누군가의 신발, 옷장 깊숙이 있던 스웨터에서 퍼진 오래된 비누 냄새. 어쩌면 사소해 보이지만, 바로 이런 것들이 하루를 단단하게 해줍니다.

어느새 불평보다 고마움이 먼저 떠오르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소중함을 모를 땐 행복이 롤러코스터 같습니다.

오를 땐 신나고, 내리막에선 속이 뒤집히곤 하죠. 반면, 소중함을 아는 행복은 긴 산책과도 닮았습니다. 기쁨도, 무료함도, 바람과 먼지까지 버무려져 있지만 그 모든 걸 안고 끝까지 걸어갈 수 있습니다.

속도보다는 지속이 행복의 크기를 결정한다면, 감사는 가장 소중하게 쓰는 연료입니다.

비싸지 않고, 언제든 다시 채울 수 있으며, 조용히 우리를 멀리 데려다줍니다.


관계도 한층 투명해집니다. 부탁은 명확해지고, 사과는 빨라지고, 작별도 깔끔해집니다. “우리는 서로를 귀하게 여긴다”는 마음만 있으면 다툼도 소모가 아니라 조정이 될 수 있죠. 식탁은 뒤집어지지 않고, 그 위의 컵과 접시는 제자리를 잘 지키게 됩니다. 결국, 소중함을 안다는 건 세상을 더 넓게 가지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파고드는 일입니다. 더 많이 갖지 않아도, 더 크게 느끼는 법을 배우는 거죠. 똑같은 하루, 같은 시간에서도 더 많은 풍경을 발견하게 됩니다. 남들은 평범하다며 흘려보내는 하루 속에서, 우리는 맑고 작은 조각들을 하나씩 모읍니다. 그 조각들이 모여 우리를 버티게 하고, 다시 사랑하게 합니다. 오늘을, 이 얼굴을, 이 계절을 말이죠.


소중함은 대단한 철학이 아니라, 생활의 감각입니다. 잘 씻고, 잘 먹고, 잘 바라보는 일. 그러니 오늘도 조용히, 사소한 것들에 이름을 붙여보세요. 행복의 크기는 소유가 아니라 ‘주의’를 얼마나 기울이느냐에 따라 달라지죠. 그리고 그 주의는 언제나 지금, 내 마음이 닿아 있는 바로 그곳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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