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의 리더십

『끝까지 남는 사람』

by 박동욱


사람들은 “미안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문제는, 그 뒤에 오는 두 번째 문장이다.


“미안해, 근데 네가 알잖아, 상황이 그랬던 거.”
“미안하긴 한데, 나도 어쩔 수 없었다.”
“미안해. 원래 위에서 그렇게 하라고 했어.”


입으로는 사과하지만,
그다음 말은 천천히 책임을 밖으로 밀어낸다.
그래서 우리는 안다.
이건 사과가 아니라 방어라고.


그래서일까.
조직 안에서 진짜 사과하는 리더의 한마디는 오래 남는다.


“이번 건, 내가 잘못했다.”
“책임 나누지 말자. 일단 내 책임부터로 두자.”


이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리더는 자기 체면을 잠깐 내려놓고
팀 전체를 덮는 우산 하나를 편다.


어느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큰 고객사에 나가는 제안서에 큰 오류가 났다.
날짜가 틀렸고, 금액이 잘못 들어갔다.
고객사 담당자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 정도 규모의 회사에서 이런 실수가 나온다고요?”


회의실에 돌아온 팀은 얼어붙었다.
제안서를 만든 사람, 검토를 맡은 사람,
최종 결재 라인에 이름을 올린 사람까지 모두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누군가 눈치를 보며 말했다.


“저 부분은 A가 담당했는데…”
“마감이 너무 촉박하긴 했죠.”
“원래 그 항목은 변경 안 되는 줄 알았어요.”


말은 조심스러웠지만,
책임은 이미 공기 중에 흩어져 떠다니고 있었다.
느끼는 사람은 느꼈다.
“지금 이 방에서는, 누구도 온전히 책임지고 싶지 않구나.”


그때 팀장이 입을 열었다.


“이번 일, 내 책임이다.
내가 마지막 확인을 못 했다.
고객사에는 내가 직접 사과하겠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변명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도, “원래는”도 없었다.


팀장은 한 번 더 말했다.


“원인 따지는 건 나중에 하자.
지금은 일단 신뢰가 무너지지 않게 막는 게 먼저다.
나를 보고 욕하게 만들고,
너희는 고칠 방법부터 같이 생각해 달라.”


그 한마디가 허공을 떠돌던 책임을 한 번에 끌어당겼다.


그날 오후, 팀장은 혼자 고객사를 찾아갔다.


“이번 실수는 제 책임입니다.
기한에 쫓기면서 확인을 소홀히 했습니다.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말하려면 길어집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 저희가 고객님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고객사는 여전히 불편했다.
그래도 화살은 분명한 방향으로 날아갔다.
팀장이 그걸 정면으로 맞았다.


그 시간 동안 팀은 사무실에서 기다렸다.
메신저창도, 잡담도 조용했다.
각자 모니터를 보다가도
괜히 한쪽 벽시계를 힐끔거렸다.


팀장이 돌아왔을 때,
사무실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 띄엄띄엄 들렸다.


“욕은 많이 먹었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했다.
다음에는 이런 실수 안 나게
우리 같이 방법 찾아보자.”


그리고 이런 말도 덧붙였다.


“이번에 각자 뭐가 힘들었는지, 솔직하게 말해보자.
누구 탓하려고 묻는 거 아니다.
다음에 욕 좀 덜 먹으려면, 오늘은 진짜로 얘기해 보자.”


그제야 입들이 열렸다.
무리한 일정, 인력 부족, 동시에 잡힌 다른 프로젝트들.
평소에는 “괜히 말 꺼내봤자” 하고 숨겼던 이야기들이
하나둘 쏟아져 나왔다.


팀장의 사과 한 번이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겨누던 손가락을
같은 방향, ‘문제 그 자체’로 돌려놓았다.


사과할 줄 모르는 리더는
책임을 잘게 잘게 나눈다.


“이 부분은 네가 잘못했고,
저 부분은 내가 조금 부족했고,
나머지는 회사 구조가 애매한 거고…”


표면적으로는 공정해 보인다.
하지만 듣는 사람 마음에는
이런 문장이 자리 잡는다.


‘결국 아무도 온전히 책임질 생각이 없구나.’


그러면 사람들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대신,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증거를 찾기 시작한다.


메일 함을 뒤지고,
보고서 캡처를 모으고,
“저는 분명 이렇게 보고 드렸습니다”를 증명하려고 애쓴다.


그 에너지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쓰이지 않는다.
문제에서 최대한 멀어지는 데 쓰인다.


반대로 사과할 줄 아는 리더는
책임을 쪼개지 않고 먼저 모은다.


“좋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진다.
대신, 이 과정에서 뭐가 잘못됐는지,
우리가 같이 보자.”


이렇게 말하는 순간
사람들은 내 잘못을 더 솔직하게 꺼낸다.


“여기서 제가 판단을 너무 빨리 했습니다.”
“여기서는 제가 확인을 대충 했습니다.”


이 고백이 가능한 이유는 하나다.
잘못을 말해도
사람 자체가 잘못된 존재로 찍히지 않을 거라는 믿음.
리더가 먼저 “내가 잘못했다”라고 말해준 덕분이다.


사과는 기술 같지만, 사실은 태도다.


내 몫과 남의 몫이 섞여 있을 때도
일단 내 몫을 먼저 들고 나오는 태도.
옳고 그름보다
먼저 상처받은 마음을 보는 태도.


“내가 잘못했다”는 말은
리더에게 특히 무겁다.


이 한 줄 안에는 이런 뜻이 숨어 있다.


“누군가는 이 말을 먼저 해야
다른 사람도 자기 잘못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다.”


리더는 그 ‘먼저’를 택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좋은 상사는
실수 한 번 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틀렸을 때 빠르게 인정한 사람이다.


“그때 내 판단이 틀렸다. 네 말이 맞았다.”
“그 말을 그때 그렇게 한 건 내 잘못이었다.
너 상황을 충분히 상상하지 못했다.”


이 말을 들으면,
우리는 묘하게 편안해진다.


‘저 사람도 틀릴 수 있구나.’
‘틀려도 인정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구나.’


이 감각이 생기면
조직의 공기가 달라진다.


위에서 한 번도 사과하지 않는 조직은
아래에서 실수할 자유도 없다.
그래서 아무도 과감하게 시도하지 않는다.


반대로,
위에서 “내가 잘못했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조직은
아래에서 “제가 여기서 실수했습니다”라는 말도
조금 더 쉽게 나온다.


그 차이가,
몇 년이 지나면 성과의 차이로 돌아온다.


사과할 줄 아는 리더가 되겠다고 마음먹는 건
결국 이런 선택이다.


“체면보다 관계를 먼저 두겠다.”
“완벽한 이미지 대신,
틀릴 수 있는 나를 보여주겠다.”
“책임을 나누기 전에
먼저 내 어깨 위로 올리겠다.”


그래서 때로는
조용한 굴욕을 받아들여야 한다.
회의에서 윗사람에게 직접 혼나기도 하고,
고객 앞에서 고개를 숙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굴욕을 견디는 시간을 본 사람들은
그 리더를 더 믿게 된다.


언젠가 누군가 우리를 떠올리면서
이렇게 말해준다면 좋겠다.


“그 사람도 실수 많이 했다.
근데 책임을 피한 적은 없었다.
‘내가 잘못했다’는 말을
입에 올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아마 그 한 줄이면
그 사람의 리더십은
설명 다 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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