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남는 사람』
리더 중에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문제는, 자주 이렇게 말한다는 거다.
“너희는 이렇게 해라.”
“지금 세대는 그래서 안 되는 거야.”
“내 말대로만 하면 된다.”
말하는 사람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일지 모른다.
하지만 듣는 사람 입에서는 이런 말이 절로 나온다.
‘또 시작이다.’
‘결국 나보고 바뀌라는 얘기구나.’
리더의 말이 지시나 평가로만 들릴 때
사람들은 마음의 문을 천천히 닫는다.
반대로 어떤 리더는
비슷한 상황에서 말을 다르게 꺼낸다.
“나도 이 시기에는 많이 버벅거렸다.”
“나는 이렇게 버텨왔다.”
“그때 나는 이런 실수를 했다.”
먼저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
그 사람 앞에서는 이상하게 어깨 힘이 조금 빠진다.
‘아, 이 사람도 나처럼 헤매던 때가 있었구나.’
이 장에서 말하고 싶은 리더는
바로 이런 사람이다.
“너희는 이렇게 해라”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버텨왔다”로 시작하는 사람.
어느 날, 회사에 새 프로젝트가 떨어졌다.
기간은 짧고, 요구사항은 많았다.
팀원들은 메신저창에서 몰래 한숨을 나눴다.
“이거 또 야근 예약이네.”
“이번에도 말만 거창한 거 아냐?”
팀장이 회의실에 팀을 모았다.
보통 이런 자리에서 흔히 듣는 말은 이렇다.
“이번 프로젝트, 우리 팀이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
“지금부터 정신 바짝 차리고 움직이자.”
“네가 이 부분 책임지고, 나중에 핑계 대지 마라.”
말 자체가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말 앞에서
사람들 표정은 점점 굳어간다.
그 팀장은 조금 다르게 말을 꺼냈다.
“나도 예전에 비슷한 프로젝트를 맡은 적 있다.
그때는 지금보다 인원도 적었고, 경험도 부족했다.
솔직히 말하면, 중간에 세 번은 도망치고 싶었다.”
사람들이 고개를 들었다.
팀장은 이어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때 나는 처음 두 주 동안
모든 걸 다 컨트롤하려다가 완전히 지쳤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는 이렇게 바꿨다.
내가 다 하려 하지 말고,
각자 제일 잘하는 부분을 맡기자.
나는 일정과 방향만 책임지자.
그렇게 했더니
속도는 조금 느려졌는데
결과는 오히려 안정됐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이번에도 나는 비슷하게 가보고 싶다.
내가 방향과 고객사 대응을 책임질게.
대신, 각자 맡은 부분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어 줬으면 좋겠다.
안 될 것 같으면,
참다가 터지지 말고,
중간에 나한테 먼저 말해라.
나도 그때 그러지 못해서 더 힘들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분위기가 조금 바뀐다.
‘또 우리한테만 희생하라고 하겠지’에서
‘이 사람도 예전에 비슷하게 버텨봤구나’로.
“해야 한다”는 지시에서
“같이 해보자”는 제안으로.
내 이야기부터 꺼내는 리더는
자기 경험을 강의처럼 풀지 않는다.
대신 서늘했던 순간,
부끄러웠던 감정까지 같이 보여준다.
“그때 나는 솔직히 무서웠다.”
“이렇게 하다가 다 틀어지면 어떻게 하나 싶었다.”
“그래도 거기서 이 선택을 했다.”
이 고백이 있어야
그다음 말이 힘을 가진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방향이 맞다고 생각한다.”
내 이야기부터 꺼낸다는 건
두 가지를 함께 보여주는 일이다.
하나는 실수했던 나이고,
다른 하나는 그래도 여기까지 온 나다.
둘 중 하나만 보여주면 균형이 깨진다.
실수만 과장하면
듣는 사람은 이렇게 느낀다.
‘결국 다 힘든 거니까, 그냥 버텨라 그 말이구나.’
반대로, “나도 힘들었지만 결국 해냈다”만 강조하면
성공담으로 들릴 뿐이다.
중요한 건 그 사이에 있는 구체적인 시간들이다.
“나는 그때 매일 밤 집에 가는 길에
오늘 하루를 세 줄로 정리했다.
뭐가 제일 힘들었는지,
뭐가 생각보다 괜찮았는지,
내일은 뭘 하나만 바꿔볼지.”
“나는 회의에서 말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먼저 메모를 써놓고,
‘오늘 회의에서는 이 한 줄만 말하자’라고 정했다.
그때부터 조금씩 나아졌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팀원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나도 저 방법은 한번 써볼 수 있겠다.’
리더십은 결국
사람이 따라 할 수 있는 수준까지
자기 이야기를 낮추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떤 상사는 늘 이렇게 말한다.
“요즘 애들은 말이야…”
“내가 너희 나이 때는 다 했다.”
이 말에는
자기 시대의 고생은 인정하면서
지금 세대의 고단함은 깎아내리는 뉘앙스가 있다.
상대 경험을 듣기 전에
먼저 평가부터 내려버린다.
이와 달리,
내 이야기부터 꺼내는 리더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희 나이 때는 이런 식으로 버텼다.
근데 지금은 상황이 다를 수 있다.
그래도 혹시 참고가 된다면,
그때 내 얘기를 조금 해볼까?”
여기에는 초대의 톤이 있다.
“내 말이 정답이다”가 아니라
“내 말도 여러 이야기 중 하나다”라는 태도.
이 태도가
사람을 방어하게 만들지 않고
이야기하게 만든다.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때로 위험해 보인다.
‘너무 말이 많아 보이지 않을까?’
‘약해 보이지 않을까?’
‘내 흑역사를 굳이 꺼낼 필요 있을까?’
그래서 많은 리더가
자기 이야기를 아껴두다가
결국 아무 말도 못 한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같이 일해본 사람은
리더의 완벽한 면만 보고 싶지 않다.
내가 흔들릴 때
“왜 흔들리냐”라고 묻는 사람보다,
“나도 그때 이렇게 흔들렸다”라고 말해주는 사람을
더 믿고 싶다.
내 이야기부터 꺼내는 리더는
자기 연민 속에 빠지지 않는다.
중요한 건 “나 힘들었다”가 아니라
“그래도 이렇게 버텨왔다”이기 때문이다.
이 버틴 방식이
누군가에게는 실마리가 된다.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된다.
신입사원 교육 시간에
이런 장면이 있었다.
한 임원이 강단에 서서 말했다.
“요즘 세상이 많이 힘들죠.
그래도 여러분은 젊으니까
도전하면 됩니다.”
말은 그럴듯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았다.
다음 시간에
다른 리더가 마이크를 잡았다.
“저는 입사 첫해에
상사한테 크게 혼나고,
화장실에서 한 시간 동안 울었습니다.
그날 퇴사서를 열 번은 썼다가 지웠습니다.”
사람들이 그제야 웃었다.
그리고 더 집중해서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상사처럼 되지 말자’가 아니라
‘내 후배에게는 이런 상사가 되지 말자’라고
조금씩 다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일하게 되면
한 번쯤은 꼭 이런 말을 해주고 싶어요.
‘우리가 일 때문에 싸울 수는 있어도,
너라는 사람까지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고.”
이 말을 듣고 강의실을 나가는 사람은
앞 강의에서 나왔던 화려한 슬라이드를 기억하지 못했다.
대신 이 문장 하나를 기억했다.
‘나도 그날 화장실에서 울었던 적이 있다.’
내 이야기부터 꺼내는 리더는
숫자보다 문장을 남긴다.
그 문장이 사람을 버티게 한다.
우리가 언젠가 리더가 되었을 때,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걸어온 길을
너에게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네가 혼자라고 느껴질 때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이야기 하나는
남겨주고 싶다.”
리더십은 정답을 가르치는 자리가 아니다.
먼저 살아본 사람이
자신의 서사를 조심스럽게 열어 보이며
이렇게 말해 주는 자리다.
“나는 이렇게 버텨왔다.
너는 네 방식으로 버티겠지.
그래도 혹시,
오늘 밤 네가 잠들기 전에
누군가의 이야기가 필요하다면
내 이야기가 그중 하나였으면 좋겠다.”
내 이야기부터 꺼내는 리더.
그 사람은 사람을 움직이기 전에
먼저 마음을 여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열린 마음 위에서
조용하지만 오래가는 리더십이 자라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