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팔로워의 기억으로 다시 쓰는 리더십

『끝까지 남는 사람』

by 박동욱

리더십은 책에서 배우는 줄 알았다.
리더십 강의, 명언, 유명한 리더들의 사례.
칸트, 드러커, 잡스, 이런 이름들이 줄줄이 나열된 페이지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보니,
내가 진짜로 기억하는 리더십의 얼굴은
책 속 인물들이 아니라
예전에 내 바로 위에 서 있던 사람들이다.


나를 억울하게 만들었던 상사,
내 어깨를 한 번 두드려준 선배,
회의실에서 나를 공개적으로 민망하게 만들었던 리더,
아무 말 없이 내 편을 들어줬던 팀장.


그때는 그냥 “나를 대하는 태도”라고만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순간들이 모두 리더십 수업이었다.
다만 그때는 내가 학생이 아니라,
팔로워라는 이름의 실습생이었을 뿐이다.


아직 직급이 낮았을 때,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만든 보고서에 큰 틀린 부분은 없었지만

상사가 보기엔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회의 자리에서 그 상사는 보고서를 탁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렇게밖에 못 해요?”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였다.
그 말 뒤에 설명은 없었다.
어디가 부족한지,
어떻게 바꾸면 좋을지,
어떤 방향이 더 나은지.


그 한마디가 내 하루를 통째로 무너뜨렸다.


회의가 끝난 뒤,
나는 프린트된 보고서를 쓰레기통에서 다시 꺼내

볼펜으로 여기저기 끄적였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지?’
‘내가 진짜 이 일에 안 어울리는 사람일까?’


그때 마음 깊은 곳에서
작은 다짐 하나가 생겼다.


‘내가 언젠가 누군가의 보고서를 받는 사람이 되면
저렇게 말하지 말자.
틀렸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사람 자체를 구겨 넣지는 말자.’

그때 내 억울함과 수치심은
지금의 나에게 하나의 기준이 되었다.


“내용을 고칠 수 있어도,
사람의 자존심은 쉽게 건드리지 말 것.”


팔로워의 기억이
리더의 원칙으로 바뀐 순간이다.


반대로, 아주 짧았지만
오래 남은 장면도 있다.


평소에 말수가 적던 팀장이 있었다.
자주 칭찬하지도 않았고,
쿨하게 보이려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어느 날, 야근이 길어지던 날이었다.
밤 열 시를 넘긴 시간,
사무실에 몇 명만 남아 있었다.
나는 모니터 앞에서 눈을 비비며
보고서를 고치고 있었다.


그때 팀장이 내 자리에 잠깐 서더니
딱 한마디를 남겼다.


“오늘 이 정도면 됐다.
여기까지 한 것만 해도 충분하다.
내일 마저하자.”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내 자리 옆에 캔커피 하나를 올려두고 갔다.


그 말이 눈물이 날 만큼 고마웠다.
“수고했다”라는 칭찬보다
“여기까지만 하자”라는 그 말이
내 존재 자체를 인정받는 느낌이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또 하나의 다짐을 했다.


‘언젠가 내가 누군가에게 말을 건넬 수 있는 위치가 되면
끝까지 버티라고만 하지 말고,
멈춰도 된다고 먼저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자.’


그때 내 피로와 안도감은
지금의 나에게 또 다른 기준이 되었다.


“리더는 끝까지 몰아붙이는 사람이 아니라,
멈춰도 된다는 신호를 줄 줄 아는 사람일 것.”


이것도 팔로워의 기억이
리더의 언어로 다시 쓰인 예다.


팔로워였던 시절,
나는 자주 이렇게 생각했다.


‘윗사람들은 우리가 어떻게 느끼는지 모를 거야.’

회의가 길어져서
밥도 못 먹고 앉아 있을 때,
누군가는 지각 몇 분을 계속 문제 삼았다.


“시간 약속은 기본 아닙니까?”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은 이미
쫄쫄 굶은 배 위에서 더 날카롭게 박혔다.


지금 리더 자리에 가까워진 뒤에야 안다.
그때 그들이 정말 몰랐을 수도 있다.
자기 자리의 부담에 취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결을
세심하게 볼 여유가 없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더 자주 묻기로 했다.


“지금 너희는 이 상황을 어떻게 느끼니?”

결정을 내리기 전에,
지시를 내보내기 전에,
보고서를 빨리 가져오라고 말하기 전에.


예전에 아무도 내게 묻지 않던 그 질문을

지금 나는 먼저 꺼내보려고 한다.


그때 내 분노와 답답함이
지금의 나에게 이런 메시지를 건네기 때문이다.


“리더가 되고 나서
너도 똑같이 보지 말 것.”


팔로워의 기억에는
상처만 있는 건 아니다.
묵묵히 내 편을 들어주던 장면도 있다.


어떤 상사는
회의에서 내 의견이 묻히고 넘어가려 할 때
이렇게 말했다.


“잠깐만요. 아까 ○○씨가 냈던 의견,
그거 다시 한번만 들어볼 수 있을까요?
그 안에 우리가 놓친 포인트가 하나 있는 것 같습니다.”


그 한마디 덕분에
나는 내 의견을 다시 말할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그 회의가 끝난 뒤,
나는 혼자 생각했다.


‘아, 이게 사람을 세우는 방식이구나.’

그때의 감동이
지금 내 입에 이런 말을 자주 올려준다.


“아까 ○○가 했던 얘기, 그 부분 좀 더 들어보자.”


특별한 기술이 아니다.
다만 회의에서
묻혀가는 사람의 말을 한 번 더 꺼내주겠다는 마음.


내가 한때
그 “묻혀가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지금 내 귀가 거기로 더 자주 향한다.


리더십을 다시 쓴다는 건
멋진 이론을 새로 만드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한때 내가 견디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던 말들을
이제는 나 자신에게 들려주는 일이다.


“저렇게는 하지 말자.”
“저 말은 하지 말자.”
“저 표정은 닮지 말자.”


그리고 가끔은
이렇게도 적어본다.


“저렇게 해보고 싶다.”
“저런 타이밍에 저런 말을 건네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위에서 본 리더십은
대개 반듯하고 멋있다.


하지만 팔로워로서 느꼈던 리더십은
훨씬 날것이다.
서운함, 억울함, 고마움, 분노, 감사.


이 감정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다.
나는 그 감정에 빚을 지고 산다.


그래서 이 장에서의 결론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리더십이 막막하게 느껴질 때마다
거창한 리더의 명언을 떠올리기보다
먼저 이 질문을 던져보면 좋겠다.


“내가 팀원이었을 때
어떤 리더가 제일 싫었지?”
“어떤 선배가 제일 고마웠지?”


그리고 그 기억을
조용히 노트 한쪽에 적어본다.


그 목록이
곧 나만의 리더십 매뉴얼이 된다.


“그때 내가 받았던 상처가
지금의 리더인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지”를
하나씩 적어 내려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알게 된다.


리더십은
위에서 배운 기술이 아니라,
아래에서 버텼던 시간들이
천천히 위로 올라와 만든 결과라는 것을.


결국 좋은 리더는
한때 좋은 팔로워였던 사람이 아니라,
한때 상처 많은 팔로워였던 자신을
끝까지 잊지 않는 사람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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