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3부 말라카의 눈물(1)
“모든 냄새는 바람이 불면 쉽게 흩어지고, 멈추어 쌓이면 물체에 밴다. 닭의 홰나 돼지우리엔 닭과 돼지의 냄새가 있고, 용과 뱀의 굴에는 그들의 숨결이 남아 있다. 어진 이가 사는 방엔 난초와 지초의 향이 감돌고, 어리석은 자의 방엔 혼탁한 냄새가 가득하다.”
어릴 적, 이세는 이 문장을 외할아버지에게서 들었다. 그때는 의미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냄새는 단지 감각이 아니라, 그것을 품은 존재의 흔적이자 기억이며, 숨겨진 본성을 드러내는 언어다.
오전 11시, 인천공항. 따스한 오월의 바람이 이세의 뺨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는 베트남항공 VN340편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그곳에서 북쪽의 고지대인 카메룬하일랜드로 향할 것이다. 그가 찾는 것은 희귀한 은백차. ‘빛의 물’의 재료다.
하지만 마음은 무겁다. 향기의 본질을 다루는 이 길 위에서 이세는 점점 더 스스로를 잃고 있었다. 향이란 아름다움만의 상징이 아니었다. 그것은 때로 독이었고, 그림자였고, 미혹이었다.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도착한 그는 도시 중심인 부킷빈탕의 호텔로 향했다. 낯선 공기와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머큐르 호텔에 짐을 푼 뒤, 그는 가볍게 옷을 갈아입고 야시장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잘란 알로. 온갖 향신료와 음식 냄새가 섞여 만들어내는 혼합의 현장.
잘란 알로는 살아 있는 거리였다. 불빛, 소리, 연기, 그리고 냄새가 뒤엉켜 있었다. 거리 한편에서 굽고 있는 사테 향은 구수한 피넛소스의 달콤함과 숯불의 거친 매캐함이 절묘하게 섞여 있었고, 간간이 퍼지는 두리안 냄새는 이방인의 콧속을 강하게 자극했다.
이세는 한 음식점에 자리를 잡고 사테와 게 요리를 수박주스와 함께 주문했다. 식사를 하며 내일의 일정을 머릿속에 정리하고 있을 때, 옆 테이블에서 누군가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혼자 오셨어요?”
자연스러운 말투. 동양계 여성 둘과 안경을 쓴 북유럽풍 남성 하나. 모두 낯선 이방인이었고, 낯설기에 오히려 부담이 덜했다. 그들은 가볍게 술을 권했고, 이세는 거절하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단지 잔을 손에 들고 조용히 테이블에 내려놓았을 뿐이다.
그러나 이상했다. 대화는 흘러갔고 웃음도 있었지만, 그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기는 뭔가 이질적이었다. 익숙하면서도 이질적인 냄새. 향수를 과하게 뿌린 듯한 그 향은 시간이 흐를수록 이세의 머리를 무겁게 짓눌렀다. 희미하게나마 그 속에 ‘누보 미라블리스’의 향기가 섞여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 순간, 키가 크고 어두운 눈동자를 지닌 여인이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 찰나, 그녀의 목덜미에서 보인 문신은 검은 뱀이 몸을 틀며 올라가는 형상. 곧 아몬의 상징이었다.
이세는 그녀의 손길과 향기 사이에서 정신을 잃어 갔다.
그는 다시 눈을 떴을 때, 뜨거운 햇살이 얼굴을 때리고 있었다. 잘란 알로의 쓰레기 더미 한쪽에서 깨어난 이세는 역겨운 냄새와 벌레들과 함께했고, 그 밤의 기억은 모조리 사라지고 없었다. 단지 떠오르는 것은 뱀 문양과 짙은 향기의 잔해,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겨냥했던 어떤 기운.
“아! 죽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정신은 또렷했다. 그들은 자신이 죽었으리라 확신했을 것이다. 그러나 몰랐던 것이 있었다. 이세는 태어날 때부터 어떤 향에도 취하지 않는 ‘향 면역’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말이다.
호텔로 돌아온 이세는 문을 잠그고 짐을 확인했다. 침대 아래 숨겨 두었던 작은 가방. 조심스레 열어보니 안에 담긴 것들이 그대로였다. 웨스트 향, 구자향, 그리고 외할아버지가 남긴 구세향(救世香). 모두 무사했다.
그는 조용히 향유병을 꺼내 하나하나 손끝에 묻혔다. 작은 냄새 속에서 그는 다시 숨을 고르고 마음을 다잡았다. 어둠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그는 빛을 잃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