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후각은 타고나는가 아니면 길들여지는가
인간은 타고난 본성과 주위의 영향을 받는 존재이다.
한번 타고난 유전적인 조건은 변경시킬 수 없고,
환경은 부분적으로 바꾸는 것이 가능하지만 당장 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오직 유전과 환경에 좌우되는 것으로 본다면,
필히 숙명론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간은 정신적이고 자유로운 존재이며,
그 때문에 책임을 지는 존재다. *주1
고대에는 주로 신을 모셨던 제사장이나 종교지도자, 주술사였다.
그리스․로마 시대에 접어들면서 철학과 화학의 발전으로 화학자들이 주로 향료를 만들며 새로운 원료와
추출법을 개발하기 시작하였다. 테오프라스토스라는 최고의 향 전문가가 나온 것도 이 시기였다.
곧이어 꽃의 에센스를 녹일 수 있는 알코올이 발명되었다. 이것은 향수 역사에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알코올 증류법이 시작된 시기는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중세 연금술사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만은 틀림이 없다.
15세기에 접어들면서 기독교 수도원에서 향의 제조가 활발히 진행되었으며, 수도사들은 과수나 약초를 재배하고 그로부터 얻은 원료로 향을 만드는 것을 하나의 사명으로 여기게 되었다.
한편 유럽의 귀족들 사이에서는 자기 가문의 독특한 조향 처방서(Formula)*주2 를 갖고 있어 단골 연금술사들에게 의뢰하여 향수를 공급받았으며, 왕실에서는 독자적인 증류실을 두고 훈향과 제조를 하였다. 또한 프랑스의 그라스를 중심으로 한 가죽 업자인 글로브 퍼퓨머(Glove Perfumer)*주3 가 나온 것도 향수 발전에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 결과 향료 제조 기술은 현저하게 발전해 17,18세기에 이르러 새로운 시대의 화학자의 손으로 넘어갔고, 19세기에는 새로운 원료와 제조법을 개발하는 화학자와 조향을 전문으로 하는 조향사로 분야가 나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이들은 가업으로 이어오거나, 향료나 향수를 제조하는 인근 마을에서 자라나 꽃과 향이 늘 주변에 있어 어렸을 때부터 쉽게 접하여 살아온 사람들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에게 향은 곧 삶의 일부로 자리 잡았기에 성인이 되어 문학과 철학, 예술을 전공하더라도 어느 날 타고난 자신의 후각과 향에 대한 사랑을 깨닫는 순간, 모든 예술가들이 그러하듯이 향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조향사가 되려면 타고난 후각,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 그리고 예술적 감성을 지녀야 한다. 화가가 모든 색깔의 변화를 알아야 하듯이 조향사도 자신의 후각 기억에 의존해 모든 향을 뇌 속에 기억시키는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 고도로 숙련된 조향사들은 수백, 수천의 냄새를 기억할 수 있다. 후각 기억은 부단한 연습과 참지 못하는 후각의 호기심에 의해서 발달한다. 그들은 향을 만들 때 냄새가 나는 원료뿐만 아니라 산책이나 여행, 우연한 만남을 통해서 얻어지는 복잡하고 난해한 향기도 사용한다. 이러한 조향사들의 경험이 그들의 조향 영역을 넓히는 것이다.
사실 후각은 타고나야 하지만, 훈련을 통해 어느 정도 향상 시킬 수 있다. 타고난 감각이 있어야 하는 최고의 전문가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물론 후각 분야가 여러 가지라 꼭 타고나지 않아도 되는 분야가 많다. 그래도 향기를 창조해내는 퍼퓨머나 뛰어난 후각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는 타고난 감각이 있으면 훨씬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음악가나 미술가처럼 오감의 영역은 노력만으로 천재성을 나타내기엔 힘들기 때문인 것이다.- 단순히 후각 기억의 영역을 높이고, 공부하는 수준이라면 타고나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 얼마든지 노력하면 향상이 될 수 있으니, 오히려 특별한 후각을 필요로 하지 않은 분야가 더 많다는 것을 말하면 위로가 될 것 같다.
교육, 환경, 건축, 의학, 문화, IT, 상담, 예술, 디자인, 범죄 수사, 공학, 인쇄, 영화, 연극 등 많은 분야에서 후각의 접목은 앞으로 타 분야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탁월한 후각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실망할 필요가 없다. 유명한 음악가나 화가가 되지 못한다고 슬퍼할 이유가 없듯이 그저 향기를 좋아하고 활용하는 정도는 부단한 노력을 통해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냄새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만한 언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단지 그것들을 감각적 기억만으로 경험할 뿐이다. 예를 들어 그림을 볼 때, 그 그림의 색채나 이미지 등을 묘사할 수 있는 말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반면, 어떤 냄새를 맡았을 때는 묘사할 수 있는 단어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것은 냄새에 대한 경험이 각기 다르기에 기호와 언어로 표준화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직 그 냄새와 함께한 기억만 남을 뿐이다.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후각이 생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었던 원시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장미의 이름’을 만들었던 장 자크 아노 감독의 ‘불을 찾아서’*주4라는 영화를 보면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을 한다. 각자 영성, 지성, 감성의 영역을 상징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감성의 인간은 오감 중에서도 먼저 후각인 코를 킁킁대면서 냄새를 맡는 장면이 나온다. 물체를 공기의 흐름 중 후각을 통해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어떤 것을 먹을 수 있는 것인지를 선택하고, 위험을 예감하며, 적과 아군을 구별하며, 짝을 찾는데 필수적으로 사용하였던 것이다. 또한 후각은 적과 짐승을 경계하거나 정보를 제공하고, 종족의 생존 유지를 위한 필수도구였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하지만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인간의 후각적 감각은 둔해졌고,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점점 후각보다는 시각에 의존해 왔다. 점차 후각은 퇴화되어 이제 숨 쉬는 역할 이외에는 별로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타고나지도, 길들여지지도 않은 감각이 되어버린 것이다.
신생아의 후각은 외부세계와의 최초의 의사소통 수단으로, 아이는 엄마의 냄새로 구별하고 안정을 찾는다.
청각은 음악과 소리를 통해, 시각은 그림과 사물을 봄으로써 훈련되어 가는데 비해 후각은 그 어떤 훈련과 교육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일상적으로 대하는 생활에 의해 자연적으로 학습될 뿐이다.
그래서 후각의 선호는 음식, 기후, 지리적 위치, 주변 환경 등 나라와 개인에 따라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개인적인 냄새의 취향은 우리가 환경을 인식하고, 또 그것으로부터 미적, 정서적 즐거움을 이끌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시각 청각 장애자였던 헬렌 켈러는 자신의 후각이 과거의 그녀 자신에게 데려다주기도 하고, 자신의 삶에 있어서 겪은 일들을 생각나게 하고, 모든 것을 기억하는 통로였다. 그녀는 자서전에서 말했다.
나는 향기로써,
내가 지금 도시의 어떤 곳에 있는지 자연스럽게 안다.
많은 철학이 있는 것처럼 많은 향기도 있다.
나는 그들의 독특한 냄새를 통해 장소에 대한 정보를 아주 쉽게 알아낸다
조향사는 하나의 향을 창조하기 위해, 기억의 통로를 따라 느낌이 좋은 후각의 풍경을 재구성하며, 또한 세속과 성전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고귀한 영혼을 그 속에 담기도 한다.
성전 앞에는 언제나 향과 꽃이 만발한다. 이는 성스러운 향으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향은 그 즐거움을 느끼는 데 있다. 그것은 향의 세계에서 엮어지는 미묘한 정서와 관념을 일으키는 쾌락이다. 향의 매력은 우리의 가장 깊은 내부에 있는 열망을 표현한다. 향을 선택한다는 것은 자신의 숨겨진 면을 말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진정한 인격을 드러낸다.
Olfactory Director, 2020
1. 빅터 프랭클(Viktor Emil Frankl, 1905.3.26~1997.9.2. Vienna AUSTRIA).『심리의 발견』. 청아출판사, 2008, p194.
2. "포뮬러(Formula)는 향을 구성하는 원료와 그 양의 1/1,000그램까지 나타낸 매우 세밀한 리스트로서 조향사만이 알고 있다. 음악의 악보와 마찬가지로 조향사만의 감성과 경험의 산물이며, 향의 명성을 결정하는 열쇠이다. 그러나 특허 보호를 받지 못하므로 절대 포뮬러는 공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 송인갑.『향수(The Story of Perfume)』. 한길사, 2004, p298.
3. 가죽 무두질에 필수적인 기술을 보유한 장갑-향수 업자 대가들의 단체명에서 영감을 받아 나온 이름이다. 이 업계에서 장갑이 갖는 상징적인 힘을 ‘힘센 손’이라 했다. 당시에 완고한 향수 업자들은 무두질한 가죽에서 나는 불쾌한 냄새를 제거하는 일을 했다. 1614년 글로버 퍼퓨머들은 가죽 무두질 업자에게서 벗어나 루이 13세로부터 ‘장갑의 대가 또는 향수 업자로 칭한다’는 내용으로 그들의 권위를 인정하는 특허장을 받게 된다. 그들은 곧 향수 산업에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고 증류 업자와 연금술사들의 자리를 대체하게 된다.
- Ibid, p297.
4. 장 쟈크 아노 감독의 원시시대의 인간이 잃어버린 불을 찾아 떠나는, 대사가 한 마디도 없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영화. 네안데르탈인의 습격을 받아 불씨를 빼앗긴 호모 사피엔스 부족이 목숨보다도 중요한 불씨를 찾기 위해 고심한다. 이들은 동분서주하며 갖가지 모험을 겪으며 불씨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결국 불을 찾아온다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