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각 지식채널
2. 센트 플레이어(Scent Player)
센트 플레이어.
후각이 느끼는 냄새를 담아두었다가
언제 어디서든지 냄새를 재생시킬 수 있는 기기를 말한다.
물론 그 기기는 두말할 나위 없이 포집과 재생을 함께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향은 우리의 감각 중에서도 가장 다루기 힘들고 신비스러운 후각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강렬한 감정이나 특별한 경험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죄악으로부터 신성함에 이르기까지, 향은 우리의 욕망과 열정을 자극하고, 개발되지 않은 감성의 영역과 잃어버린 기억 속의 낙원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러므로 향은 우리의 기억을 든든히 지켜주고, 또한 우리들은 대부분이 그것에 대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얼굴이나 사물의 형태 또는 풍경이 우리를 동요시킬 때 피부에 소름이 돋고 심장이 두근거리게 되는 것은, 거기에는 늘 우리의 기억을 흥분시키는 냄새가 있기 때문이다.
고향의 된장국 냄새, 첫사랑 여인의 체취, 초등학교 소풍 때 스쳤던 나무와 풀 냄새, 추운 겨울날 동네 친구들과 나무와 건초에 불을 지펴 그 속에 고구마를 넣어 익기를 기다릴 때 코끝에서 솔솔 맴돌던 냄새. 그래서 많은 감각적 기억들은 그리움과 섞여 있는 것이다.
동양, 특히 한국에서는 농경 중심의 트인 공간과 초식 중심의 식문화로 인하여 굳이 인위적인 좋은 향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늘 몸이나 집 가까이에 자연의 냄새가 있었다.
국토의 70퍼센트 이상이 산으로 이루어져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언제나 꽃과 풀과 나무가 향기를 뿜었으며 황토와 짚, 곶감, 메주가 집안에 널려 있었던 것이다. 이슬과 함께 불어 나오는 새벽 향기가 코끝을 스치면 일어나 논과 밭에 있는 작물의 냄새를 내내 맡았다.
아낙들은 야산에서 쑥과 약초를 캐고, 솔가지를 꺾어 노을이 질 무렵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지을 때면 온 마을은 솔가지와 나무의 타는 냄새가 맛있는 저녁 식사 시간임을 알렸다. 그리고 누군가 아픈 이가 있으면 약을 달여 그 냄새가 집안 가득히 피어 집에 환자가 있음을 금방 알게 해 주었다. 때로는 향기 있는 꽃과 나무를 말려 처마 밑에 넣어두기도 하고, 장롱 깊은 곳에 삼베로 꼭꼭 싸서 넣어 두기도 했는데, 그것들에서 풍기는 우리네 향기는 바로 삶의 활력소였다.
냄새는 우리의 후각과 소통한다.
냄새는 단순히 그 냄새만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이 소통은 우리의 후각 기억을 부르게 되고 우리의 기억은 냄새를 가까운 친구처럼 대하여 서로 이해하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누구나 맡는 냄새가 나에게만 유독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그 냄새는 그를 느끼는 나에게 다가와 수많은 기억의 시간과 장소를 반복적으로 상기시켜 준다.
어머니의 따스한 품 속 냄새, 추운 겨울날 장작으로 난로를 피우던 선생님의 이마에서 흘린 땀 냄새, 술 취하신 밤에 아버지가 사 가지고 오신 제과점의 빵 냄새.....
우리는 이 냄새를 통하여 어머니와 아버지, 선생님 등 많은 이들과 만나며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냄새는 그리운 사람들과 만나며 추억하는 공간의 소통을 가져다주는 것을 알 수 있다.
목소리를 녹음하여 들을 수 있고, 좋아하는 음악을 언제나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일은 아니다. 지금은 카메라와 비디오를 통해 영상을 담고 재생시킨다. 그래서 추억하는 모든 소리와 모습을 담아두고 항시 재생하여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휴대폰 하나로 이 모든 것을 해결하기도 하니 참으로 편리하고 좋은 세상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명의 발전은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다. 편리함과 아울러 우리가 즐겨 부르는 노래 가사를 외우지 못하게 하고, 사물을 떠올리는데 힘들게 만들고 있으며, 생각은 줄어들고 감각은 점점 퇴화되어가는 현실을 제공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음악과 영상의 재생만으로 부족한지 이제 냄새마저 포집하고 재생하고자 한다. 지금의 비디오 장치에 좀 더 실감 나는 현장감을 주기 위해, 냄새를 기록하고 재생하는 기술을 개발하여 곧 제품으로 출시한다고 하니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나 보다.
냄새의 포집과 기록은 이미 약 40년 전에 개발되었다.
헤드스페이스Headspace 주1라는 기구인데 이 기구의 개발은 향의 다양성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단순히 포집하는 것만 아닌 재생, 곧 인위적으로 자연의 냄새를 재현하는 놀라운 기술이었다.
포집된 향은 가스 크로마토그래피Gas Chromatography 주2를 통해 향을 분석하게 된다. 분석한 향은 구성된 성분을 인위적으로 합성하여 비슷한 향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분석된 향을 즉시 재생하게 만드는 것은 쉽지가 않다.
그 이유는 프린트 기기가 4가지 잉크로 여러 색을 내는 것과는 달리, 향은 수많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과 그중에는 아주 미미한 물질 하나가 전체의 향을 이끌어감으로 센트 플레이어 장치에 필요한 모든 향 물질을 갖추자면 기기는 엄청난 크기를 요구하게 된다.
그런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여도 플레이어에서 재현된 합성 향은 실제 냄새와 미묘한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때로는 전혀 다른 냄새를 제공함으로써 냄새에 대한 착각과 후각의 오류를 줄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은 향기를 표준화시켜 1번은 바다 냄새, 2번은 화약 냄새 등 사람이 보편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냄새를 일정하게 만들어 플레이어 기기에 장착하여 재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쉽게 만들 수 있지만-TV나 컴퓨터에 수백 가지 향을 장착하면 대체로 사람이 현실에서 느낄 수 있는 냄새가 표현 가능하다-이로 인해 사람들에게 냄새에 대한 개인의 감성이나 기억을 무시하고 오히려 표준화시킴으로써 후각의 획일화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이러한 문명의 기술은 인간의 감성을 무디게 만들며, 그러한 냄새의 재생은 인간을 궁극적으로 퇴보시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Olfactory Director, 2020
주)
1. 크로마토그래피를 이용하여 공기 중의 향을 분석하는 방법이며 향의 여운이나 자료를 종 모양의 기구로 포착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커피 향이나 가죽 냄새, 또는 가을의 정원에서 나는 향뿐만 아니라 에센스 오일을 추출할 수 없는 은방울꽃 등의 향도 포착할 수 있다.
- 송인갑.『향수(The Story of Perfume)』. 한길사, 2004, p35.
2. GC라고하며, 흡착제가 들어있는 긴 column (가늘고 긴 튜브)을 이용해 내부에 있는 샘플을 기화시켜 물질이 통과하는 시간의 차이를 이용해 어떤 성분이 있는지를 알아내는 장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