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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매트릭스

영화 매트릭스는, 2199년 시스템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이다. 인간들은 태어나자마자 인공 자궁 안에 갇혀 기계들의 생명 연장을 위한 에너지로 사용되고 뇌세포에 매트릭스라는 프로그램을 입력 당해, 평생 기계에 의해 설정된 가상현실을 살아간다. 가상현실의 꿈에서 깨어난 인간들은 '시온'이라는 세상을 건설하고 인류를 구원할 영웅인 '그'를 찾아 나선다. 마침내 발견한 '그'는 낮에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밤에는 '네오'라는 이름으로 컴퓨터 해킹을 하는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토마스 앤더슨은 트리니티라는 여인에게 이끌려 매트릭스 밖의 세계를 만나면서 모든 진실과 직면하게 된다.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된 앤더슨은 이제 '네오'라는 이름으로 인류를 구원해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게 된다. 주1)
매트릭스 프로그램 안에 있는 동안 인간의 뇌는 AI의 철저한 통제를 받는다.
인간이 보고 느끼는 것들은 항상 그들의 검색 엔진에 노출되어 있고,
인간의 기억 또한 그들에 의해 입력되고 삭제된다.
그러나 이러한 가상현실 속에서 진정한 현실을 인식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은 영화 ‘매트릭스’의 강력한 모티브가 된 책이다.

특히 ‘매트릭스’ 3부작의 첫 편에는, 주인공 네오가 속이 비어 표지만 남아 있는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을 꺼내는 장면을 삽입하여 이를 암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보드리야르 자신은 ‘매트릭스’와 자신의 사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그 영화가 자신의 이론을 연관시키는 것은 오독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시뮬라크르(simulacre)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 놓은 인공물을 지칭한다. 주2) 때로는 존재하는 것보다 더 생생하게 인식되는 것들을 말하며, 시뮬라시옹(simulation)은 시뮬라크르가 작용하는 것을 말하는 동사이다.

이 원본 없는 이미지가 그 자체로서 현실을 대체하고, 현실은 이 이미지에 의해서 지배받게 되므로 오히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것이다. 주3)
장 보드리야르의 이론은 우리가 현실에서 만나고 있는 향기에 적용된다.
사람들이 마시는 음료의 대부분이 합성착향료로 향기를 내고 있다.
사실 오렌지나, 딸기, 그리고 캔 커피와 수많은 차 종류의 맛과 향기는 재현된 것이지 실제가 아니다.
실제로 식물에서 추출한 천연의 향과는 많은 차이가 있으며,재현된 가공의 냄새가 실제를 대체한 것이다.


미래의 디지털 향기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리드와이어를 통해 전류가 흐르면 수분이 있는 솔루션을 가열한다. 이 열은 압력을 만들어내면서 탄성중합체의 작은 구멍을 열어 향기를 발생시킨다. 이 향기는 검출기를 통해 측정할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하며 미래 TV에 적용하게 될 것이다. 곧 현대판 Smell-o-Vision이다.

수백 가지 다른 향기를 액상 형태로 작은 '통'안에 담아 넣어, 특정한 향기를 담은 통에 전기 시그널을 보내면 이 통에서 원하는 향을 분사하게 된다.

영화나 시트콤 등에서 음향이 이미지와 미리 싱크로 되듯이 미리 예약된 프로그램을 통해 향기와 이미지가 싱크로 되는 것이다.

TV를 보다가 햄버거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면 TV에서 햄버거 향이 나오며, 아름다운 여인이 지나가는 장면에서는 여인의 향기가 나오는 것이다.

부품의 재료는 비 독성, 비 연소성 실리콘 중합체로 만들어지며, X-Y매트릭스를 전선으로 가열하면 이 물질에서 미세한 구멍이 열리면서 향기를 발산하게 되는 원리다.


샌디에이고 대학(UCSD) 연구진과 삼성 종기원이 지난 수년간 연구한 끝에 향을 발산하는 TV 및 휴대폰용 부품 기술을 개발하였다.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이 기술은 TV 프로그램과 웹사이트에서 1만 가지 향을 제공하게 될 전망이다.

UCSD와 삼성 종기원은 소형화와 디지털화를 통해 더 주문형 향기 발산 시스템의 미래를 현실로 만들었다.

이 기술개발의 핵심은 향기 픽셀로서 100x100개의 작은 전선 매트릭스로 200개의 컨트롤러를 이용해 1만 종류의 작은 향기로 가득 찬 컨테이너를 가열해 향기를 내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이 향기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냄새로 인해 가정용 세정제를 사용해야 할지도 모르므로 삼성은 친환경적인 버전으로 내놓게 될 것이다. 주4)

이 기술이 적용되려면 특정한 냄새를 차단하는 기술도 함께 제공될 필요가 있다.
또한 이 기술은 TV뿐만 아니라 휴대폰 등 다양한 전자기기에 적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아직도 개발이 완료되었다는 소식이 없다.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이러한 유사 기술은 과거에도 있었다.‘이원이디에스’라는 기업이다.

아마도 국내에서는 가장 먼저 디지털 향 발현 기기를 만든 회사가 아닌가 한다. 이들의 기술 또한 향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원료를 기기에 장착해 배합하여 발생시키는 초기 기술이었다. 미국의 자본 유치를 통해 꽤 유망한 기업으로 알려졌었다.

사람들은 향 발현 기기의 테스트에 대단한 기대를 하였고, 예상대로 몇몇의 향은 비슷한 냄새를 발현시켰다. 하지만 이 기기가 많은 색을 재현하는 프린트와는 달리 수십수백의 원료로만은 재생시킬 수 없는 향기가 있기에 어떤 향은 전혀 엉뚱한 냄새가 나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러한 사건들은 실제 냄새의 재현에 이론과는 다른 구현할 수 없는 세계가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첨단 기업이 추구하는 미래의 디지털 향기는 이런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여도 여전히 풀어 가야 할 숙제가 남아 있는 것이다.


고대의 국가나 사회는 -아니 지금의 국가와 사회도 해당된다.- 눈과 귀는 통제할 수 있었지만 결코 냄새는 그러하질 못했다.

보이는 것은 같은 옷의 색깔이나 유니폼으로, -군인, 의사 등은 직업이나 신분에 맞게, 과거에는 관복으로- 들리는 것은 구호나 음악으로 사람들을 통제하였다.

하지만 어느 시대나 사회든지 냄새만큼은 통제할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각자의 후각 기억과 선호도가 다르기에 획일화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제 미래의 기술이 냄새를 통제하려고 한다.
사람의 생각과 기억을 만들어진 냄새에 접목시켜 획일화하고 통제하려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기억하게 되는 후각의 세계는 실제 존재하는 현실이 아니라 가상현실이 될 수 있다.


디지털 냄새의 천국은 리얼리티를 강조하고 생활의 즐거움과 생생함을 전하려고 하겠지만 결코 우리의 삶은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각자가 느끼고 기억하고 있던 후각 기억은 매트릭스의 세계 속에서 어떤 것이 가상이고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될 테니까 말이다.

문명의 발전과 과학기술도 좋지만 제발 내 코를 그냥 내버려 둬.


Olfactory Director, 2020


주)

1) 다음영화정보. http://movie.daum.net/movieinfo/

2) 장 보드리야르.『시뮬라시옹(Simulacres et Simulation)』. 하태환 역. 민음사, 2002.

3) Ibid.

4) KISTI 미리안 글로벌 동향 브리핑. 2011-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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