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숨겨진 냄새들
크사비에르 신부는 심호흡을 하며 냄새를 흠뻑 들여 마셨다.
그에게 제2의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스페인 카스티야 지방에서는 9월 초가 되면 한여름의 열기로 인해 한껏 부풀어 오른 바람에 메마른 초목 냄새, 먼지 냄새, 바위 냄새 등이 실려 왔다.
이 보헤미아 지방 깊숙한 곳, 프라하 성벽 앞에서는 베어낸 풀 냄새, 햇빛에 말린 건초 냄새, 기름진 대지의 냄새, 프라하를 둘러싸고 있는 숲의 향긋한 냄새가 밀려왔다.
그런데 그 냄새들 사이에는 어유, 그을음, 불에 탄 지방, 곰팡내 나는 습한 강물, 가정용 연료, 난방용 토탄, 황과 육즙 소스, 배설물과 관상용 나무들, 땀, 향수, 향연과 약초의 냄새도 뒤섞여 있었다. 주1)
오랫동안 씻지 않은 몸뚱어리에 배어 있는 악취, 뜨거운 부엌에서 급하게 치른 성교에서 남은 정액 냄새, 공포로 인해 약한 방광에서 새어 나온 오줌의 지린내가 그와 함께 남아있었다. 주2)
냄새는 독자적인 하나의 모습으로만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다양하고 현란하게 후각을 적시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수많은 냄새를 하나로 이미지화시켜 기억을 하는 단순함을 좋아한다.
만약 모든 냄새를 각기 구별하여 맡을 수 있다면 복잡한 삶이 될 것이다. 물론 냄새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은 예외가 되겠지만 말이다. 물질에서 냄새가 생성되고 우리에게 접근해오면 후각은 대표적인 강한 냄새를 우선으로 기억하게 된다. 그래서 실제 발생되는 냄새는 인간에게 모두 전달하지 못하고 숨어 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보듯이 작가는 모든 냄새를 구별하여 표현하고 있다. 과연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 어유와 그을음, 땀, 약초 등의 냄새를 낱낱이 맡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그런데 이것은 가능하다. 후각이 인간보다 발달한 짐승들은-예를 들면 마약견 같은- 멀리서도 냄새를 맡고 구별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경험하지 못한 냄새는 구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맑고 청아한 깨끗한 냄새를 맡고 살아온 사람은 냄새의 현재를 통해 과거와 미래를 맡는다. 다소 생소하고 어렵겠지만, 삼국지에서의 제갈공명을 떠올려보자. 그는 오감에 통(通)한 인물이다. 그래서 일기(日氣)의 냄새를 맡고 비가 올지, 날씨가 맑을지를 알았다.
그가 시대를 앞서는 뛰어난 지략가가 된 것은 타고난 지혜와 감각의 달인이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외국 영화에서 특수 훈련을 시키는 교관이나 사냥꾼들은 자연에 남겨진 냄새의 잔재만으로 짐승과 사람의 위치와 지나간 시간을 예측한다. 그것은 숨겨진 냄새를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도 오래되어서 책 제목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냄새에 관한 독특한 시각으로 쓴 글이기에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한 부분을 떠올려 본다.
아주 가난한 연인이 한 호텔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너무나 가난하여 결혼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돈 많은 노인부부가 호텔에 머물게 되고 그들은 각기 노인을 유혹할 것을 공모하였다. 노인의 돈을 빼앗아 결혼할 것을 약속하며 각자의 길로 향했다.
남자는 할머니를 유혹하여 돈을 갖게 되었고, 연인에게 연락을 하지만 끝내 여인은 남자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여자는 할아버지를 유혹하여 잠자리를 갖게 되었는데, 그때 그의 몸에서 나는 사과 향 같은 묘한 냄새의 유혹은 할아버지에게서 떠날 수 없게 만든 것이었다.
결말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그렇게 끝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 번도 맡아보지 못했던 매혹적인 은밀한 냄새가 나이를 극복하고 그를 사랑하게 만들었는지, 아니면 너무나 아름다운 향기가 그녀의 후각 기억을 깨운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영원히 떠날 수가 없었다는 것은 틀림이 없다.
부자는 숨겨진 금광의 냄새를 맡고, 거지는 밥 짓는 냄새를 맡는다고 한다. 아마도 냄새조차 사람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을 아는가 보다.
자연에도 질서가 있다. 그 질서는 공유와 배척을 반복하여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
예술가들은 자연에 존재하는 것들을 자신의 창작물 속에 녹여 넣었다. 예술과 과학에서 진보의 과정은 그 진보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형성되기까지 충돌과 급격한 전진, 그리고 때때로 이에 역행하는 퇴보 등 많은 변화들이 수반된다. 또한 과학과 예술이 영감과 창조성이라는 측면에서 유사점을 공유한다고는 해도 이들 사이에는 명백한 차이점들 역시 존재한다.주3) 특히 냄새에 있어서는 과학과 예술의 공유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만약 화가의 그림에 어울리는 냄새를 넣는다면 좀 더 사실적이며 작품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것인가 자문해 본다. 적어도 사람이 가지는 느낌과 정서는 획일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단순히 그림에 향기를 넣었다고 하여 그 그림이 인간의 감성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감각의 공유는 표준화, 획일화시킬 수 없다는 것과 그 공유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쉽게 재미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림 속에 숨겨진 냄새를 찾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Olfactory Director
주1) 리하르트 뒤벨. 『악마의 성경』. 강명순 역. 대산출판사
, 2008, p218.
주2) Ibid., p276.
13세기 초 남부 보헤미아의 포들라쉬츠에 있는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있었던 코덱스 기가스(악마의 성경)에 대한 비밀을 소설화한 책. 코덱스 기가스(Codex Gigas)는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필사본 중 하나이다. 코덱스(Codex)는 성경이나 고전의 사본(寫本)을 의미하는 책을 말하며, '기가스(Gigas)'는 그리스어로 '거인(giant)'을 뜻한다. 이 필사본은 내부에 있는 거대한 악마의 그림 때문에 종종 '사탄의 성경' 또는 '악마의 성서(Devil's Bible)'라고도 한다. 코덱스 기가스(Codex Gigas)는 나무로 된 겉표지를 가죽으로 싸고 금속 장식을 하고 있다. 50 cm× 92cm × 22cm에 달하는 이 중세 필사본은 본래 320장의 페이지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중 베네딕트 수도원의 규율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8장이 어떤 의도에서인지 뜯겨나간 상태이다. 코덱스 기가스의 무게는 거의 75 kg에 달하며, 책의 낱장을 구성하는 피지는 160 마리의 당나귀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코덱스 기가스(Codex Gigas)는 수도원 규율을 어기고 독방에 갇힌 한 수도사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자신의 죄를 회개한 수도사는 지은 죄를 면책받고 수도원의 영광을 높이기 위해 하룻밤만에 책을 만들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속에 인간의 모든 지식을 담고자 하였다. 그러나 한밤중이 가깝도록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작업을 진행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수도사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도움을 청했고, 악마는 그를 도와 책을 완성시켰으며, 수도사는 그의 도움에 대한 보답으로 악마의 그림을 그려 삽입하였다는 것이다.
주3) 뷜렌트 아탈레이.『다빈치의 유산 』. 채은진 역. 말․글빛냄, 2008, p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