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속, 여인과 향기

5화. 일탈을 꿈꾸는 향기, 아쿠아 디 지오

작은 땅의 그윽한 향기가 아무런 미동 없는 의식의 장벽을 무너뜨린다.
향기는 빛이 되고 소리가 되어 나를 일으키며
새벽의 여명이 채 가시지 않은 거리로 나를 내몬다.
스쳐가는 잿빛 냄새는 묻혀 있던 아픈 기억의 문 밖으로 나를 데려간다.
소리는 향이 되고 다시 빛으로 변하여 사라져 버렸다.
어둠이 걷히고, 차창으로 아침의 빛이 쏟아져 내린다.
꿈이었나, 생생히 기억되는 모든 것을 떠올리며
내 몸은 또 다른 일탈을 향해 달리고 있다.


1995년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에서 출시된 ‘아쿠아 디 지오Acqua Di Gio'는 플로랄 아쿠아틱 계열의 도피주의(Escapism)를 컨셉으로 만든 향수로 일탈과 여행에 대한 그리움, 바다에서의 휴식을 향으로 표현하고 있다.

재스민, 프리지아, 히야신스 등의 꽃 향과 그레이프와 같은 열대 과일 향, 그리고 마린 향과 우디, 머스크의 절묘한 조화를 통해 지중해 바다의 냄새를 절묘하게 재현해낸 이 향수는 시칠리아 북부의 아름다운 자연을 통한 마음의 안정, 햇빛에 의해 따뜻해진 신선한 공기, 이러한 것들의 욕구로 인해 떠나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을 색과 향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쿠아 디 지오’는 내게 있어서 순간의 일탈이 아닌 영원한 여행을 떠난 한 여인과 같다.

제인 엘리자베스 딕비Jane Elizabeth Digby.

1824년 엘렌버러의 남작인 에드워드 로우와 결혼하였으나 1830년 의회의 승인을 받아 이혼하고, 당시의 수많은 엘리트남자와 염문을 뿌리며 자신만을 사랑하는 진정한 사랑을 끝없이 갈구한 여인.

그녀는 독일 바이에른의 국왕 루드비히 1세를 만나 그의 연인이 되었고, 그로인해 화가 요제프Joseph Karl Stieler의 손에 의해 ‘아름다움의 갤러리’의 일원이 된다.


lady-jane-digby_1.bmp 요제프(Joseph Karl Stieler)의 제인 엘리자베스 딕비(Jane Elizabeth Digby)

하지만 제인은 그녀의 사랑을 채울 수 있는 상대를 만나지 못했고, 언제나 텅 빈 마음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그녀의 나이 마흔 여섯. 제인은 중동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였고, 이 여행에서 한 사람을 만나게된다.

그는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자신의 진정한 사랑.

자신보다도 무려 20살이나 어린 시리아 지방의 쉐이크였던 메드주엘 엘 메즈라브Sheikh Medjuel el Mezrab였다.

평생을 찾아 헤메던 그녀의 사랑 앞에서 나이는 무의미 했고, 드디어 맺어진 그녀의 사랑은 1881년 8월 11일에 다마스쿠스에서 발열과 이질로 사망할 때까지 28년 동안이나 변함없이 이어지며 영원한 사랑의 향기를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아쿠아 디 지오’향수를 발매한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1934년 이탈리아 북부도시 피아첸차에서 태어났다.

처음 의학도의 길을 걸었으나 백화점의 바이어와 남성패션 스타일리스트로 일하게 되며, 1974년 세르조 갈레오티와 함께 조르지오 아르마니를 설립하여 정식으로 패션계에 진출했다.

그는 불과 몇 년 만에 톱디자이너로 인정받게 되었고 ‘지오’향수를 발매하면서 새로운 향의 혁명을 일으켰으며, 뒤를 이어 나온 ‘아쿠아 디 지오’의 발매는 유럽과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젊은이들을 일탈을 꿈꾸는 아르마니 향수마니아로 만들었다.


향기는 그것을 맡는 인간의 후각 없이는 스스로를 충족시킬 수 없다. 향기의 자기실현은 인간의 후각을 통해 사라짐으로서 기억하게 되는 부산물로 충분한 것이다.

향기는 스스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그 주체인 사람의 후각 없이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

요컨대 향기는 인간의 삶과 감성의 충족을 위한 후각의 객체라는 것이다.


세상의 향기는 모두 이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름 붙여지지 않은 것이 훨씬 많을 것이다.

향기는 언어나 기호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어서, 하나의 이름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맡는 사람마다 각기 다르게 느끼는 것이 향이기에.


Olfactory Dire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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