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속, 여인과 향기
8화. 기적의 물, 4711 오드콜로뉴
나는 새로운 향수를 만들었다.
그것은 이탈리아의 아침을, 야생 나르시스를
그리고 비가 온 뒤의 오렌지 꽃을 떠올리게 만든다.
또한 나의 감각과 환상력을 강하게 해 준다
향기가 있는 순간은 일상의 지나가는 수평적 시간과는 달리 높이와 깊이가 있는 수직성을 지닌 시간이다.
또한 그 시간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하나의 고리로 이어져 있다.
지나가는 일직선의 시간 속에서 정지되지 않고 반복적인 일상의 모양으로, 하지만 늘 다르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1792년 10월 8일. 한 명망 있는 은행가의 아들 빌헬름 뮐헨스Wilhelm Mühens의 결혼식이 있었다.
결혼 선물 중에는 카르투지오 수도승Carthusian (1084년에 聖 브르노에 의하여 독일 쾰른에서 세워진 수도회로 아주 엄격한 계율로 널리 알려져 있다)이 준 양피지에 쓰인 고문서가 하나 있었다.
거기에는 바로 기적의 물aqua mirabilis (이것이 훗날 '쾰른의 물' Kölnisch Wasser 로 칭해진다)의 조제법이 쓰여 있었는데, 그 이후 뮐헨스는 집에다 간단한 제조 장치를 설치하여 이 '기적의 물'을 제조 판매하기 시작하였다.
오드콜로뉴 4711의 향수 이름에 '4711'라는 숫자가 붙은 것은 그가 살고 있던 집의 번지수였다.
1794년 프랑스 혁명군대가 쾰른에 주둔하였을 때 당시 사령관은 각 집에 번호를 표시할 것을 명하였고 뮐헨스의 집이 4711번을 얻게 된 것이다.
1875년 상표를 등록하여 1994년까지 가족회사로 이어져왔지만 몇몇 회사를 거쳐 지금은 마우어 앤 비흐츠 Mäurer & Wirtz사에서 운영되고 있다.
4711의 향취는 감귤향이 가득한 시트러스 프레쉬향으로 탑 노트는 오렌지, 피치, 바질과 베르가못, 레몬 등 상큼하고 시원한 느낌을 준다.
미들 노트는 시클라멘, 릴리, 자스민, 불가리아 장미의 화사하고 이국적인 꽃 향으로 다가오며, 마지막 베이스 노트는 패츌리. 베티버, 샌들우드, 머스크 등 뿌리와 나무 동물 향이 적절이 배합하여 만병통치약처럼 깊은 땅의 냄새를 흩뿌려준다.
하지만 220년간 정확한 포뮬라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의 젊은 베네치아 여인의 초상Portrait of Young Venetian Women에서 또 하나의 기적을 만날 수 있다.
이 그림은 독일 화가가 이탈리아에서 그린 것인데, 그래서 그런지 이탈리아의 아침을 표현한 기적의 물과 많이 닮아 있다.
당대 독일에서의 최고의 초상화가였으며, 종교적 이미지가 강했던 그는 루터를 추종하였고 그 시기에 그린 많은 초상화들 속에 종교개혁의 이미지가 스며있었다.
유로화가 나오기 전까지 독일의 마르크화의 화폐에 모델이 되었던 그림 속의 여인은 단순히 보이는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조화와 균형이라는 관용적 자세에서 미의 기준이 결정되어야 하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뒤러의 미의 기준은 섬세함 속에 숨어있는 따뜻한 관용의 아름다움인 것이다.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의 젊은 베네치아 여인의 초상Portrait of Young Venetian Women
4711을 있게 한 퀼른의 요한 마리아 파리나는, 아쿠아 미라블리스라고 명명된 오드콜로뉴를 생산,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이탈리아 수도원에서 개발된 것과 유사한 시트러스향이 강한 물질이었다.
'기적의 물'은 르네상스 시대에 연금술사에 의해 개발된 알코올을 기본으로 하는 가벼운 향의 일종으로, 처음에는 음료용과 향으로 만들었으며 그 약용적 특성으로 인한 치유력으로 유명해져서 인기를 끌다가, 18세기 후반에 와서는 원기 회복제로 다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이것이 너무 범람하자 조향사들의 경쟁거리가 되었으며, 1810년 나폴레옹이 조향사들로 하여금 제조 방식을 공개하도록 하는 칙령을 공포했으나, 아쿠아 미라블리스를 오드콜로뉴라고 이름만 살짝 바꾸어 법령을 피하였다.
그러나 오드콜로뉴는 단순히 이름만 바뀌었을 뿐인데도, 그 후로는 기적의 물이 되지 못하였다.
어쩌면 기적은 현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지도 모른다.
그것은 간절히 바라는 믿음에서 출발한 것이 아닐까.
기적은 강한 믿음과 노력, 그리고 영혼의 힘이 있다면 누구에게든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작은 유리병 속에 갇혀 있는 기적의 물을 세상 밖으로 날려 보자.
많은 이들이 그 향기를 맡으며 작은 기적을 만날 수 있도록.
Olfactory Direc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