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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 후각으로 떠나는 여행

11. 아우라지의 한


11. 아우라지의 한     


태백산맥 가운데에 위치하여 사방이 산에 겹겹이 둘러싸여 겨우 강 연안의 계곡에만 좁고 긴 평지가 있는 척박한 땅, 한때는 사북 탄광촌의 번성으로 인구가 10만이 넘었으나 폐광으로 인하여 5만 남짓으로 축소되어 약초 캐기와 산나물 캐기 등으로 삶을 지탱하는 곳.


고구려의 영현이 668년 잉매현(仍買縣)으로 불리다 신라 통일 후 757년(경덕왕 16년)에 비로소 지금의 이름을 가졌던 그곳 정선(旌善)은 참으로 한이 많은 곳이다

우리에게는 오로지 '정선 아리랑' 외에는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는 황량한 그곳을 방문한 것은 팔월 초순이었다. 큰비가 온 뒤여서 도로는 곳곳이 찢겨,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구절(九切) 쪽의 송천(松川)과 임계(臨溪), 골지천이 합류되어 어우러진다 하여 이름 붙여진 아우라지. 남한강 일천 리 물길 따라 목재를 서울로 운반하던 유명한 뗏목 터로, 사공들의 아리랑 소리가 끊이지 않던 그윽한 곳이다.


하지만 뗏목 운반과 행상을 하러 객지로 떠난 임을 애달게 기다리는 여인과 장마 때문에 불어난 강물을 사이에 두고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애절한 남녀의 한스러운 곳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 마음을 적어 읊었던 것이 '정선 아리랑' 이 아닌가 한다.애절한 한이 이방인의 첫 발을 눈물로 맞이하나 보다. 

곡예를 하듯 고개를 넘어, 몇 번을 물어보며 찾아간 곳은 정선군 농업기술센터였다. 하얀 건물이 단정해 보인다.


비 온 후, 하오의 햇빛은 모든 것을 잠시 정지시킨다. 시간, 바람, 사람의 움직임까지도.

눈을 감고 소파에 앉아 있던 센터장은 내게 농업만이 살길이라며, 진흙땅 길 끝의 연구동으로 나를 안내한다. 생열귀 꽃의 약효와 개발 가능성에 관하여 역설하며 그 향기를 보낸다.

향기는 정지된 모든 사물을 살아 숨 쉬게 하며, 내 코끝으로 다가와 달콤하고 화사한 냄새로 폐부 속으로 스며든다.      


 동양의 향은 주로 고체 상태로 태우는 선향이나 가루 향, 그리고 향환 등 자연 상태 그대로 태우거나 조향 한 것이 다. 이것들을 통칭하여 인센스(incense)라고 한다.

라틴어 'incensus'에서 온 것으로, 인간의 감성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는 어원에서 출발하여 태울 때 향내를 풍기는 것을 말한다. 그 기원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향유 나무에서 추출된 수지나 향료가 아라비아와 소말리아 해변에서 수입되어 종교의식에 사용된 이집트로 알려져 있다

그 후 그리스, 로마, 인도에까지 전파되어 종교의식이 나 축제에 사용되었었고, 중국에서는 의학과 문화로 확장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불교문화와 궁중 의식 그리고 의학과 예술로 승화되었다.


6세기경 백제를 통해 전파된 일본의 인센스는 문화와 종교의식을 뛰어넘어 놀이로 발전되었으며, 교오(koh)의 섬세한 향은 200년 동안 헤이안 시대 귀족들의 즐거움과 여흥을 위해 사용되었다. 서양의 향수와는 달리 인센스는 정신적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여 정신과 육체에 새로운 세계를 열어 놓은 고귀한 예술인 것이다.

 이는 환경을 개선하고, 신체를 편하게 하며, 정신을 안정시키고, 피곤한 신경을 달래주는 치료제 역할까지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인센스, 우리가 찾아야 할 새로운 예술이자 문화이며 산업인 것이다.   



   

1월의 끝자락, 새벽의 향기를 가르며 두 번째 정선 방문길에 올랐다.

영동 고속도로의 새말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국도를 타고 평창을 거쳐 정선으로 가는 길은 지난여름에 왔을 때와는 사뭇 달랐다. 내와 산이 예사롭지 않았다. 아름다운 겨울 풍경이다

시간의 흐름은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생열귀 꽃이 그동안의 연구개발로 상업화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하니, 달라지지 않은 것은 묻어 놓은 뿐인가? 준비된 차를 타고, 산삼과 약초, 산나물로 뒤덮인 1,561미터의 가리왕산으로 향하였다. 지금은 동계올림픽으로 인해 산이 다 파헤쳐 저 버렸지만, 산 중턱에 접어드니 온통 눈이다. 사륜구동 차량도 쉽게 오르지 못한다. 길이 험하다. 길을 따라 철책이 쳐져 있다. 야생동물이 산 아래로 내려오지 못하게 막아 놓았다고 한다.

1,100미터의 팻말이 있는 곳에 차를 세웠다. 눈이 얼어 빙판이 되어 버린 산길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나의 신발 때문에 자꾸만 나를 밀어내어 버린다. 안내자가 더 이상 오르지 않고 멈추자, 내 신발도 안도의 숨을 내쉰다.


하얀 눈 사이로 시원하고 톡 쏘는 솔 향과 정향의  냄새가 어우러져 우리  곁으로 다가선다. 눈 측백나무에서 나는 냄새다.

1,000미터 이상인 고산 지대의 음지에서만 자란다는 눈 측백나무가 100여 그루 정도 군락지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 향기는 계절의 중심을 분해시키며, 고고하게 모습을 드러내어 한동안 우리를 감싸고돌았다. 약효와 향기가 뛰어나 활용 가능성이 높지만 쉽게 구할 수가 없단다. 이처럼 군락지 형태로 발견된 것은 아주 드문 일이라고 한다.


 농업 기술 센터의 담당자는 측백 씨앗의 조직 배양을 통해 대단위 재배를 하고 싶단다. 성공할 수만 있다면 대단한 일이며, 약재와 향재로서 상당한 소득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와 함께 먹은 점심은 향어 찜이다. 아주 큰 향어 한 마리에 온갖 약초와 강냉이를 넣은 찜이었다. 먹기도 전에 그 향이, 피곤하던 내 몸에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일곱 명이 먹어도 남을 만큼 충분한 양이다. 향어의 향기를 먹고 난 후, 그는 이곳을 약초와 향의 마을로 만들고 싶다고 한다. 향 영농 조합을 조직하여 농민들의 소득도 높이고, 약초 공원과 축제를 열어 타지의 관광객을 유치하여, 정선을 아리랑만으로 기억하지 않게 하려는 그의 생각은 아름답다.


군민들의 이러한 노력이 아우라지의 한을 풀고 새로운 정선을 만들어 갈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선다. 다만, 사북 탄광촌이 카지노장으로 바뀐 지금, 또 다른 한이 생기지나 않을까 하는 나의 생각은 기우일 뿐일까?     

정선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에, 오후의 햇살이 얼어붙은 강가에 투영되어 내 귓가에 소리로 들려온다.    

 

“아우라지 강가에 수줍은 처녀 

그리움에 설레어 오늘도 서있네 

뗏목 타고 떠난 님 언제 오시나

물길 따라 긴 세월 흘러 흘러갔는데 

아우라지 처녀가 애태우다가

아름다운 올 동백의 꽃이 되었네“

(정공채의 시 중에서)    

 

 아침 햇살에 비친 내 책상 한 모퉁이에 있는 작은 나뭇가지 하나가 그때 그 모습으로 환하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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