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잔설
10. 잔설(殘雪)
늘 가보고 싶고, 그리운 것이 있다. 많은 이들이 생각은 하고 있지만 무슨 이유든 보러 갈 수 없는 자신만의 핑계를 댄다. 어쩌면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습관 같은 것이 아닐까? 사실은 무엇을 우선으로 하는 가에 달려 있는데도 말이다.
올 크리스마스도 예년과 다름없이 눈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 가보고 싶고 그리운 것을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삶이다. 그가 내게 올 수 없다면 내가 그의 곁으로 가면 될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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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국립공원에 도착한 때는 크리스마스의 늦은 오후였다. 세찬 바람이 귓가를 때린다. 흐릿한 하늘과 멀리 보이는 설악의 잔설에 마음을 빼앗긴다. 희끗희끗 보이는 눈! 그것은 이미 내게 어떤 대상이 아닌 그리움으로 다가선다. 내리지 않아도 좋다. 밟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 내 영혼은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맞이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공검 산장으로 가고 싶었는데 이미 표가 매진되었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내가 다녀갔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신흥사로 발길을 옮겼다. 하지만 설악의 바람이 쉽게 걸음을 허락하지 않는다. 흔들거리는 겨울의 그리움은 호박엿을 파는 할머니의 주름살에 묻혀 짙게 한숨짓는다.
길가와 산등성이에 길게 뻗은 소나무들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다본다. 그리고 자기의 냄새를 바람에 실어 내게 보낸다. 푸른 솔 향이 금방 하얗게 다가와 코끝에서 부서진 다 언젠가 맡았던 설악 향수의 향기를 기억나게 하면서 말이다. 설악을 뒤로하고 돌아가는 길에 하루의 마지막 햇살이 차창에 번지며 따스함을 가져다준다.
우리가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것은 자연 속에 있기 때문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여러 종류의 냄새를 부여하는데, 그중에서도 꽃과 초목의 향기를 제일로 하고,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 냄새에 둘러싸여 생활하는 것이 우리가 아닐까 한다. 사람은 이러한 냄새에 둘러싸여 있지 않으면 허전함을 느끼게 된다. 그런 마음가짐이 때때로 뜰에 장미를 심게 하고, 때로는 거실과 책상을 꽃으로 장식하게 하며, 누군가에게 꽃을 선물하게 하는 것이다.
냄새가 없으면 삶의 즐거움이 없을 정도로, 냄새와 인간의 삶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아무리 춥고 눈이 내린다 할지라도, 어디에선가 꽃향기가 난다면, 그것만으로 음침하고 추운 겨울날은 밝고 따사로운 온기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소나무! 언제나 푸르름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또한 향의 재료로서 무엇과도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뿌리, 줄기, 잎, 솔방울뿐만 아니라, 소나무 등걸의 이끼까지도 향재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구자향의 제조법에 애눌1)이 제일 먼저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더라도 솔 향은 우리의 소중한 향기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풍상에 지쳐 잎과 가지가 다 망가져도 그 뿌리만큼은 튼튼한 생명력을 지켜나가는 설악 작은 땅의 소나무를 보고 있자니, 세밀한 바람에도 뿌리째 흔들리며 쉽게 변해버리는 작금의 사랑이 더도 말고 소나무만 같았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향료 애용은 결코 서구 문명에 한정되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향을 전파하는 데에는 동양에서 기여하는 바가 더 크다고 할 정도이다 중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도 향은 일찍부터 신성한 것으로 취급되어 왔다.
향료는 사원의 제단에서 분향되었고, 옷에 향 분말을 뿌려 향긋한 냄새를 풍겼으며, 머리에는 사향, 용연향 등의 포마드를 발랐다. 방에는 선향을 피워 냄새를 가득 채웠으며, 향연에는 향을 입힌 종이를 썼다. 그리고 차에는 꽃잎을 띄워 향기를 더하였다.
기록을 보면, 동양이 서양에 여러 가지 향료를 전해준 것이 나온다. 다만 서양은 상업적인 향수로 발전시켜 상품 화 시켰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향의 시작은,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19대 눌지왕 때 고구려 스님인 묵호자가 신라 땅에 처음 들여왔다고 했다. 그런데 고구려의 쌍영총 고분 벽화에 향료를 든 소녀의 그림이 있는 것을 보면, 훨씬 전인 것으로 추정된다. 밑이 둥글고 낮은 그릇처럼 생긴 종발 같은 것이 올려진 모양의 향로에서 세 줄기의 향연이 아직도 피어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서양의 향 문화가 향과 사람을 하나로 묶어 새로운 냄새로 발전시키는 향수 문화라 한다면, 동양의 향 문화는 정신적인 내면을 중시 여겨 자연 그대로의 향을 사용하여 사람과 향이 서로 어우러진 냄새를 원하였던 것이다.
어둠이 짙게 깔린다. 멀리 수평선 끝 속초의 밤바다에 웬 태양! 하나가 아니다. 수십 개의 작은 해가 온 바다를 비추고 있다. 오징어잡이 배다. 때 아닌 이상 기온으로, 잡혀야 할 명태는 온데간데없고 온통 오징어뿐이다.
멀리 낙산사에서 불어오는 미풍에 코끝을 가까이 가져가니, 짠 냄새와 함께 해송의 향기가 스친다. 설악의 솔과 낙산의 해송 향이 어우러져 난무하며 바다 끝으로 밀려난다.
허전한 것은 마음뿐만 아니라 내 배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많은 사람이 밝은 불빛이 있는 곳으로 떼를 지어 간다. 어딜까? 속초의 대포 항이다.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인파 속에 묻혀 스며들어 본다. 크리스마스 연휴를 이곳에서 보내려는 타지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순간, 많이 맡아본 향수의 향기가 이곳저곳에서 나는 비릿한 생선 냄새와 함께 묘한 냄새로 변하여 내 후각을 마비시켜 버린다.
그 순간 작은 땅은 비명을 지른다.
"악향은 양향을 구축해요"
1) 애눌 : 100년 묵은 소나무 등걸에 피는 푸른 이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