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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YB Dec 30. 2023

우리는 왜 이렇게 불안할까?

알랭드 보통 <불안> - 역방향 개요 작성

원제 : status anxiety(지위에 대한 불안)



지금 보다 더 나은 모습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불안을 느낀다.
-알랭 드 보통





이 책에서 말하는 지위란?

세상의 눈으로 본 사람의 가치나 중요성을 말한다.

높은 지위는 자유, 안락, 시간, 남들에게 먼저 배려받고 귀중하게 여겨진다는 느낌을 준다.

우리가 지위를 중시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가 자아상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이 자신을 존중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못하면 스스로도 자신을 용납하지 못한다.



지위와 불안감의 상관관계

지위는 우리의 성취에 달려있다.

실패에서 굴욕감이 생긴다. -> 이것은 우리가 세상의 우리의 가치를 납득시키지 못했고 따라서 성공한 사람들을 씁쓸하게 보며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는 처지에 놓였다는 괴로운 인식에서 나온다.

지위에 대한 갈망은, 자신의 재능을 공정하게 평가하도록 자극하며, 남들보다 나아지도록 고무하며, 남에게 해를 주는 괴팍한 행동을 못하게 억제하며, 공동의 가치 체계를 중심으로 사회 구성원들을 결합한다.




불안감의 원인



<사랑결핍>

왜 우리는 사랑을 갈망하는가?

생존의 욕구가 해소된 뒤에도 더 높은 사회적 위계를 바라는 것은 사랑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돈, 명성, 영향력은 그 자체로 목적이라기보다는 사랑의 상징(혹은 수단)으로서 더 중시된다.

사랑은 그 대상(가족, 성적 관계, 세상 등)이 한 사람의 존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일종의 존중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는 느낌(우리의 존재에 주목하고, 우리 이름을 기억해 주고, 의견에 귀 기울여주고, 약점을 관대하게 받아주고, 요구를 들어주는)은 우리를 번창하게 한다.

낭만적 사랑이나 지위적 사랑이나 다른 사람의 호의적 눈길을 누리며 편안함을 느끼기 위함이다.

낮은 지위는 자존심을 건드리는 문제를 야기한다.

존엄은 모두가 갈망하는 것이다.

조그만 플라스틱 원반이 타인으로부터의 사랑을 제공한다면? -> 그로 인해 열렬 한과 갈망과 불안이 야기될 것이다. 이것은 돈이나 명예의 속성과 마찬가지이다.


" 이 세상에서 탐욕, 야망, 노력, 부에 대한 추구, 권력과 명성, 인간 삶의 위대한 목적은 다른 사람들의 주목과 관심과 공감 어린 표정으로 사근사근하게 맞장구치면서 알은체해주는 것을 위함이다. 이것이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전부다. 아무도 우리에게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 본성의 가장 열렬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뜻이다. 지위와 이름이 있는 사람은 온 세상이 주목하며,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 애덤 스미스




무시를 당하는 것은 왜 견딜 수 없는 '울화와 무력한 절망감'을 야기하는가?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날 때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속성 때문이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느낌은 사람들의 나에 대한 판단과 나를 향한 반응에 좌우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가치를 안다면, 칭찬을 받든, 조롱을 당하든, 누가 엉터리로 우리를 칭찬하든, 스스로 자신을 공정하게 평가하고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여, 다른 사람의 비난에도 상처받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가치를 안다면, 남의 관심 때문에 기운이 나고 무시 때문에 상처받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우리의 에고(자아상)는 바람이 새는 풍선과 같아 늘 사랑이라는 헬륨을 집어넣어 주어야 하고, 무시라는 아주 작은 바늘에도 취약하기 짝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위가 주는 물질적 요소보다는 정신적 요소가 현대인의 불안감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지위로 인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을지, 스스로를 좋아하고 신뢰할 수 있을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지위는 사랑의 얻는 열쇠다.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자신의 인격을 신뢰할 수도 없고 그 인격을 따라 살 수도 없다.


"사회에서 밀려나 모든 구성원으로부터 완전히 무시를 당하는 것보다 잔인한 벌은 생각해 낼 수 없을 것이다.""사회에서 밀려나 모든 구성원으로부터 완전히 무시를 당하는 것보다 잔인한 벌은 생각해 낼 수 없을 것이다."
- 윌리엄 제임스







<속물근성>

이 책에서 말하는 말하는 속물이란?

하나의 가치 척도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모든 사람

사회적 지위를 인간의 가치로 보는 시선을 가진 사람

전통적으로는 귀족계급에 대한 관심을 의미한다.




속물의 특성

속물의 일차적 관심은 권력이며, 권력 구조의 변화에 따라 순식간에 자연스럽게 존경 대상이 변한다.

우리의 지위가 아닌 다른 것들로 그 속물들이 우리에게 하는 행동을 통제할 수 없다.

어릴 때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무조건적인 애정을 얻고 귀중한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어른이 된다는 것은 냉담한 속물들 사이에서 자리를 확보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애정은 성취와 관련을 맺기 시작한다. 예의를 지키고, 좋은 성과를 거두고, 계급이나 명성을 얻는 일이 중요해진다.

그런 노력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지만, 남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것만으로는 우리의 근저에 깔린 감정적 욕구는 채워지지 않는다. 발가벗겨진 상태의 정체성만으로도 우리를 끌어안아주었던 그 관대하고 무차별적인 사랑을 다시 붙잡고 싶기 때문이다.

권력이나 명성은 우리 자아의 진정한 알맹이 바깥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지위와 영향력을 잃는 다면 그 사람의 태도가 곧 바뀔 것이라는 변덕스러움을 감지하고 그 속물무리를 멀리한다.

이것은 아슬아슬하게 쥐고 있는 지위가 본질적 자아와 아무런 관련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두려움은 어떻게 속물은 만들었는가?

문제를 이해하면 결국 두려움이 모든 일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의 자리에 확신을 가지는 사람은 남들을 경시하는 것을 소일거리로 삼지 않기 때문이다.

오만 뒤에는 공포가 숨어 있다. 괴로운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차별하고 경시하려고 애를 쓴다.

두려움은 전승된다. 학대는 학대를 낳고, 속물은 속물을 낳는다. 낮은 지위가 곧 무가치한 존재로, 높은 지위가 훌륭한 존재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내적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감정적 토대를 박탈해 버린다.

자신이 속물적 진술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부인하기도 힘들다. 거만한 사람에게 무시를 당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를 무시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얻고자 하는 갈망이 생긴다. 어떤 사람들을 싫어한다고 해서 그들이 우리를 좋아하는 것도 싫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단의 속물근성은 사회적 야심이 사랑과 인정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양 그것을 쫓아다니게 만든다.

그런 행동은 두려움, 존엄에 대한 욕망이 채워지지 않는 상태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경멸하기보다는 슬퍼하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 옳을 지도 모른다.

사실 사치품의 역사는 탐욕의 이야기라기보다는 감정적 상처의 기록으로 읽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이 역사는 남들의 경멸에 압박감을 느껴 자신에게도 사랑을 요구할 권리가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텅 빈 선반 위 엄청난 것들을 전시하려 했던 사람들이 남긴 유산이기 때문이다.

가난이 낮은 지위에 대한 물질적 형벌이라면, 무시와 외면은 중요한 상징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속물적 세상이 내리는 감정적 형벌이다.








<능력주의>

근대에 들어 가난과 사회적 가치를 설명하는 방식에서 응보의 관점이 강력하게 개입하게 되었다.

그 결과 낮은 지위에 처한 사람은 점차 감정적으로 견디기 힘든 처지에 놓이게 되었는데, 이 흐름이 낮은 지위에 대한 불안을 느끼는 네 번째 이유다.




사회 낮은 지위 계층에 대한 의미

20세기 후반까지 서양에서 통용되던 의미는 다음과 같았다.

가난은 가난한 사람들의 책임이 아니며 가난한 농부들은 사회에서 가장 쓸모가 크다.

낮은 지위에 도덕적 의미는 없다.

부자는 죄가 많고 부패했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강탈하여 부를 쌓았다. 이러한 이야기는 믿을 수만 있다면 낮은 계층의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불안을 덜어주었을 것이다.


"사치스러운 집에 들어앉아 어떤 일도 할 필요 없고, 여러 편리한 장치를 갖추어놓고 가만히 앉아 다른 사람들에게 일을 시키며 스스로 귀족, 그러니까 고귀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우리 아버지가 나를 위해 일을 했소, 우리 아버지가 나를 위해 도박에서 이겼소, 그는 그렇게 말한다. 남이 준비해 준 식사를 하고 창밖으로 몸을 던지지 않는 것 외에는 아무런 과제를 주지 않는 것이 이 땅의 법칙이자 우주의 법칙으로 여겨지다니!"
- 토머스 칼라일


빈민가의 주민은 자신이 그곳에서 살게 된 주된 이유가 고용주의 극악한 행위와 경제 체제 특유의 부패 때문이라는 말을 들으면 도덕적 우월감이 샘솟아 기운이 나고 자신의 초라한 조건에 대한 부끄러움도 사그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18세기 중반 무렵부터 다음의 세 가지 이야기가 꾸준히 영향력을 발휘한다.

빈자가 아니라 부자가 쓸모 있다.

지위에는 도덕적 의미가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어리석음 때문에 가난한 것이다.


"사회에서 가장 쓸모 있는 사람은 부자이다. 부자들이 지출을 하기 때문에 그들 밑의 모든 사람들이 고용되는 것이며, 따라서 부자들이야말로 사회에서 가장 약한 사람들의 생존을 돕는다. 부자들의 욕망은 한계를 모르며, 칭찬을 얻고 싶어 하지만 행복이 물질적 획득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큰 부를 추구하여 그것을 얻는 일은 열심히 해도 별 보람이 없는 노동자들의 일보다 사회에 훨씬 도움이 된다."
- 맨드빌


때문에 현대 사회에 더 만연한 것은 사람의 가치를 판단할 때는 그들의 영혼을 볼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보아야 한다는 시각이다.


"사치품에 대한 요구가 없는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나태에 빠지고, 삶의 즐거움을 모두 잃어버리며, 결국 공중에게도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들은 군대를 유지하거나 먹여 살릴 수 없다."
- 흄


"사회의 복지는 불필요한 자본을 축적하고 자신의 부를 자랑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망과 능력에 달려있다."
-애덤 스미스

만일 모든 사람이 똑같은 교육을 받고 똑같은 직업 선택 기회를 가진다면, 수입과 위신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개인의 재능과 약점에 비추어 정당화될 수 있다.(수입이 평등할 필요는 없다) 특권과 곤궁은 능력을 따라간다.






<기대>

현대 사회의 풍요

19세기 영국의 소비자 혁명과 유럽과 미국 전역에 오픈한 거대한 새 백화점들은 예전에는 왕가에서나 볼 수 있었던 물자를 보통 사람들에게 제공했다.


"근대 사회는 모든 구성원을 먹여 살릴 수 있다. 근대 사회에서는 아무리 지위가 낮고 가난한 노동자라 해도 근면하게 일하고 절약을 하기만 하면, 과거의 어떤 야만인이 얻을 수 있었던 것보다 많은 생활필수품을 손에 넣고 편리한 생활을 즐길 수 있다."
- 애덤 스미스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 사는 우리는 왜 가장 불안할까?

실제적 궁핍은 급격히 줄어들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궁핍에 대한 공포, 지위로 인한 불안은 늘어났기 때문이다.

중세 유럽에서 변덕스러운 땅을 경작하던 조상은 도저히 상상도 하지 못할 부와 가능성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 놀랍게도 자신이 모자란 존재이고 자신의 소유도 충분치 못하다는 느낌에 시달리게 된다.

부나 존중의 적절한 수준은 결코 독립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준거집단(우리와 같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조건과 우리의 조건을 비교하여 결정된다.

역사적 맥락에서 우리가 놀라운 번영을 이룩했다고 강조하는 소리를 들어봤자 전혀 감동을 느낄 수 없다. 오직 우리가 함께 자라고, 함께 일하고, 친구로 사귀고, 공적인 영역에서 동일시하는 사람들만큼, 혹은 그보다 약간 더 가졌을 때 우리는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느낌(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받는 그 느낌)이야말로 불안과 울화의 원천이다.


"질투심을 일으키는 것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 사이의 커다란 불균형이 아니라 오히려 근접 상태다. 우리는 우리에게서 먼 것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으며, 비교한다 해도 그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다."
- 데이비드 흄







불평등이 당연했던(궁핍했던) 시대의 사람들은 왜 오히려 안정감을 느꼈을까?

사실 역사상 대부분의 기간에는 불평등과 낮은 기대 수준이 정상적이고 지혜로운 것이었으며 극소수만이 부와 충족을 갈망했다. 다수는 자신이 착취를 당하며 체념 속에 살아갈 운명임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날 때부터 자유롭고 어떤 사람들은 날 때부터 노예이며, 날 때부터 노예인 사람들에게는 노예제도가 편리하고 정당하다."
- 아리스토텔레스

귀족 계급이 존재했던 사회의 민중은 자신이 속한 사회적 신분 외에 다른 가능성은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지도자와 동등해지기를 기대한 적이 없으며, 자신의 권리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엄혹한 환경에 대해 그저 신이 정해준 불가피한 고난이라고 생각했다. 사회는 불평등했지만, 그것 때문에 인간의 영혼이 타락하지는 않았다.

이 체제는 가장 밑바닥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들의 성취를 비교 기준으로 삼을 필요가 없는 자유를 주었다. 덕분에 그들은 열등감에 시달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다.






더 많이 원할 수록 더 많이 불안하게 된다.

출생과 운에 따른 모든 특권을 폐지했을 때, 모든 사람이 직업 선택의 자유를 누릴 때, 야망이 큰 사람은 위대한 일을 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며, 자신이 비범한 운명을 타고났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모든 것이 대체로 평등해지면 약간의 차이라도 눈에 띄고 만다. 그래서 풍요롭게 살아가는 민주사회의 구성원이 종종 묘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평온하고 느긋한 환경에서도 삶에 대한 혐오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은 물질적 평등을 성취할 수단이 없는데도 이론적으로는 평등하다고 느낀다. 가난한 시민은 부자 시민을 가까운 거리에서 관찰했으며, 언젠가는 그들의 뒤를 쫓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갖게 된다.


"귀족사회에서 선뜻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하인들은 '드높은 생각, 강한 자부심과 자존심'을 가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민주사회에서는 언론과 여론이 하인들도 사회의 정상에 올라설 수 있다며 무자비하게 부추겼다."
- 토크빌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성공을 거두어야만 자신에게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또 어떤 일에서 실패한다고 해서 반드시 수모를 느끼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자존심과 가치관을 걸고 어떤 일을 했는데 그 일을 이루지 못했을 경우에만 수모를 느낀다. 무엇을 승리로 해석하느냐, 무엇을 실패로 간주하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목표다."
- 윌리엄 제임스


시도가 없으면 실패도 없고, 실패가 없으면 수모도 없다. 따라서 이 세계에서 자존심은 전적으로 자신이 무엇이 되도록 또 무슨 일을 하도록 스스로를 밀어붙이느냐에 달려 있다. 이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자기 자신의 잠재력에 대한 실제 성취 비율에 의해 결정된다.









방정식을 통해 도출된 자존심을 높일 수 있는 두 가지 방법 (feat. 제임스의 방정식)



제임스의 방정식: 자존심 = 이룬 것/내세운 것

즉, 이것은 우리가 무엇을 목표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행복이 결정된다는 것을 설명하는 공식이다. 이를 근거로 자존심을 높이는 두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맘에 드는 방법을 둘 중 하나 선택하면 된다.



1. 더 많은 성취를 거두기 위해 노력한다.


"이제 당신은 학교에 가겠다고 결심할 수도 있고, 춤이나 노래를 배우겠다고, 헬리콥터 조종을 배우겠다고 결심할 수도 있다. 진심으로 결심하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당신이 맺고 있는 관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제 그것을 바꾸겠다고 결심하라. 지금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것을 바꾸어라."
- 앤서니 로빈스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1991)> 중에서



2. 성취하고 싶은 일의 수를 줄인다.


"요구를 버리는 것은 그것을 충족시키는 것만큼이나 행복하고 마음 편한 일이다. 어떤 영역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마음이 묘하게 편해진다. 젊거나 늘씬해지려고 애쓰기를 포기하는 날은 얼마나 즐거운가. 우리는 말한다 '다행이야! 그런 환상들은 이제 사라졌어.' 자아에 더해지는 모든 것은 자랑거리일 뿐만 아니라 부담이기도 하다."
- 제임스


삶은 불가피하게 고난일 수밖에 없다는 확고한 믿음은 수백 년 동안 인류의 중요한 자산이었다.







23살에 성공한 글로벌 작가가 된 알랭드보통이 알려주는 부자가 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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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부자로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1. 더 많은 돈을 주거나 2.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다.

부유하다고 느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돈을 벌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와 같다고 여겼지만 우리보다 큰 부자가 된 사람과 실제적으로, 감정적으로 거리를 두면 된다.

발전한 사회는 결과적으로 우리를 더 궁핍하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무제한의 기대를 갖게 하여 우리가 원하는 것과 얻을 수 있는 것, 현재 모습과 달라졌을 수도 있는 모습 사이에 늘 간격이 유지 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원시의 야만인보다 더 심한 궁핍을 느낄 수도 있다.

벌거벗은 야만인은 가진 것이 거의 없으나, 후손들과 달리 아주 적은 것을 갈망하는 데서 오는 큰 부를 누릴 수 있었다.

우리는 조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기대한다. 그 대가는 우리가 현재의 모습과 달라질 수 있는데도 실제로는 달라지지 못하는 데서 오는 끊임없는 불안이다.


"부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다. 부란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부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부는 욕망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다. 우리가 얻을 수 없는 뭔가를 가지려 할 때마다 우리는 가진 재산에 관계없이 가난해진다. 우리가 가진 것에 만족할 때마다 우리는 실제로 소유한 것이 아무리 적더라도 부자가 될 수 있다."
- 장 자크 루소








<불확실성>


현대인이 불행(불운)을 대하는 자세

환경의 움직임을 통제하고 예측하는 인간의 힘이 성장하면서 운이나 수호신이라는 관념은 힘을 잃었다.

말로는 운이 출세를 좌우하는 역할을 한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스스로 자신의 이력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패배를 불운 탓으로 돌리는 것은 궁색해 보인기까지 하다.

"승자는 운을 만든다. '불운'이 실패를 설명하는 그럴듯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라고 여긴다.




대부분의 현대인이 느끼는 직업적 불확실성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월급(고용되어 일하는 것)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자신을 위해,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의 행복을 위해 일해야 한다. 

그러나 근대 이후 대부분의 인구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남의 행복을 위해 일하는 프롤레타리아들이다.

프롤레타리아란 자신이 가진 자원으로 먹고살 수 없어 불리한 조건으로 돈을 받고 자기 자신을 고용주에게 팔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집단으로 정의된다.

피고용자가 되는 고통에는 고용 기간의 불확실성만 아니라 수많은 작업 관행과 역학에서 오는 모욕감도 포함된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보상을 받고 누가 뒤처지느냐 하는 문제는 억압적 분위기와 불확실성,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하는 불안을 자라나게 한다.

고용의 안정성은 조직 내 정치뿐만 아니라 회사가 시장에서 계속 이윤을 내는 능력에도 달려 있다. 시장은 본래 생산자들이 자신의 경쟁력이나 가격 우위를 장기간 지키기 어려운 곳이다.

회사가 이윤을 개선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방법은 언제나 피고용자 수를 대폭 줄이는 것이다. 때문에 많은 노동자들이 불안감을 느낀다.




불확실함의 끝판왕=인간관계


"사람은 거짓되고, 음험하고, 기만적이고, 교활하고, 자신의 이익에는 탐욕스럽고 남의 이익에는 둔감하므로, 적게 믿고 그보다 더 적게 신뢰한다면 잘못될 일이 없을 것이다."
-구이차르디니


"우리는 언젠가 친구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적과 함께 살아야 하고, 언제 원수가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친구와 함께 살아야 한다."
-라브뤼예르


"중요한 일을 하게 되면 반드시 실패는 감추고 성공은 과장하라. 이것은 속임수이지만, 사실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당신 운명이 걸려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늘 일이 잘 풀리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 좋다. "
-구이차르디니


"당신은 정직한 사람이다. 비위를 맞추지도 않고 미움을 사도 상관 않고 의무를 사랑하며 살 뿐이다. 그래서 당신이 망한 것이다."
-라브뤼예르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보다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다. 사랑은 감사의 유대에 의해 유지되지만, 사람은 지나치게 이해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유리한 기회가 생기기만 하면 이 유대를 끊어버린다. 그러나 공포는 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유지되며 이것은 늘 효과적이다. "
-마키아벨리


"다수는 착하지도 않고 지혜롭지도 않으므로, 친절보다는 엄격함에 의지해야 한다."
-구이차르디니


우리가 실패에 대한 생각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은 성공을 해야만 세상이 우리에게 호의를 보여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간은 웃어줄 만한 확실한 이유가 없으면 좀처럼 웃어주지 않는 법이다.


우리가 저녁을 먹게 되는 것은 빵가게 주인이 자비로운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인간성이 아니라 자기애에 호소해야 한다.
- 애덤 스미스 <국부론>





노동의 의미

모든 상업조직은 원료, 노동, 기계를 가장 싼 값에 모은 다음 그것을 결합하여 제품을 만들어 가능한 가장 높은 값으로 팔려고 한다.

곤혹스럽게도 노동과 다른 요소들 사이에는 불가피하게 존재하는 한 가지 차이가 있다. 노동자는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다.

컴퓨터나 기계는 자신의 불행한 운명을 한탄하지 않는다. 석탄 사용을 중단하고 천연가스를 사용해도 도태된 에너지자원은 절벽에서 뛰어내리지 않는다. 그러나 노동자는 자신의 가격이나 존재를 줄이려는 시도에 감정으로 대응하는 습관이 있다.

상업적 체제의 논리 때문에 언제나 피고용자의 인간적 요구를 제치고 경제적 요구가 선택된다. 이 때문에 임금에 의존하는 모든 노동자의 삶에서는 불안이 떠날 수가 없다.

노동자들은 여전히 자신의 행복이나 복지가 부차적으로 취급되는 과정에서 도구 노릇을 한다.

노동자가 어떤 선의를 보여주고 아무리 오랜 세월 일에 헌신한다 해도, 자신의 지위가 평생 보장되지 않는다. 그 지위는 자신의 성과와 속한 조직의 경제적 성공에 의존한다.

고용의 불안정은 돈 때문만이 아니다. 다른 무엇보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느냐에 따라 남들이 우리를 배려하는 수준, 대접하는 방식이 결정된다. 이것은 우리가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맨 처음에 대답해야 하는 질문이기도 한다.


"부르주아는 개인적 가치를 녹여 교환가치를 만들어냈다."
- 카를 마르크스


"피고용자들에게 지급되는 임금은 바퀴가 계속 굴러가게 하기 위해 치는 기름과 같다. 노동의 진정한 목적은 이제 인간이 아니라 돈이다. 말 그대로 인간이 수단이 되어버린 사회이다.




마지막 한마디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느끼는 불안의 좋은 치유책은 세계라는 거대한 공간을 여행하는 것, 혹은 예술작품을 통하여 세상을 여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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