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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YB Sep 14. 2024

어둠 속의 대화

전시 후기

전시를 좋아하는 친구의 추천으로 부모님과 함께 어둠 속의 대화 전시를 다녀왔다.


어둠 속의 대화는 말 그대로 어둠 속에서 다른 감각들을 이용해서 펼쳐지는 여정을 경험하는 특별한 전시이다. 볼 수는 없으니 전시가 아닌, 전감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까?


우리는 시각이 제거된 대신에 다른 감각들을 더 예민하게 쓸 수 있었다. 도달하는 곳마다 주변을 만져보고 온도를 느끼고, 청각을 곤두세워 다양한 소리를 들어보기도 하고, 소리를 내어 울리는 정도를 파악해 보고, 냄새를 맡아보기도 했다.


또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가이드의 설명에 따라 우리는 공간을 이동할 때마다 마음속에 그리는 장소를 볼 수 있었다. 우리가 마음속에 넓은 세콰이어 길과, 지저귀는 꾀꼬리와, 청명한 푸른 하늘을 그리면 그것은 그 순간 그 공간에 있었다. 마음속으로 핑크빛 돌고래를 그려보면 그것은 그 순간 나와 함께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눈을 감으나 뜨나 마찬가지인 암흑 속이지만 우리가 마음속에 그린 그림에 따라 그 암흑은 각각 다른 공간이 되었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우리는 서로 다른 것을 그리고 있었고, 서로 다른 것을 느끼고 있었다.


사실은 실제 세상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같은 것을 보고 있지만 우리는 서로 다른 것을 본다. 우리 각자가 걸어온 길에 따라 같은 상황도 다르게 받아들이곤 한다. 같은 말을 해도 서로에게 다른 의미를 갖는 일은 아주 흔하게 일어난다.


눈이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함께 간 사람들을 판단할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 쉽게 사람을 단정 짓고 판단하게 하는 외모, 옷차림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단지 그들의 목소리가, 그들이 하는 말이 그들을 나타낼 뿐이었다. 문득, 처음 만난 사람과 이렇게 아무런 시각적 정보 없이 대화해서 그 사람을 알아간다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어떠한 편견과 판단 없이, 대화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사실 좀 더 많은 사람들을 좋아할 수 있지 않을까?


시각을 완전히 차단한, 완연한 어둠 속에서 의지가 되었던 것은 가이드의 목소리, 손을 잡고 이끌어주는 가이드의 안내뿐이었다.


완연한 어둠 속에서도 관람객들을 잘 이끌어주고 안내해 주고, 가이드의 안내가 없으면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우리와는 달리 이 어둠 속을 마당 드나들듯 거니는 가이드가 신기했다. 많은 사람들이 가이드가 적외선 안경을 써서 주변을 보며 이동하는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사실은 가이드 또한 시각장애인으로, 우리와 같은 어둠 속에 있었다. 다만, 그는 어둠에 조금 더 익숙한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단지 시각을 빼앗긴 것만으로 우리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아이와 같이 되었을 때, 어둠의 선배인 그는 많은 의지가 되어주었다. 그러나 그의 세상에서 우리는 한 번이라도 의지가 된 적이 있는 사람들이었을까?


마지막까지 가이드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각자 마음속에 그린 그 모습 그대로 끝내는 마무리가 마음에 들었다. 이 전시에선 상상하는 그대로가 현실에 존재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으니. 내가 그린 그 사람은 그 모습 그대로 거기 남아있다. 그가 그린 우리들의 모습도 그대로 거기 남아있다.


어쩌면 볼 수 있는 능력을 빼앗긴 시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생각하는 대로 현실을 그려낼 수 있는 능력이 주어졌던 시간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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