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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YB Sep 08. 2023

가짜 감정

감정 일기

이해되지 않는 것을 나를 화나게 한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나를 답답하게 한다. 아니, 정확히는 이해되지 않는 것은 나를 불안하게 한다. 나는 설명을 원한다.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줬으면 했다. 이해되지 않는 누군가와의 소통은 나를 화나게 하고, 불안하게 하고, 불안함이 느껴지기 전에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는 도마뱀처럼 나의 마음을 자르고 도망가고 싶게 한다.


내가 그동안 서운하고 화나고 무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어쩌면 사랑받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까 봐 두려워 악을 쓰고 있던 것일지 모른다. 나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화를 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것은 외로움을 감추기 위한 시도였는지 모른다.


나는 소중한 사람과 서로 불편한 감정이 생기면 억압하기보단 표현하고 싶다. 그것이 시간이 더 걸리고 더 어려운 일일 지라도 그것까지도 포용하고 살아갈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하고 싶었다. 내가 말하는 '서로에게 모든 것을 터놓는 진실한 사이'라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서로 속이고 억압하지 않는 관계이다.  분명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노력할 가치가 있다. 우리 삶에서 가장 큰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제대로 부딪혀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장 소중히 대해야 할 사이일 수록 왜 우리는 최선을 다하지 못할까? 어쩌면 서로의 이야기를 좀 더 잘 들어줄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지 모른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감정도 나쁜 감정이란 없다. 느끼면 안 되는 감정이란 없다. 감정을 정확히 인지하고 그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적절한 방법으로 표현하면 감정은 그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감정을 억압하고 억제하고 회피한다면, 부정당한 감정은 표현되지 못하고 차올라 어딘가에 남아 우리의 몸과 마음과 상황을 서서히 부숴 간다.


어린 시절에 상담을 하면서 몸의 기억이라는 것을 배웠다. 마음 속에 응어리진, 그러나 이제는 거의 잊고 있던 일도 몸을 통해서라면 다시 재현이 가능하다. 억눌러 놓은 기억 탓에 떠오르는 것이 거의 없다고 할지라도 몸을 통해 기억을 되살린다면 신기하게도 그 당시와 똑같이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흐를 수 있다. 머리는 잊더라도 몸은 기억하고 있다. 감정이 여전히 몸에 남아 끊임없이 표현되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원인을 알 수 없이 지속되는 나의 알레르기 반응도 마음이 몸을 통해 보내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에 나를 괴롭게 했던 불편하고 위험한 감정들은, 사실 이제는 내가 문제라고 인식하지 않으면 나를 무너뜨릴 수 조차 없다. 나에게는 그것을 이겨낼 힘이 충분히 있고, 설사 무너진다 하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과 자원과 지지가 있다. 그런데도 마치 어릴 때 발을 밧줄에 묶인 채 말뚝으로 움직임을 봉쇄당한 코끼리처럼 차마 감정을 마주하지 못하고 무의식으로 눌러 버린다.


아마 상대도 그랬을 것 같다. 무의식 속에 분노가 많아 세세한 감정을 느끼기 힘들었고, 가뜩이나 지친 상태에서 분노를 억누르느라 또다시 에너지를 써서 고갈된 상태였을 것이다. 마치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마비시킨 군인처럼 분노 이외의 감정들을 분노로 마비시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관계에서 세심함을 잃고 그를 통한 섬세한 배려나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따뜻한 교류를 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 걸지도 모른다. 어색하고 서투르게 자신을 대하다가 가장 친밀해야 하는 관계의 사람과도 어색하고 서투르게 멀어져 버리게 된 건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서운하게 하지 않을 텐데, 유독 나한테 이런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것은 나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아서 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너무 미웠다. 그러나 다른 시야로보면 오히려 나에게 선 긋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기 때문에 그런 반응을 한 것이다. 강박적으로 의무감을 느끼는 것도 어찌보면 나에 대한 강한 책임감일 수도 있다. 누가 옆에 있든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게 보이고 싶을 뿐이었을지 모른다. 누군가 떠난 자리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허전함을 느끼고 얼마나 타인에게 의지하고 있었는지 깨달았을 때, 더 거부하게 된 건지도 모른다. 오히려 이렇게 생각하니 이해가 되었고 화났던 감정이 사그라든다. 설명을 할 수 있다면 괜찮아진다. 나를 잘 아는 누군가에게 이해받는 것만으로 치유받는다. 이 모든 추측이 사실이 아니라해도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겠다. 아, 나는 정말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했던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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