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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 Jan 20. 2017

386의 그늘

정체되었다고 느끼는 40대의 고민, 그 이면

얼마 전 회사 선배와 식사를 하던 중, 불안한 직장 생활과 우리의 꿈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30대 후반의 내가 ‘앞으로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10년밖에 남지 않은 것 같아요.’라는 말로 시작된 가벼운 대화였다. 많은 선후배들에게 존경받고 인정받던 그 선배는 그 답을 알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하는 10년의 데드라인에 근접한 사람이기도 했으니 무언가 계획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의외로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나도 잘 모르겠어’였다.


의아한 표정으로 내가 물었다.

“아 부장님은 다를 것 같았어요. 커리어도 괜찮으시고 회사에서도 인정받으시는데 나름 계획이 있을 줄 알았어요.”

“아니야, 기본적으로 너나 나는 다 같은 처지일지도 몰라. 386의 그늘에 갇힌 채로 이런 생활을 기약 없이 해나가야 하는 처지일지도 모른다는 거지… 너나 나나 모두…”

386, 지금 한국을 쥐락펴락하는 세대. 알다시피 90년대 당시 30대, 즉 80년대 대학을 나온 60년대 생을 ‘386 세대’를 말한다. 흔히 90년대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정치계의 신성으로 떠오르던 세대를 일컫는다. 인구학적으로 보면 베이비붐 정점이었던 세대다. 이들이 어떻길래 그 짙은 그늘을 만들어 냈다는 것인가.


<자료> 홍춘욱, ‘인구 변화가 부를 바꾼다’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전후 베이비붐 시대의 인구 증가는 엄청났다. 특히 1960년부터 1971년까지 인구 증가가 눈에 띈다. 재작년 58년 개띠 세대를 선두로 은퇴 인구의 증가가 사회적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던 것이 떠오른다. 이 베이비부머의 행렬은 길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는 지금 막 시작되었을 뿐, 아직 대부분의 인구가 사회의 중심 세력으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IT 업종도 다를 것이 없다. 네이버 이해진 의장, 카카오 김범수 의장, NXC 김정주 대표, NC소프트 김택진 대표 등 이른바 IT 주식 부호들 역시 386 세대들이다. 이들 모두 60년대 후반에 태어나 86년도에 대학에 입학하였다. 90년대 후반에 회사를 창업하여 20년 가까이 회사를 일궈오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을 도와 회사를 일군 사람들 역시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이다. 가장 큰 네이버를 들여다보자. 가장 나이 많은 이사가 64년생이고 대부분의 이사들이 60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에 태어났다. 이해진 의장이 태어난 67년 이후에 태어났고 1972년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이 이 사진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 대학에 들어간 사람들이 주된 역할을 하며 회사를 이끌어 가고 있다.  다른 대부분의 IT회사도 사정은 비슷하다. 비단 IT 기업뿐만 아니라 여타 분야의 회사들이나 정치권, 시민단체에 이르기까지 그 세대의 영향력은 거대하다. 여하튼, 사회의 중심에는 386 세대들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그 선배의 이야기였다. 공감이 갔다. 86학번의 서울대나 카이스트를 나온 이들이 한국 IT 시장을 쥐락펴락한다는 이야기가 유명한 반면, 그 이후 세대에서 그런 신화를 일궈낸 사람들의 이야기는 좀처럼 접하기 어려웠다. 386세대들은 상대적으로 좋은 기회를 포착할 기회가 많았으며 그 덕분에 빠른 시기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더 오랜 기간 동안 그 자리를 지켜오는 중이다.


이는 인구의 분포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더 많은 인구가 몰려있는 만큼 더 치열하게 살아왔겠지만 이제 그 거목들이 촘촘히 서로를 이웃한 채 숲을 이루었다. 그들이 만들어낸 울창한 숲 속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 숲은 비옥하다. 많은 나무와 생물들이 살고 거목이 떨구는 과실들을 먹고 거목의 뿌리가 움켜쥔 흙에서 물과 양분을 얻는다. 하지만 그들 만큼 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시원하고 그늘진 곳이라 살기는 좋지만 마음껏 크기에는 너무 어둡다. 그 밑의 세대는 어쩌면 버섯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밖을 나가 햇빛을 맞으며 높고 크게 자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언제부터인가 흰 빛으로 탈색된 우리라는 존재는 더 이상 엽록소를 품고 있지 않은 듯하다. 어떤 사람은 크는 것이 뭐가 중요하냐, 그저 열심히 살면 되는 것이라 말한다. 그저 나무가 더 크게 자라기를 빌며 그 아래 양분을 안정적으로 얻어내는 것이 낫다며 말이다.


선배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가 50이 되기 전, 남은 몇 년을 이곳에서 보낸다고 치자. 그 몇 년이 내 인생에 어떠한 의미를 남길 수 있을까?”

나는 거꾸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몇 년이 인생의 큰 의미가 될 수 없다면, 3년이 아닌 10년을 쓴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승진과 보상의 문제에만 국한되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일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에서도 그들의 의사는 너무나 중요하게 작용한다. 개개인의 의사나 의지가 표출되는 조직 문화 속에서라면 이러한 고민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하나, 모든 의사 결정과 권한이 집중되어있는 사회의 구조이기 때문에 또 그런 회사 구조이기 때문에 고민은 더 깊어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그냥 살면서 일이 아닌 곳에서 의미를 찾는 것도 방법일 것이라고 포기하듯 이야기하는 선배의 대답에 나도 기운이 빠진다.


인구 구조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노동시장 구성 자체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벗어나야 하는가. 생산인구가 부족한 곳으로 기회를 찾아 이동해야 하는 것도 대안이 될 것이다. 몇 해 전 일본으로 이민을 간 친구와 후배는 좋은 여건 속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온다. 캐나다로 취업을 한 선배도, 독일로 일자리를 찾아 간 후배도 그렇게 만족스러울 수가 없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은 다른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여건과 기회가 주어졌으니까 가능한 것이었다.’고 스스로 변명한다.

“선배 그러면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기회를 찾아 기다려 보자는 이야기를 해본다. 나에게 선배는 숲을 이루는 거목들도 언젠가는 쓰러질 것이고, 그 쓰러진 거목들을 위한 일을 해보는 것도 좋을 거라는 이야기를 해준다. 노인 사업이나 애견 사업 쪽에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 90년대 2차 베이비붐 세대들이 그 기회를 잡지 않을까요?’라는 말을 하려다 말았다. 베이비 붐 세대 사이에 끼인 세대. 이래저래 피곤하고 신경 쓸 것이 많은 세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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