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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 Feb 24. 2017

인문학-기술 교차 설명서

'인문학 공부 좀 해봐'에 대한 반박.

팀원들이 다 모여있는 카톡 방에 동영상 링크 하나가 올라온다. 조직장이 보낸 링크다.


“다들 이 동영상 보세요. 스티브 잡스가 이야기한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에서 혁신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잘 설명해 주는 동영상입니다.”


경제 강사로 이름을 날렸던 최진기의 동영상. 그는 IT 산업에서 인문학의 중요성을 친절한 예시와 함께 풀어냈다. 인문학적인 사고가 혁신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이제는 다분히 상식적인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접하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 채팅 창에는 이내 ‘맞습니다. 인문학이 참 중요하죠’와 같은 반응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어 마지막 마무리로 올라오는 조직장의 진심 어린 충고의 한마디.

“여러분 이렇게 인문학이 중요합니다. 인문학 공부하세요.”


놀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가 인문학을 알고 모르고를 떠나서 너무 무지했다.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마무리가 ‘인문학 공부하세요’라니. 이건 마치 삼국지 게임에서처럼 ‘해당 장수의 인문학 능력을 향상시키겠습니까?’에 YES 버튼을 누르는 것과 같았다. 인문학의 중요성에 대하서 아는 척한다고 밖에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두 중요하다고 하니 덩달아 한마디 거드는 것처럼.



인문학 열풍?


스티브 잡스가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에서 혁신이 탄생한다는 이야기를 하자 국내의 기업들은 일제히 고함치기 시작했다.


“인문학이래!!!”

그들은 입사자를 가려내는 시험에서 인문학 문제들을 내기 시작했다. 인문학 소양을 지닌 개발자를 뽑아내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문학 문제가 등장한 이후에 변한 것은 없었다. 인문학적 소양을 검증받은 신입사원들은 그들의 선배가 그랬듯이 기존 커리큘럼의 연수와 부서 배치, 실무교육을 똑같이 받는다. 상명하복의 문화 속에서 그들의 자유로운 생각이 꽃피기 전에 신속하게 문제에 대응하는 방법을 익힌다. 창의성은 효율성의 적이나 되는 양 의견 표출에 제한이 따랐다. 결국 바뀐 거라고는 많은 취업 준비생들이 직무 적성검사에 나올만한 인문학 문제들을 파기 시작했다는 것뿐.


인문학과 기술을 교차시키는 방법이 다양하다. 나름의 조직의 환경에 맞춰 구사할 수 있는 전략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인문학과 기술의 시너지를 망치는 나쁜 전략도 존재한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그러는 것처럼.



혁신이 왜 필요하지?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왜 인문학과 기술을 교차시켜야 하는지 생각해 보자. ‘혁신’이라는 뻔한 단어 이면에 놓인 ‘왜’에 대한 답은 무엇일까? 왜 기업들은 혁신적으로 보이고 싶어 하느냐 말이다. 혁신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고정된 시장의 인식을 파괴하기 때문인다. 여기서 ‘파괴’는 기존에 존재하던 시장 지배적 인식을 무너뜨리는 것뿐만 아니라 기존의 인식을 뛰어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도 포함한다. 이렇게 기존 인식을 ‘파괴’ 하는 혁신이 발생하면 그 결과로 새로운 시장이 탄생한다. 새로운 시장을 여는 플레이어는 그 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가장 많은 기회를 포착한다. 이것이 기업들이 혁신에 목말라하는 이유다. 결론적으로 혁신은 신시장 개척으로 가는 가장 짧은 길이다.


간단한 메커니즘이다. 하지만 어느 날 직원들을 모아 두고 “자 이제부터 기존 시장의 지배적 인식을 파악하고 이것을 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해 보자.”라고 해서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다. 인문학은 이때 빛을 발한다. 인문학은 소비자들의 인식을 파악하고 그들이 어떤 것을 원하고 있는지 알아내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인간의 욕망을 파악하고 그 안을 들여다보는 돋보기 역할을 한다. 반면 기술은 그 욕망을 관통할 수 있는 창이다. 인문학과 기술,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의 많은 기업들은 ‘혁신은 기술에서 온다.’는 공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이 사업 방향을 정하는 기획서에는 시장에 대한 정의와 통찰보다는 현란한 숫자로 채워진 통계들로 가득하다. 창이 아무리 날카로워도 방향을 잡지 못하니 사람들의 욕망을 관통하지 못한다. 그저 불안한 마음에 될 수 있는 한 많은 기술과 제품을 출시한다. 많은 시도 끝에 하나 정도 걸리겠지 하는 바람으로… 그렇게 수백 가지 제품을 내놓고 통렬히 반성한다. ‘우리는 선택과 집중이 부족했다고.’


선택과 집중은 시장의 욕구와 필요를 알면 자연스레 풀리는 문제다. 즉, 이용자의 욕망을 알아내고 우리가 만드는 제품과 서비스가 이를 향하면 최소 자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은 이것을 ‘혁신’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욕망과 필요를 읽어내는 능력은 교양의 영역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체계적으로 사람에 대해서 학습하고 훈련해야 얻어지는 능력이다. 대부분의 기업과 조직이 인문학에 대한 잘못된 사용법을 갖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문학은 책 몇 권 읽어서 얻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쉬워 보인다. 기술자들도 쉽게 얻을 수 있는 스킬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얘기가 나온다. “기술자들아 인문학 좀 공부해 봐라.”라고.



인문학은 스킬이 아니다.


하지만 인문학은 스킬이 아니다. 하나의 체계이자 로직이다. 문학, 심리, 사회, 경제, 경영, 교육 어느 하나 쉬운 분야가 없다. 학문의 역사로 보면 수학, 물리, 전기, 전자, 전산 보다 더 오래된 것도 있고 그만큼 더 공부할 것이 많은 분야도 있다. 그런데 간단히 ‘공부 좀 해봐’라는 한마디로 인문학적 역량이 ‘장착’ 될 것이라고 믿는가? 이 어찌 교만하고 무지한 생각인가. 바람과는 달리 이러한 방식으로는 인문학적 능력은 장착되지 않는다. 되려 기술자들이 핵심 역량을 발휘하는데 방해만 될 뿐이다.


스티브 잡스가 이야기한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는 개인의 능력을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어떤 회사나 조직이 인문학적인 면모와 기술적 면모가 모두 갖추어야 그 사이에서 시너지가 발생하고 그 결과 혁신이 일어난 다는 것. 이는 거꾸로 말하면 조직 구성원 모두가 인문학과 기술을 모두 알 필요가 없다는 말이 된다. 기술자는 자신의 기술에 정통하면 되고 인문학자는 본인의 영역에 충실하면 된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 대해서 다 알고 있을 필요는 없다. 단, 상대방이 꼭 필요한 존재라는 인식은 필히 지니고 있어야 한다. 


한국의 기업에서 보이는 행태 중 하나가 특정 직군의 사람들을 별도의 시스템으로 관리하거나 대우를 해주는 형태이다. 

“우리 회사는 기술 중심의 회사이다. 스테프 부서는 조연에 불과하다.”

“기획자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기술자들이다 하면 된다.”

“기획자랑 디자이너가 말을 안 듣는다.”


리더라는 자들이 이런 말들을 부끄럼 없이 쏟아낸다. 그것이 마치 기술 조직의 결속력 강화를 위한 마법의 접착제가 되는 것 마냥… (물론 영업, 기획, 디자인, 스테프 조직에서는 반대의 일이 벌어지겠지만) 디자인, 기획, 개발이 함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도 모자랄 마당에 많은 기업들이 다른 직군을 폄훼하거나 자신들의 보조정 도로 생각하는 인식이 만연하니 혁신은커녕 협업 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벽을 세우기보다는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같은 목표를 갖고 협업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디자인, 기획, 개발 스테프 등을 함께 담는 것이다. 업무를 영역별로 분화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역량이 함께 목표를 달성하게끔 만들라는 것. 자연스레 섞인 역량이 문제를 파악하는 객관적인 시각과 이를 해결할 통합적인 시각을 도출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이런 팀의 구성은 스타트업에서나 찾아볼 수 있지, 회사가 조금 크거나 업력이 되는 경우에는 적용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회사가 커지면 효율화에 치중하게 되고 자연스레 기획자는 기획자들끼리, 스테프는 스테프들끼리, 개발자는 개발자들끼리 모이게 된다. 한번 나뉜 조직을 다시 합치기란 무척 어렵다.



키맨 - 연결자


이렇게 분화된 조직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연결자이다. 여러 영역의 전문가들을 나름의 가치 체계 위에서 통합할 수 있는 인물이다. 사람과 기술의 중요성을 모두 인지하고 있는 사람. 문제는 이런 연결자들이 무척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서는... 사회는 개인들에게 전문성을 강조했고 전문가를 향해 달려온 사람들이 기업의 대다수를 채워왔다. 자신의 전문성에 대한 나르시즘이 일반화된 기업에서 여러 영역의 가치를 받아들여 이를 조율할 수 있는 사람은 저평가된다. 내가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에서 너도 맞고 저 사람도 맞다는 식의 태도는 속없는 사람이라는 동정을 받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부서 간의 의사를 조율하거나 직무 간 이견을 조정하는 역할의 중요성은 저평가되었다. 아니 우리 기업에는 그런 역할 자체가 없다.


애플은 어떨까? 작년 기준으로 애플에서 일하고 있는 지인의 말에 따르면, 애플은 대부분의 조직이 기능 특화되어있다고 한다. 각각의 팀은 전체 제품 관점에서 봤을 때 매우 작은 일부분을 담당한다고 한다. 언뜻 듣기에는 조직이 사일로(silo)화 되어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렇게 분화된 조직을 씨실 날실로 엮는 역할을 하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PM들이다. 이들은 각각의 조직을 오가며 메신저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의사 결정의 책임과 권한을 지닌 상위 조직과의 연결 통로 역할도 겸한다. 이들의 연결과 중재 속에서 각각의 조직이 유기적으로 엮이는 구조를 갖게 된다. 각기 다른 영역에서 발생하는 많은 양의 커뮤니케이션 요구를 수용해야 하니 PM들의 역할은 막중하고 또 어렵다. 그만큼 회사에서는 그 가치를 인정해주고 대우해준다. 한국의 기업들이 조직 내에서 한 우물만 파서 성장한 스타형 독불 장군을 선호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애플의 PM들은 사람과 기술을 연결하는 키맨일 것이다.



리더


그렇다면 기업에서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를 위해 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제발 기술을 전공한 사람들에게 인문학을 공부하라는 식의 접근은 더 이상 하지 말자. 인문학 역량이 필요하면 인문학자를 조직 내에 배치하라. 그들은 기술자만큼이나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같은 문제를 다양한 사람이 협력하여 풀어낼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자. 이것이 여의치 않다면 연결자를 찾아내라. 조직 내에는 드물게 인문학자이면서 기술을 잘 이해하는 사람, 기술을 배경으로 갖고 있지만 인문학에 정통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들이 특화 조직 사이의 연결을 담당할 수 있게끔 역할과 권한을 부여하자.


하지만 이러한 전략 모두 리더로부터 나온다. 인간과 기술의 교차는 리더가 한 사람이 모든 역할을 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깨닫는 것에서 시작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인문학과 기술이 연결된 조직을 만들거나, 그 둘을 연결해 줄 수 있는 인재를 발굴해 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할 수 있는 리더는 적어도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체계를 확립한 사람일 것이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자, 리더의 위치에 앉은 사람 중에 뚜렷한 가치 체계를 지닌 사람이 있는지. 그것이 참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사람에 대한 이해가 밝다. 또, 다양한 분야를 접함에 있어 편견이 없다. 여행을 즐기는 사람. 무엇보다도 다양하고 많은 분야의 독서를 즐기는 사람일 것이다. 그들이 바로 인문학 기술 교차의 설명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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