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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사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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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lee Aug 30. 2016

퇴사 일기 1. 언제부터 퇴사하고 싶으셨습니까?

저는 그랬습니다.

퇴사를 한 지 3개월이 조금 넘은 지금, 지난날을 곱씹어 보다 보니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다.

'난 언제부터 퇴사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 봐도 정확히 '이때부터 퇴사하고 싶었어!'라고 할 만한 순간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토록 갈망한 취업의 꿈을 이뤘던, 취업과 동시에 세상이 하루아침에 바뀐 것만 같았던, 그때의 내 마음은 언제 사라져 버렸을까?

퇴사한 모든 이들이 과연 '퇴사'라는 말을 처음 떠올린 시점을 기억하고 있을까? 글쎄, 그건 아니라고 본다.
입사 후 연수를 받으며, 연수 프로그램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달려들던(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때만 해도 퇴사란 단어를 떠올리진 않았을 것이다. 연수 당시만 해도 회사는 과분한 대우와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보여줬었기에, 내 마음속에 일종의 '자긍심'을 심어줬던 것 같다. 회사 밖을 나가 친구들을 만나면 '교육을~ 이렇게 진행해~' 하며 설명해 주고 싶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퇴사란 단어는 내 머릿속에 갑자기 치고 들어온 단어는 아닐 것이다. 단지, 내 머릿속에서 '진화'된 단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단어로부터 진화된 것일까?

'전배' 혹은 '이직'이란 단어에서 자라나 어른처럼 커 버린 말이 바로 퇴사라고 생각한다.

그룹 연수, 사내 연수를 마친 후 있었던 부서 배치 발표. 나는 당시에 '설마 나는 그곳에 가진 않겠지'하던 바로 그곳에 배치되고 말았다. 결과를 알게 된 동기들은 나를 위로했고, 한 3년만 고생하고 부서를 옮기라는 말을 했다. 그곳은 바로 그런 곳이었다. 배치되면 남들로부터 위로를 받는 곳.

그곳은 생산에 직접적인 연관을 가진 부서로, '기술 공정'이란 말로 설명할 수 있다. 제품을 만드는 여러 공정 중 하나인 것이다.

기술 공정이 악명이 높은 이유는,
1. 교대 근무를 해야 함(생산은 24시간 진행되기 때문에)
2. 라인 근무 시간이 많음(방진복을 입고 눈만 내놓은 답답한 상황의 시간이 많음)
3. 실시간 대응이 많음(생산에 차질을 주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4. 잔업이 많음(불량 사고 발생 관련 실시간 대응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단 이 4가지 정도로 정리되는데, 사실 배치 전에 갖는 공포는 1,2번 항목 때문이다. 나머지들은 직접 겪어보지 않은 데에서 오는 막연한 두려움이다.

어쨌든, 난 남들의 위로를 받으며 배치된 부서로 향하게 되었다. '3년 정도만 버티자'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이 생각이 내 퇴사의 단초가 될 것이라는 걸 알게 된 건, 글을 쓰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첫 단추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런 데에 있는 것 같다. 겉으로는 별로 문제없어 보이지만, 이미 내 마음은 부서 배치에 대해 '잘못 끼워진 첫 단추'로 규정 지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마음은 시간이 지나 퇴사라는 단어로 자라났다.

그렇다면, 그 '잘못 끼워진 첫 단추'는 과연 회사의 탓인가?

"전 꼭 XX 부서에 가고 싶습니다. 전 XX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부서에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라는 의견을 제대로 피력하지 않은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

회사에 꿈을 갖고 입사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엔 회사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한 곳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적성 같은 것은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가르쳐주는 데로 적응하고, 시키는 거 그냥 하면 됐지 하는 마음이었다. 이런 목적의식 없는 나 같은 신입을 만났을 때 회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것일까? 가고 싶어 하는 곳이 없으니, 남들이 안 가려고 하는 곳에 보내기 좋은 케이스였을 것이다.

이런 경우들도 있다고 한다.

 
"전 서울에 사는데,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꼭 서울에서 가까운 곳에 배치를 받아야 합니다."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모르겠으나(사실이라면 매우 안타깝고 이해할 만한 사정이지만), 개인 사정으로 인해 꼭 서울 근교에 배치를 받아야 한다며 강력한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처음에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땐, 이렇게 치사하게도 하는구나 했었다. 그럴 바엔 그냥 고생하고 만다는 게 당시 나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회사 생활을 1년쯤 했을 때 한 선배에게 이런 얘기를 들었다.


"아~걔? 걔 이번에 부서 옮겼다며? 역시 회사에서는 불만 늘어놓고, 투정 부리고 해야 좋은 데 간다니까~"


이 말이 나에겐 어느덧 불변의 진리처럼 다가왔다. 왜 난 저러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와 함께 말이다. 그렇다면 나에게도 불평, 불만을 늘어놓으며 때 쓸 수 있는 기회가 수차례 있었을 것이다. '그래 그렇게 힘드니, 일단 다른 부서로 한번 옮겨보자.'라는 대답을 기대할 수 있는 면담 시간 같은 것들 말이다. 그렇지만 난 한 번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니 못한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결국 난 그렇게 할 수 있는 부류는 아니었던 것이다.

퇴사 면담을 하던 시기에, 한 부장께서 부서 전배 이야기를 했다.(전배는 학교로 치면 전학과도 같은 것. 즉, 부서 이동) 꼭 회사를 나가는 방향이 아니고, 회사 내에서 다른 길을 찾는 것은 어떠냐고 말이다. 그때 난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부서 옮겨 달라고 때 쓰려고 면담 요청드린 게 아니기 때문에,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얼핏 보면 멋있다. 쿨하게 퇴사하는 느낌도 좀 난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역시 난 입사 당시에 배치 면담할 때처럼 치사하게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때 쓸 타입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배라는 단어는 부서 배치 때 이미 마음속에 담아뒀던 것이고, 5년이 지난 시점엔 퇴사라는 단어로 이미 진화가 끝난 상태였다. 더 이상 그냥 두면 어떤 단어로 진화될지 몰랐다. 어차피 모르는 거, 퇴사해 백지가 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정리해보면 처음부터 퇴사를 꿈꾸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퇴사는 서서히 회사원의 마음속에서 자라나는 것이다. 그 시작이 어떤 단어인지는 모두 다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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