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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사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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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lee Aug 30. 2016

퇴사 일기 2. 계기

수많은 계기 중 딱 2가지만

회사원들은 흔히 퇴사란 단어를 입에 달고 산다. 아니, 퇴사란 말 대신에 '때려친다'라는 표현을 주로 쓴다. 물론 100% 진심이지만 이룰 수 없는 일종의 로망으로 가슴 속 한켠에 가둬두기 마련이다.

나 또한 똑같았다. 100% 혹은 1000%의 진심이 담긴 퇴사 욕구를 늘 갖고 있었지만, '내가 어디가서 또 이런 대우 받겠어?', '나가면 할 것도 없는데, 그냥 다녀야지' 라는 말을 반복하며 친구들 혹은 회사 동료들과 안주거리 마냥 씹어대는 정도의 단어가 퇴사였다.

그렇다면 남다른 계기가 있었던 것일까? 어떤 큰 이유가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었다. 여러가지 요소가 뒤섞여 내 마음을 흔들기 시작했는데, 다음과 일들이 있었다.

1. 건강검진
종합건강검진 결과를 받아 보는데, 예전과 달리 소견이 달린 항목 들이 있었다. 정상으로 가득했던 검사 결과들이 시간이 흘러 유소견 항목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초음파검사 당시 받았던 지방간 판정, 그리고 채변 검사에서 나온 잠혈 등이 대표적이었다.

첫번째 소견인 지방간은 검사 도중에 직접 이야기를 들었으며 술을 한잔도 안하는 나에겐 조금 충격이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지방간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알콜성, 비알콜성 지방간으로 나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난 100% 후자인 경우인데,


i)지속된 피로 누적

ii)육류 위주의 편중된 식습관

iii)운동 부족

iv)유전적(선천적) 요인


이 모든 것들이 비알콜성 지방간의 원인이었고 난 그 모든 것들에 해당된 사람이었다. 매일 술 먹어도 깨끗한 간을 가졌다고 자랑하는 친구들에 비하면 정말 억울했다. 육류위주의 식습관과 운동부족은 동료들과 비교했을 때 비슷한 편이었으니, 피로와 선천적인 요인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원인을 하나씩 따져보다보니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교대 근무 였다. 28살이던 해의 11월부터 교대 근무를 시작했는데, 4년이 지난 33살이 되던 해부터 피로가 잘 안풀린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전에는 야간 근무를 일주일 하고 난 후 주간 근무로 돌아올 때 하루 정도 지나면 적응이 가능 했었는데, 그 적응 기간이 점점 길어지는 느낌이었다. '늙어서 그렇다.'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나도 그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했었다. 그저 늙어서 피로가 잘 안 풀릴 뿐 다른 몸속 장기에 의심을 가지진 않았었다.


그리고 원래 술을 전혀 하지 못했다. 소주 한잔이면 얼굴 뿐아니라 온 몸이 빨개지고, 구토 직전까지 가기 때문에 간의 해독기능이 약한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결국, 피로도 동료들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선천적인 요인이 가장 컸다. 거기에 내 탓인 운동부족을 좀 더하면 지방간 오는 게 그리 충격적인 일도 아닌 것이다.

두번째 소견이었던 잠혈.
소견에는 대장 내시경을 권유하는 말이 쓰여 있어서 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평소에 소화기능도 너무 안좋았던 터라 겸사 겸사 병원을 찾기로 결심했었다.)

내가 간 병원은 그룹내에 소속된 매우 큰 병원으로, 내 몸 때문에 종합병원을 방문한 건 처음이었다. 진찰을 하기로 한 교수님의 방 앞에서 한 20분정도 대기를 했는데, 대기하며 알게 된 건 내가 최연소 환자라는 점이었다.


병원내에서 내가 최연소 환자는 아니겠지만, 그 교수님의 방앞에서 대기하던 환자는 모두 나이가 50은 족히 넘으신 분들이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분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내 차례가 되어 진찰실로 들어갔다. 교수님은 내 검진 이력과 기존에 촬영했던 내시경 사진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 원래 치질 증상이 있었네요"


 하며 모니터의 사진을 가리켰다. 별로 보기 싫은 사진이었지만, 잠혈의 원인은 명확히 사진에 있다는것. 이미 2년전에도 치질 증상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졌으니 굳이 또 내시경 검사를 더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교수님의 의견이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한편, 일종의 수치심이 들기도 했다. 그 수치심을 다른 화제로 덮고 싶었는지, 소화가 잘 안되는 편이어서 설사가 너무 잦다는 이야기를 교수님께 했다. 실제로 큰 일을 위해 화장실에 가면 열에 여덟정도는 다량의 수분을 동반한 편이었으니, 이에 대한 명확한 원인이 있길 바랐던 것 같다. 오로지 치질 증상만 있다는 것은 인정하기 싫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굉장히 흔한편으로, '과민성 대장염'정도로 보인다고 말하시며, 정말 심하면 약처방을 해 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하루에 화장실을 5번 이상 가는 것도 아니니 굳이 약을 먹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진찰은 끝나가고 있었고 마지막에 교수님께서 이런 말을 했다.

"내시경은 한 5년 후에 다시 해도 될 것 같아요. 아직 젊으시니까요."

5년 후에 내시경을 하란 말보다 아직 젊다는 말이 귀에 꽂혔다. 아니 귀를 지나 머리를 통과해 가슴으로 날아와 꽂힌 기분이었다. 33살이 왜 늙은 나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당시 환자들 중에서도 난 가장 어렸었는데 말이다. 당시 한창 '100세 인생'이라는 노래가 유행하던 시기였는데, 그렇게 따지면 난 아직 인생의 반도 안 살았던 것이다. 그 이후로 내 생각엔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2. 2015년 8월
2015년 8월은 우리 회사, 부서에 일이 쏟아지던 시점이었다. 2016년 신제품 관련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두가지 문제가 아니었고, 상황조차 매우 급박했다. 굉장히 스마트했던 간부 선배 조차 우왕좌왕하는 게 눈에 보였다. 평소엔 굉장히 샤프하게 판단하여 깔끔하게 업무 하달을 했는데, 그땐 아니었다. 어느 공정의 탓인지도 모르는 불량의 원인이 민생안정과 같은 수준의 난이도를 갖고 우리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부서, 그리고 상위 부서에서는 문제 해결을 위해 매일 회의를 했다. 그리고 회의가 끝나면 각 부서에 늘 숙제가 떨어졌다. 다음날이 되면 업무 진행현황을 파악했으며, 분석 결과 등을 종합하여 새로운 숙제가 탄생했다. 그러면 간부 선배는 회의 후 우리에게 와서 해야할 일을 설명해 주었고 업무를 배정해 주었다.

어찌보면 당연한 회사의 업무 프로세스이다. 그리고 그 프로세스에 시행착오가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해야 할 일이 매일 바뀐다는 게 문제였다. 원인 파악은 매일 새롭게 진행되었다. 당시 발생하던 불량의 귀책 공정이 회의때마다 바뀌었던 것 같다. 그로 인해 한 방향으로 지속적인 분석을 하지 못하던 상황이었고 일만 늘어갔다. 회의에서 오가는 의견들이 정리되서 업무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던진 말들 하나하나가 모두 업무로 내려오는 느낌이었다. 회의에 참석했던 간부 선배도 항상 부서에 돌아와 불평을 늘어놓곤 했다. 회의를 매일 진행하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회의 내용도, 방향도 계속 바뀌니 경험이 많은 간부라도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혹여 더 높은 상위 그룹에서 회의가 진행되면 모든 게 엎어지는 게 현실이었다. 실무자끼리 어느정도 잡아 놓은 방향도 임원의 한마디면 다 뒤집어지는 게 일상이었다.(이것은 당시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늘 반복되는 문제였다.)

암담했다. 선배, 그리고 상위 간부들까지 흔들리니 정말 암담했다. 그리고 내가 회사에 계속 남아 앞으로 겪어야 할 일들이라고 생각하면...더이상 표현할 수 있는 어둠의 단계가 존재하지 않는듯했다.

이런 암흑의 나날들이 반복되자 병원에서 들었던 '아직 젊으시니까요'라는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그때부터 난 퇴사를 단순한 로망에서 구체적인 현실로 바꾸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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