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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사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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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lee Aug 31. 2016

퇴사 일기 3. '고독의 땅'이 아닌 '고민의 땅'

마지막 휴가는 고민과 함께

퇴사는 퇴사고, 휴가는 휴가...


퇴사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던 나는 11월쯤에 휴가 계획을 잡았다. 행선지는 고민할 게 없었다. 바로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에 꽂힌 건 영화 '프로메테우스'의 인트로 장면 때문이었다. 극장에서 보지 못한 게 한이 될 정도로 너무 멋졌던 그 인트로 장면을 보면서 과연 여긴 어딜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다 본 후에 검색을 해보니 촬영지는 바로 아이슬란드. 하늘에서 쭉 훑어가던 대지들, 그리고 외계인이 뭔가를 흡입한 후에 떨어지던 거대한 폭포. 그 장면들이 너무 강렬해서 아이슬란드는 언젠가 꼭 가려했다. 그러나 막연한 생각이 있었을 뿐 구체적인 계획은 전혀 없었다.


8월경부터 퇴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던 차에 짜게 된 휴가 계획. 우리 부서는 365일 24시간 내내 상주 인원이 있어야 하는 특성상, 근무 및 휴가 계획을 한 달 전에 다 짜 놔야 하는 곳이었다. 12월부터 2월까지 사용하게 되는 동계휴가를 서로 겹치지 않게 계획해야 했는데, 누구나 12월 말~1월 초에 동계 휴가를 가고 싶어 한다는 것. 하지만 우리 부서의 사람들은 이미 서로 피해서 휴가를 짜야하는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부딪칠 일은 없었다.


내가 일정을 짜는 데에 한 가지 문제가 있었던 건, 5년 차 직원에게 주어지는 5년 휴가를 동계휴가에 붙여 쓸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것이었고, 붙여 쓰려면 12월 내로 써야 했다는 것. 즉, 2016년 1,2월엔 5년 차 휴가를 붙이지 못하기 때문에 꼭 12월 내로 휴가를 가야만 했다. 결국 난 12월 말에는 휴가 희망자가 많을 것 같아 12월 초로 날짜를 정해버렸다. 그리고 12월 초면 아이슬란드의 추위가 조금이라도 약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12월의 아이슬란드.


겨울의 아이슬란드는 여름의 아이슬란드와 전혀 다른 세상이라고들 했다. 여름의 아이슬란드는 백야와 푸른 초원이, 겨울의 아이슬란드는 긴 암흑과 설원이 사람들을 맞이한다고... 그리고 '고독의 땅'이라고도 했다.


아이슬란드의 겨울은 오후 3시 반이면 해가 지는, 해는 고작 한 5시간 정도만 떠 있는, 암흑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혼자 간 나로서는 좀처럼 사람을 보기 힘든 광활한 설원과 긴 암흑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생각할 시간을 많이 갖게 됐다. 고독의 땅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어떻게 보면 멋있다. 눈이 가득한 12월의 아이슬란드에서 긴 어둠을 벗 삼아 퇴사 고민을 하는, "아이슬란드에서의 긴 고민 끝에 퇴사 결정을 내렸다."라고 이야기한다면 얼마나 사람들이 멋있어할까? 이런 중학생스런 생각과 함께 시작된 아이슬란드 여행. 낮엔 관광을 하고 밤엔 호텔방에 쳐 박혀 그다음 날의 여행 계획과 퇴사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여행에서 뭔가 답이 나오진 않았던 것 같다. 난 그저 계속 고민만 했었다. '내가 진짜 퇴사를 하게 될까? 할 수 있을까? 나가면 뭐하지? 어떻게든 되겠지? 뭐라도 하겠지?' 같은 생각들을 반복하기만 했을 뿐, 뭔가 답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내가 조금 더 생산적인, 그리고 계획적인 사람이었다면 퇴사 후에 할 일들을 고민했겠지만, 당시의 난 그저 퇴사를 할지 말지만 고민하고 있었다. 한없이 넓게 펼쳐진 설원을 바라보며, 몇천 년은 되어 보이는 빙하를 보며, 하루 종일 중천에는 오지 못하는 태양을 보면서도 난 그저 같은 생각뿐이었다. '고독의 땅'은 어느새 내게 '고민의 땅'이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여행을 이야기할 때, '나를 찾는 시간'이라고도 한다. 특히 혼자 하는 여행일 경우엔 더 그렇고. 그렇다면 난 당시에 '고민의 땅'에서 나를 찾았던 것일까? '그래! 나를 찾았어!'하며 좋아하던 순간이 진정 있었던 것일까? 퇴사 후의 내 모습은 조금씩 그려지고 있었던 것일까?


대답은 절대 'No'다. 난 한국으로 돌아올 때에도 머리 속 한구석에 퇴사에 대한 고민만을 갖고 있었을 뿐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이 꼭 존재하기 마련인데, 난 그 순간을 만나지 못했었다. 아직 시기가 아닌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론 성공한 이들의 결정적인 순간은 결국 성공한 후에 만들어진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 그리고 꼭 그들처럼 조우하게 되는 어떤 결정적인 순간이 없다한들, 내 방식대로의 여정과 선택의 길이 있다고 생각했다.


고민으로 가득했던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엄마가 공항에 마중을 나왔었고 함께 차를 타고 저녁을 먹으러 출발했다. 차 안에서는 여행 어땠냐는 당연한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이 오갔다.


"아이슬란드 좋았어?"

"진짜 좋았지. 지구가 아니고 외계에 간 것 같았어."

"아이고 그래. 그래도 회사 덕분에 그렇게 좋은 데도 갈 수 있고 그런 거지..."


이미 엄마에겐 퇴사의 뜻을 비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엄마도 그에 대해 꽤 동의를 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회사 덕분'이란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엄마는 내심 내가 퇴사하지 않길 바라는 것 같았다. 아니, 엄마가 동의했다고 생각한 건 나만의 착각이었던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이해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퇴사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질까 두려워 화제를 다른 것으로 바꾸고 말을 아끼기 시작했다. 차 안의 공기가 어색해지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이후 식당에 도착해 저녁을 먹으면서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했고 퇴사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의 대화들을 통해 아직 나 스스로 퇴사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는 것과 엄마는 나의 퇴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 이 두 가지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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