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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사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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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lee Aug 31. 2016

퇴사 일기 4. 변한 게 없었다.

I see no changes.

우리 부서는 이틀 휴무를 쓸 수 있는 경우가 한 달에 한번 꼴인 부서였다. 입사 초기 시절(2011년)보다는 상황이 좋아져서, 아니 상황이 좋아졌다기보다는 근무 작성을 담당하는 선배의 의지 덕분에 이틀 휴무를 한 달에 두 번씩 쓰기도 했다. 이틀 휴무란 게 누군가에겐 굉장히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하루짜리 휴무에 길들여진 우리 부서원들에게는 굉장히 커다란 선물 같은 것이었고 매우 긴 시간이었다.(그리고 우리 사회엔 생각보다 주 6일 근무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365일을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제조의 특성상, 휴무를 다녀오기 전과 후는 굉장히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별 일 없던 설비가 하루 쉬고 왔더니 퍼져있고 갑작스러운 불량 사고가 발생 해 있을 때마다 '혹시 내가 잘못하고 간 게 있었나?'라는 생각을 하며 가슴을 졸이는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휴무 전후의 업무 상황은 이렇게 새로운 일(혹은 사고)들로 인해 차이가 많이 나기 마련인데, 비극적인 건 진행 중이던 업무들은 또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는 것이다. 납기가 얼마 남지 않은 일이라도 갑작스러운 불량 사고가 치고 들어오면 후순위로 밀리기 마련이었고, 우리 공정 아닌 다른 공정에 의해 미진행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각자 부서별로 급한 일이 다 다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보면 끝난 일들은 없고 새로운 일들만 생겨난 것이다. '질량 보존의 법칙'이란 것은 있지만, '업무량 보존의 법칙'이란 것은 없었다. '업무량 증가의 법칙'만이 존재했다.


하루, 이틀 짜리인 휴무 전후의 상황은 위에 말한 것과 같이 진행된 일은 없고, 새로운 일만 늘어난 상황이 반복되었다. 즉, 휴무 전에 '쉬고 오면 이 일은 끝나 있겠지?'라는 기대는 애초에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휴가를 맞이하게 되면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주일 정도의 기간이니 그런 기대를 할 만도 했다. 더군다나 나는 퇴사 직전 동계휴가를 무려 10일이나 다녀왔다. 다른 휴가 때보다도 기대가 되었던 건 기간이 평소의 휴가보다 더 길었고 질질 끌고 있던 일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불량 사고 뒤처리로, 굉장히 귀찮은 업무였다.)


하지만 '회사 돌아가면 그 일은 다 끝나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기도 전, 아이슬란드에서 그 업무에 관련된 전화를 받게 되었다. 아이슬란드 시각으로 새벽 1시, 잠자리에 들려고 했을 때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던 것이다.

불량 사고 물량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 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는 전화였는데, 업무 메일을 내가 주로 보냈기에 나에게 전화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미 사고 보고가 다 되고 물량 처리만 남은 것이었기에 부서 내에서 이 일을 별도로(혹은 급하게) 챙기는 사람 또한 없었다. 즉, 업무 완료에 대한 기대는커녕 실망부터 하게 된 휴가였다.


한국으로 돌아와 회사로 복귀를 한 후 첫 아침 미팅을 맞이했다. 미팅 내용을 보며 내 머릿속을 스치고 간 생각은


'변한 게 없구만.'


이었다. 해결되지 않는 업무들은 그대로 계속 남아 있었고 기존에 발생했던 사고들은 답습이라도 하듯 또 발생 해 있었다.


생각해 보면 부서에 처음 배치받았을 당시 내 사수가 하고 있던 큰 프로젝트는 내가 퇴사하기 직전에도 이뤄지고 있었다. 일이 5년 동안 지속된 게 아니라, 이런저런 이유로 엎어졌다 다시 진행되기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일이 엎어지는 이유는 다 비슷했다.


제품이 한 번 만들어지는 데에는 여러 공정을 거치기 마련인데, 우리 공정의 작은 조건 변경은 후공정에도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철저한 검증이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타공 정들과의 연계가 필요하고 수율 관리 부서의 승인도 필요했다. 품평회가 필요한 경우도 많았고 제조를 넘어 개발 쪽의 의견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과정들은 각각의 미션을 수행하는 게임과도 같았다. 우리 공정의 조건 변경으로 인해 생기는 업무들을 다른 부서들에서 반길리 없었다. 내가 다른 부서의 업무들을 접할 때도 마찬가지였으니까. 또한, 자칫하면 대형 사고로 번질 수도 있는 일들을 쉽게 '검증 끝!'이라며 승인해 줄 사람도 없었다. '검증 끝! 이제 양산해!'라는 말보단 '이거 확실해? 진짜? 진짜 양산해도 되는 거지?'의 뉘앙스랄까.


그리고 검증에 실패했던 업무도 윗사람의 한마디면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 다른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입사할 때 진행되던 일이 5년 후에도 똑같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휴무, 휴가를 갔다 와도 변한 게 없고, 입사 초기와 입사 후 5년이 지난 시점에도 회사 생활은 변한 게 없었다. 그런데 그보다 한 가지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바로 나에 대한 문제였다.


나야말로 변한 게 없었다. 지겹고 한심한 회사의 상황을 늘 비난했지만, 늘 그뿐이었다. 스스로 발전해 보려고 한 적도 없었고, 능동적으로 업무의 방향을 바꾸려 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하고 싶은 열정도 없었다. 


열정이 없어도 월급은 꼬박꼬박 나왔다. 월급, 이게 바로 회사원들이 회사를 나가지 못하는 이유인 건 누구나 알 것이다. 아무리 통장을 잠시 스쳐 지나가는 존재라 한들, 그것조차 없는 것이 두려운 회사원들은 좀비 같은 걸음걸이로 출근길에 올라 일과 시간을 버티고, 마냥 가볍진 않지만 출근길보다는 가벼운 마음과 걸음걸이로 퇴근길에 오른다.


나도 5년 동안 저 생활을 했지만 과감하게 회사를 나올 수 있었던 건 애초에 회사에 발목 잡힐 만한 이유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출과 부양가족 등. 이 것들을 가진 회사원들은 회사를 벗어날 수 없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을 수 있지만, 크게는 저 두 가지가 가장 큰 이유다. 감사하게도, 아직 나의 부모님은 경제활동을 하시고 건강을 유지하고 계시다. 결혼은 애초에 생각도 하지 않았다. 대출 같은 게 싫어 부동산엔 관심도 갖지 않았다. 이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았더라면 난 아직도 좀비처럼 회사의 피를 빨아먹고, 회사도 나의 피를 빨아먹고 있었을 것이다.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 떠나가지 못하는 남자'와도 같은 관계와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서로를 갉아먹는 그 생활을 청산하기 위해서, 퇴사라는 방법을 썼다. 스스로 인생에 변화를 주고 싶기도 했다. 남들이 결혼으로 변화를 찾는 시기에, 나는 조금 더 자유로운 인생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아무 시도도 안 한 채로 회사에 남아 "변한 게 없구만" 이 말만 입에 달고 살기엔, 너무도 인생이 아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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