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연대기] intro : 취미의 3요소 - 돈, 시간, 노력
시대마다 그 시대에 어울리는 취미가 있다.
누구나 그렇듯 음악감상으로 취미를 시작했다. 독서와 사진과 같은 대중적이고 스테디 한 취미의 영역도 빠질 수는 없다. 각각의 시대에 즐겼던 취미를 생각나는 대로 나열해 본다.
골프, 마라톤, 음악철학, 크로스핏, 와인, 짜장면 투어, 고전영화, 디테일링 세차, 노포 찾아다니기, 궁 투어, 부동산 임장, 식집사, 카레이싱, 인문학, 인테리어, 맥주, 등산, 글쓰기, 이북 읽기, 클래식음악 듣기, 파스타 메뉴개발하기, PC-FI 구축하기, 일본어 공부, 서재 꾸미기, 사진과 카메라, 드립커피, 미술감상, 베이스기타, 영화 다시 보기, 우주, 와인
이들 중에는, 지금도 일상에서 취미로 즐기고 있는 것도 있고, 이제는 더 이상 하지 않는 것들도 있다. 클래식음악과 독서처럼 오랜 시간 나의 인생사를 관통하는 취미 위에, 그 시대만의 취미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취미 없는 사람이 있을까?
여기 계신 분들은 대부분 독서와 글쓰기가 취미가 아닐까?라는 아주 형식적이고 클리쉐 한 생각을 해본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취미는 아마 내가 절대 알 수 없으리라. 취미는 본인도 모르는 경우도 있으니. 때론 취미라 할 수 있는 것이, 나의 취미의 영역으로 넘어오게 되었는지, 아닌지 헷갈릴 때가 있기 때문이다.
전 국민의 취미였던 독서와 음악감상으로, 나도 그것이 나의 취미인 줄 알았다. 지금도 이들은 나의 일상의 취미이지만, 당시에는 응당 취미는 독서와 음악감상이어야 한다는 사회적 당위성이 있었다. 요즘은 어딘가에 취미와 특기를 쓰는 칸은 없겠지만, 갱지에 무언가를 적어내던 그 시절에는 취미/특기 칸엔 무조건 독서와 음악감상 외에 다른 취미가 들어가긴 어려운 시절이었다. 파스타 메뉴 개발하기를 써넣었더라면 어땠을까? 내가 독서와 음악감상을 벗어나 잡다한 취미를 가지게 된 것은 아마 30년 전부터이다.
취미라고 할 수 있는 것의 시작은 무엇인가?
30년간의 취미 생활을 통해, 알게 된 건 취미는 일단 ‘재밌어야' 하는 것이 시작점이다. 재미가 없으면 더 이상 취미일 수 없다. 취미 행위 자체를 즐기는 것도 즐거워야 하지만, 그것을 즐기기 위해 이것저것 알아보는 ‘공부’의 과정조차 즐거워야 한다. 나만의 정의를 내려 보면, 취미는 재미를 위해 시간과 돈이 들여 즐기기 위해 공부를 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네이버 국어사전의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1.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 2. 아름다운 대상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힘. 3. 감흥을 느끼어 마음이 당기는 멋. 이라고 되어 있다.
정의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전문적으로 무언가를 하게 되면 취미는 더 이상 취미가 아니다. 그때부터는 아마 ‘특기’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장기’라는 것도 있지만, 재미없는 ‘장기’는 취미일 수 없다. 이는 ‘특기’도 마찬가지다. 남들보다 잘할 수 있지만, 취미의 기본 요소는 무조건 ‘재미’이다.
취미를 위한 3요소 : 돈, 시간, 노력
즐기는 것 자체가 취미인데, 취미를 즐기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우선, 돈이 필요하다. 돈 안들것 같은 독서를 위해서라도, 책을 사봐야 한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지만. 최근 ‘1코노미(1인과 이코노미의 합성어)족’이란 말이 회자된다. 1인가구의 급증으로 경제적 여유에 부양가족은 없고 외식과 교육, 취미생활에 작은 사치를 부리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사람은 움직일 때마다 돈이 든다. 교통비도 그렇고, 외식비도 그렇다. 게다가 무언가를 ‘즐기려’한다면 또 돈이 든다. 취미는 돈과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다.
그리고 이 즐거운 무언가를 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나 혼자, 또는 누구와 함께 즐길 시간. 실제적인 취미를 즐기는 시간 외에, 취미를 즐기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때도 시간이 들어간다. 좋아하는 것을 검색하고, 배우고, 알아가고 찾아가는 시간들. 이러한 시간들은 노력과 연결된다.
무엇을 하기 위해서는 ‘알아가야’ 하기 때문에,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찾아봐야 한다. 나의 취미 연대기를 보면, 그 시대에 가입했던 카페 목록만 봐도 알 수 있다. 일반적인 정보가 아닌, 한 단계 걸러진 정보들의 총합체가 같은 주제의 취미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카페이기 때문이다. 온라인 카페에서 보내는 시간은 생각보다 어마무시하다. 무한의 정보 늪으로 빠져 드는 것과 같다.
취미를 즐기는 방법
앞서 얘기했듯 무조건 돈은 든다. 그다음은 독서와 같은 정신적 즐거움을 위한 것이냐, 운동과 같은 육체적 즐거움을 위한 것으로 나뉘고, 정신과 육체가 결합된 맛집 투어 같은 것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취미를 발전시켜 다 가보면 ‘취향’이라는 새로운 복병을 만난다.
취미의 어떤 한 분야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알아가다 보니 같은 취미 활동을 즐기는 사람들 안에서의 내 취향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이때부터는 하위 취미의 개념으로 또 한 번 돈, 시간, 노력을 들인다. 취향은 취미에서 어떤 것을 즐기고 재밌어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취미는 계속적으로 내가 무슨 행동을 하는 것, 취향은 선택에 가까운 성향을 얘기한다.
취미를 즐기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한다. 새로운 것을 알아간다는 것 자체가 즐거워야지 취미로 승화될 수 있다 무엇을 배워서 즐겁게 한다는 것 자체가 취미이다. 그래서 취미는 배움의 시간과 정비례한다. 즐거움은 정비례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욜로의 시대를 지나, 취미가 직업이 되는 시기가 왔다.
사실 그전부터 직업과 취미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여느 자기 개발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라’처럼. 조선시대 때 외교관으로 한국에 있었던 퍼시벌 로웰은 천문학을 취미 삼아 후에 소행성으로 격하된 왕성을 발견하기도 했다.
시대가 변했다. 임원 승진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임포자’들이 빠르게 늘어난다. 나 또한 일찍 임원 달고, 일찍 집에 가느니 젖은 낙엽처럼 딱 붙어 장수하는 편을 택했다. 물론 처음엔 비자발적이었지만.
이제는 ‘돈 버는 취미’를 시간과 돈을 들여 공부하는 중이다. 취미는 돈 쓰는 게 다라고 생각했지만, 취미도 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매거진은 그런 의미에서 그간 내가 지나온 취미들을 돌아보는 <취미연대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