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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제 Feb 27. 2023

"거, 일이억 들고 덤벼드는 게임은 아니에요"

ep. #2 [사적답사기]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만안구 편

일요일 아침, 이이잉. 에티오피아 원두를 갈아 하리오 핸드드리퍼를 스탠리 텀블러에 가져간다. 보글보글 부풀어 오르는 원두커피의 산미가 코 끝을 찌르자 얼른 한 모금 마시고 싶어 진다. 주섬주섬 아이패드와 차키를 챙기고 차로 나선다. 티맵에 인덕원역으로 내비를 찍는다.


'안양에 가보는 게 얼마 만인가.'

나는 안양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 외갓집에 가면서 어머니께서 어떤 건물을 가리키며, 내가 여기서 태어났다고 얘기해 줬던 그리고, 소나타88의 뒷자리에서 창문 너머로 5층짜리 하얀색 병원건물이 하나가 보였던 기억이 난다.


양재 IC를 지나 우면산로에 오른다. 어느새 서초동을 지나 안양으로 가는 길 양쪽에 서초네이처힐아파트 숲이 생겼다. 지하차도를 나와 과천으로 들어서자 저 멀리 과천푸르지오써밋과천자이가 웅장하게 서있다. 래미안슈르를 끼고돌자 오른편에 과천지식정보타운(지정타)의 흙바닥 위로 상업 건물들이 쭉쭉 올라가고, 왼편에도 타워크레인이 여기저기 박혀있다. 예전엔 참 심심한 도로였는데, 이젠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동탄을 지날 때의 끝없는 아파트 그리메와 같은 느낌처럼 다가온다.


어느새 인덕원사거리다. 오른쪽으로 돌아 동편마을을 한 바퀴 돌아본다. 내가 알던 안양이 아니다. 분당카페거리를 그대로 옮겨 놓은 느낌이다. 일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브런치 줄이 길게 늘어선 카페도 있다. 동편마을은 그들만의 세상 같은 느낌이다. 조경도 잘되어 있고. 관리도 잘되어 있다.


오늘의 첫 임장지인 안양종합운동장 동측과 북측 일원 재개발 사업지로 향한다. 사실 재개발 임장은 처음이다. 그래서 부동산도 열지 않는 일요일 오전, 어떤 곳인가 한 바퀴 돌아볼 심산으로 나선 게다. 재개발 구역 주변 구축 아파트를 먼저 보려고 관악대로에서 좁은 길로 우회전한다. 저 끝에 전형적인 현대아파트의 고전미를 보여주는 관양현대아파트가 있다. 고 정주영 회장이 직접 아파트 색깔을 고른, 땅을 의미하는 황토색으로 압구정현대아파트의 디그니티를 지니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야, 1985년생 재건축 아파트가 12억이라는 가격을 합리화할 수 있을 것 같다. 곧 여름이 오면 30년이 넘은 울창한 나무에 다닥다닥 붙어 우는 매미소리에 귀가 떨어져 나갈 것이다.


아파트를 나와 안양종합운동장 동측을 한 바퀴 둘러본다. 약간의 언덕이 있고, 시장을 제외하고는 2종과 1종이 섞여 있었지만, 상가가 꽤 많았다. 재개발이라 하기에는 길이 널찍하다. 골목길을 제외하고는. 하지만 양쪽에 주차된 차들로 남은 도로엔 차량 두 대는 한 번에 지나갈 수가 없어, 한참을 기다리거나 후진하는 경우도 많았다. 내 차가 작아서 다행이다. 양쪽에 주차된 차들을 긁어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게다가 일방통행이라 이곳을 둘러보느라 몇 바퀴를 돌았는지 모르겠다.


헤매다 겨우 빠져나와, 안양종합운동장 북측으로 이동했다. 뭔가 산만한 느낌이 사라지고 사람 사는 주거지의 동네 느낌이 난다. 그건 아마 상가가 없어서 일 것이다. 평지이면서 조용하고, 간간히 상가가 있다. 동측보다는 확실히 북측이 사업이 빠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재개발 사업지에서는 흔히 ‘시간이 돈이다’라는 상투적인 표현을 쓴다. 그만큼 사업진행이 빠른 게 이자비용 등을 줄일 수 있어 사업성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참을 돌다가 추진위원회 사무실을 발견했다. ‘어라? 일요일인데 열었네?’ 하며 주차할 곳을 찾아 돌아다니다 매곡공공주택지구 경계선인 옹벽에 차를 세웠다. 노랑, 빨강, 검정을 절묘하게 섞어 쓴 플래카드들이 경계선을 따라 일렬로 주차된 차 두 세대 간격마다 붙어있다.


“LH 지구계획 철회하라!”

“재개발 웬말이냐 재산권 보호하라!”

"토지 강제수용 결사반대”

"토지수용 강요말고 주민의견 수용하라!”

“안양시 소유땅 공시가 1,938,000원 시민 소유땅 공시가 58,00원 공공개발 결사반대”


누가 맞는 것일까? 아니 무엇이 맞을까? 고시 난 건 19년 12월인데 아직 붙어있는 걸 보니 해결은 안 된 듯했다.


추진위원회 사무실에 들어가 본다. 처음 가보는 재개발 사무실. 내가 사는 아파트에 안전진단 동의서 제출할 때를 제외하고는 추진위 사무실에 가본 적이 없다. 그것도 생판 모르는 곳에 재개발 조합원 추진위 사무실이라니. 약간의 긴장감이 몰려온다.


젊어 보이는 조합원 아저씨가 나이 지긋하신 분과 얘기 중이었다. 그분은 내가 들어선 그 틈을 타 바로 나갈 준비를 하신다.


“아, 앉으세요.”

“일요일에도 계시네요?”

“아, 저희 365일 합니다. 하하”


햐얀피부의 40대 중반. 과천행정타운 어딘가의 사무직 직장인으로 추정되어 보이는, 마스크를 벗고 있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약간은 뻔뻔한 얼굴로 나를 보며 얘기한다.  일요일 사무실 당번에 걸렸지만, 오히려 집보다 여기 나와 있는 게 편안해 보이는 듯한 기분 좋은 얼굴이었다.


“주민공람은 어느 정도 되고 있는지, 분위기 좀 보려고 들렀어요.”


처음으로 던진 질문이 자연스러웠다고, 스스로 만족하면서 조합원의 답변 기다린다. 내가 어리숙해 보인 건지, 아니면 매뉴얼인지, 회의탁자의 신문을 주섬주섬 치우니 유리판 아래 A2 사이즈의 재개발 추진 절차 장표가 나온다. ‘뭐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니 일단 들어보자.’


“4월 1일에 도계위 심의를 조건부 승인 통과 했어요. 아마 5월 초쯤에 정비구역 지정고시가 될 거예요. 이렇게 되면 추진위 승인이 되고, 그다음에 조합설립이 되거든요. 건축심의. 여기서부터 이주까지 한 3년. 빠르면. 그리고...” (22년 5월 23일 정비구역지정고시가 나왔고, 현재 조합설립추진위 상태이다)


“조합원 수는 한 900명 정도로 알고 있는데요...”

“조합원 수 904명. 이중 현금청산대상자도 있을 수 있고, 땅을 두 세평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조합원 자격은 있지만 분양권은 없어요. 조합정관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아직 어떻게 될지 몰라요. 웬만하면 다 해주려고 하지만. 뭐 지금은 알 수 없죠. 주민동의률은 95%에요 우리가 전화번호 받은 것, 개인정보 동의한 것 중 에서요.”


“어떤 조건으로 조건부 승인이 난 건가요?”

“이 구역 안에 놀이터가 있었는데, 그걸 (비산)중학교 뒤쪽으로 뺐었거든요. 근데 그걸 다시 이쪽으로 오면 안 되겠냐 해서 그렇게 하려고 하고, 아파트 정문은 어디로 할 건지 의견이 다른 게 있고, 또 뭐냐... 관악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다른 쪽으로 옮겨라. 뭐 그런 간단한 것들이에요.

여기보다 심각한 게 충훈부(만안구 석사3동)고, 동측은 아예 심의도 못했고. 상가가 너무 많아서. 상가가 민원을 너무 많이 넣었어요. 여기는 상가가 어느 정도 있는데, 동측 상가는 어느 정도 세가 잘 나오는 상가지만, 북측은 그렇지도 않거든요. 또 북측은 법인들이 많이 가지고 있어요.”


‘제대로 봤군. 역시 상가 때문이었어!’라고 혼자 흡족해하며,

“물건은 좀 있어요?”라고 질문을 던져버리고 말았다. 아뿔싸.


“잘 모르겠는데요. 아, 여기 조합원 아니세요?”

“네... 조합원 아니에요.”

갑자기 분위기 바뀌는 게 느껴진다. 그래도 이분 최선을 다한다.


“물건은 잘 모르겠어요. 워낙 비싸게 나와서요. 집값은 9천만 원 넘는 것도 있고. 평당. 비싼 게. 싼 게 6천.. 근데 땅 지분이 클수록 좀 싸더라고요. 지금도 막 피가… 어제도 한 분 오셨는데 아직 안 사셨다고 하더라고요. 의왕에서 오셨는데, 그분 의왕에서 조합원이신데, 거기꺼랑 비교하시면서. 근데 여기는 ‘피가 한 4억 붙었네’ 하시더라고요.”


뭔가 한마디 해야 하는데, 머뭇머뭇거리고 있으니 한마디 하신다.


“거 1~2억 들고 덤벼드는 게임은 아니에요.”

살짝 기분 나쁠 뻔했다. 이쒸. 모른 척하고 말을 돌려본다.


“그럼 이제 곧 고시하겠네요? 그래도 구역 지정 전에 들어가면 그래도 쌀 테니까 분위기 보려고 한번 와봤습니다."

“예. 시에서는 조건부 승인으로 조만간 발표한다 했어요. 별로 큰 문제없다고 보는데. 구역지정되고 조합설립 되고 하면 또 뛰겠죠. 요기 아래 부동산 네 군데 있어요. 고기 가서 함 찾아보시면. 아니면 뭐 네이버에 올라왔있는 거 있어요. 근데 그거는 다 믿지 마시고.”

“네, 감사합니다~”


꾸뻑 인사하고 나왔다. 일요일에 문 열린 조합 사무실에, 무턱대고 공부 안된 상태에서 들어갔다 오니, 왠지 뭔가 많은 정보를 얻은 것 같지는 않은 느낌이다. ‘이것도 공부지 뭐. 아. 또 배고프다. 조합원 사무실도 기 빨리는구나.'


삼호뉴타운맨션을 한 바퀴 돌고, 점심을 먹으러 안양 중앙시장으로 향한다.

비산대교 왼쪽으로 래미안안양메가트리아가 오른쪽으로 안양역푸르지오더샵 펜스가 보인다. 구도심이다. 주공뜨란채삼성래미안을 한번 둘러보고 중앙시장 공영주차장으로 향한다. 일요일 낮이라 아주 복작복작하기 그지없다.


주차를 하고 중앙시장 입구로 두리번거리며 들어선다. 꽈배기의 기름진 달콤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꽈배기 크게 한 입 물면, 입 주변에 까슬까슬 묻어나던 설탕을 닦아내던 외할머니의 투박한 손길이 느껴지는, 기억을 불러낸다. 입 주변에 설탕이 쓸리는 달달한 껄끄러움과 함께.


시장안쪽으로 들어가는 길엔, 모든 냄새가 다 섞여 있다. 이제 나의 목적지인 <서울식당>으로 간다. 순대 따로국밥을 시키고 기다린다. “먹을텐데”의 성시경처럼 대낮에 ‘사장님~ 여기 소주 한 병 주세요~’ 하고 싶다.

시장통을 나와 안양어반포레자연&이편한세상 길로 간다. 역시 펜스가 쳐져있고, 어? 언젠가 참 많이 봤던, 현충탑 표지판이 보인다.


외할아버지는 6.25 참전용사셨다.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 매년 현충일이면 이곳 현충탑에 왔었다. 안양씨엘포레자이 아파트 쪽으로 돌아 현충탑에 올라가 본다. 200여 개가 넘는 계단이 어렸을 때는 그렇게 높아 보였는데, 이젠 나이가 들어 힘든 느낌이다. 이 나이가 되서야 처음으로 현충탑 뒤에서 외할아버지 이름을 찾아보고, 한 번도 뵙지 못했던, 잠시 빛바랜 사진 속 외할아버지를 떠올리며 기나긴 현충탑 계단을 내려온다.


집으로 향하는 내비를 찍는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도 약간은 선선해지는 느낌이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어린 시절의 외갓집 추억으로 막히는 경부고속도로는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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