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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제 Mar 22. 2023

14년만에 부동산투자자로 돌아오니,

ep. #3 [사적답사기] 경기도 남양주시 크게 한 바퀴 편   

‘아... 크다. 넓다... 다 돌아볼 수 있을까?’


옛 양주군은 의정부시와 동두천시까지 아우르고 있었으니 얼마나 컸던 걸까. 남양주시는 임장 루트를 짜기도 쉽지 않다. 몰려있는 것도 아니고, 구리시를 지나 왕숙천 건너, 별내신도시다산신도시를 제외하고는 진접, 평내/호평, 마석, 도농, 덕소는 천마산과 철마산을 빙 둘러 띄엄띄엄 자리하고 있다. 그렇다고 나도 한 바퀴를 돌아 강원도 까지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니, 어린이날 양평 부모님 댁에는 다녀왔겠다,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에 걸쳐 다핵도시인 남양주를 여기저기 돌아보려고 계획한다.


남양주시는 두 개의 청사를 가지고 있다. 시군단위에서 제2청사가 있는 곳이 몇 이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옛 미금시청사인 남쪽의 제1청사는 경춘선 금곡역 쪽에, 제2청사는 중앙선 도농역 근처에 있다. 상봉역에서 갈라지는 경춘선과 중앙선은 남양주시를 지나 춘천과 강릉으로 향한다.


남양주시는 철도역마다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데, 마치 중동의 고대 수로인 “카나트”처럼 철도역이 우물이 되어 사람들이 모여사는 듯한 느낌이다. 철도 교통이 그만큼 중요하단 뜻이 되겠고, 역세권은 우물같이 사람들이 찾아 몰려드는 곳이니 말이다. 경춘선은 ITX로 춘천까지, 그리고 중앙선은 KTX로 강릉까지 달려간다. 평창동계올림픽으로 KTX가 생겨서 인지 춘천보다 강릉이 왠지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겠지?


주말 오후, 햇살이 좋다. 집 앞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픽업해 출발한다. 어느새 프라푸치노의 계절이 왔다. 그런데 화랑대사거리는 왜 늘 막히는 걸까. 신호를 기다리며 멍 때리고 있는데, 싸이(PSY)의 새 앨범 중 80년대 감성이 물씬 풍기는 “서울패밀리”의 <이제는>을 리메이크한 곡이 흘러나와 같이 흥얼거린다. 

‘지이~난 나알~ 그리워하는 것은 아쉬움이야~~(빠빱빠 빠~밤!) 바아~람 쏘옥~을 걸어가는 너의 모씁처럼~’ 옆자리에서 받아준다. 

‘나아~는 이~제 모~든것을 잊어야만 하네~~ (웃!)’ 오늘은 함께 답사를 간다.



# 나의 살던 고향은


나는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남양주에 살았다. 15년 만에 경춘로를 타고 ‘우리 집’들이었던 ‘나의 살던 고향’으로 가본다. 그러고 보니 남양주는 꽃피는 산골이다. 그 모두의 핑계처럼 IMF때, 아버지 사업이 망해 서울에서부터 점점 하급지로 밀려나다, 이곳 남양주에 왔었다. 남양주에서도 처음엔 평내, 그 후 마석으로. 다시 찾은 남양주는 너무나 많은 게 변해 있었다. 아무것도 없었던 제1시청사 앞, 고종과 명성황후의 능침인 <홍유릉>은 <REMEMBER 1910>라는 공원이 되어있었고, 가는 길 내내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건 거의 남양주 시청과 현대오일뱅크를 빼곤 거의 없었던 듯했다. 천마산스키장만이 기억을 되살려 주었다.


서울에서 평내와 마석을 연결해 주는 마치터널을 넘는 일은 너무나 멀게 느껴지는 일이었다. 중학교 때 관광버스를 타고 놀러 오던 그 천마산 스키장을 지나서야 우리 집이 있다는 것이니. 이 얼마나 먼가. 재작년인가, 코로나로 문을 닫았다는 기사를 봤던 기억이 나서 찾아보니, 1982년에 천마산스키장으로 개장하고, 2004년 스타힐리조트로 이름을 바꿨다가 21년 6월에 폐업했다 한다. 지구온난화 때문일까, 아니면 주변에 새 아파트 대 단지들이 들어와 더 이상 리조트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어서일까? 아니면 진짜 코로나를 못 버텨서였을까? 그런데, 그러면, 스키장 부지도 개발이 가능한가? "계획관리지역"인 걸 보니 뭔가는 하겠다.


당시 나는 남양주에서부터 광화문까지 출퇴근을 했다. 차를 가지고, 경의중앙선 양정역까지 나와 지상철을 타고 왕십리에서 5호선으로 환승하면 한 시간 40여분 정도 걸렸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면 “양정역세권도시개발구역"은 남양주에서는 서울 접근성이 “다산신도시” 다음으로 좋은 듯하다. 양정역 주변에는 ‘생활대책용지(상가딱지)조합설립인가’를 축하하고, 2022년 5월 공사착공 예정(!)이라고 영농행위를 할 수 없다는 LH의 플래카드 여러 개가 걸려있지만, 공사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전철이 끊길 것 같으면, 마석에서 광화문까지 차를 가지고 다니기도 했는데, 11시가 넘어 야근을 하고 차를 끌고 퇴근을 하던 2007년 12월 27일. 갑자기 날씨가 풀려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갔던 날. 마치터널을 지나 나오는 급커브 좌회전 길에서, 밤이 되니 다시 노면이 얼어붙은 블랙아이스에 미끄러져 몇 바퀴를 돌았는지 모르겠다. 3년 할부가 끝나던 바로 그 달에, 차는 그렇게 폐차를 당하고 말았다. 어디 한 군데 부러진 곳은 없었지만 충격으로 인해 그 후, 난 근 한 달간 병원에서 보냈다. 

그때 그 경험으로 ‘오늘 집에 가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오늘만 날이다”를 새로운 생활신조로 삼고, 멍청하게 10여 년을 넘게 살아왔던 것 같다. 이렇게 부동산 투자자로, 달라진 나로 남양주에 돌아오니, 이 또한 복잡 오묘한 감정이 든다.


평내로 들어섰다.  “남양주 진주아파트의 시공사는 서희건설입니다.” “조합원님의 부담최소화는 서희건설만이 할 수 있습니다” "진주아파트의 잃어버린 시간 서희건설이 찾아드리겠습니다"라는 빛바랜 플래카드를 지나 나의 살던 고향 효성타운아파트로 가본다. 26년 차가 된 아파트는 울창한 나무로 구축의 기운을 뿜고 있다. 바로 옆엔 22년 6월 입주한 e편한세상평내메트로원으로, 효성타운은 평내의 잠시 대장을 따라가는 놈이 되어 버렸지만, 새벽과 밤늦게, 출퇴근만 해서 그런지 내가 살던 곳이 맞나 싶었다. 그냥 임장 다니는 아파트 같은 느낌이 들어 왠지 모르게 씁쓸했다. 아니 어쩌면 기억에서 지우고 싶었나 보다. 힘들었던 시기였으니.


효성타운 살면서 단 한 번도 이용하지 않았던 평내호평역으로 가본다. 이렇게 복잡했나? 하긴 당시에는 이마트만 덩그러니 있었으니. 그러고 보면 이마트의 입지 선점은 최고인 듯하다. 최소 20년은 바라보고 온 듯하다. 답사를 다니다 보면, 신축아파트 옆엔 늘 빛바랜 이마트가 있는 곳이 많았으니 말이다.


평내호평의 대장 평내호평역KCC스위첸을 보러 간다. 실망이다. 초역세권이긴 하지만, 평내호평역부터 KCC까지는 1호선 송내역 앞 상권이 떠오를 정도로 복작복작했다. 초등학교도 이 상권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야만 했다. 엄마들이 ‘NO’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산알프하임으로 향한다. 멀리 보이는 단지는 산 아래 구석태기에 옹벽을 치고 자리한 '벽산아파트'와는 차원이 다른 웅장함을 지니고 있다. 서울리조트 스키장 부지에 건설한 이 아파트로 올라가는 길에 남양주 땡큐버스 그것도 흔치 않은 트롤리버스가 내려오니 마치 리조트에 놀러 온듯한 느낌이 든다.



# 두산알프하임


두산알프하임은 ‘두산위브더제니스’ 처럼 단독 브랜드를 쓰고 있다. 북유럽 상점을 형상화한 자체 로고도 가지고 있다. 아직까지는 이 단지 하나 지만, 앞으로 이런 콘셉트로 브랜드아이덴티티를 만들어 나가지 않을까? 아 그러고 보니, 두산에서 천마산스키장 자리를 매수해 ‘두산알프하임스타힐’ 하나 더 지으면 되겠다. 알프하임의 제일 끝 쪽, 산 쪽에는 50여 세대 복층, 테라스 아파트들도 있다. 단지 내 상가는 브랜드 로고처럼 삼각지붕으로 귀엽게 생겼다.


출퇴근 시간 15분 간격으로 평내호평역을 오가는 셔틀버스는 알프하임이 왜 비싼지 모든 걸 얘기해 준다. "2,894세대 대단지, 유초중 품아, 미미르센터(수영장,골프장,헬스장,도서관,다목적강당), 캠핑장, 게스트하우스, 4.4km 자연 속 산책로, 숲세권 리조트"라고 셔틀버스에 붙어있다. 평내호평역에서 이 ‘입주민 전용’ 버스에서 내리는 하차감도 있으려나?

'래미안첼리투스' 급은 아니겠지만 4레인 실내수영장도 있고, 단지 내 파스쿠찌도 들어와 있다. 종로엠스쿨 까지 들어와 있으니, 남편들만 셔틀 타고 다니며 고생하면 된다. 중학교 갈 때까지만. 엄마들은 뭐 딱히 나갈 일이 없을 듯 하지만, 행여 나가게 된다면, 버스 타러 단지 내 상가인 휘게 애비뉴(HYGGE AVENUE)까지 나가기 힘들 수도 있다. 언덕도 심하긴 하다. 올라오는 게 더 힘들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알프하임은 단순한 숲세권이 아닌 리조트 같은 대단지아파트로 저 아래 호평동의 대장을 내려다보기 충분해 보였다. 실제로 내려다 보일 듯하다. 저 멀리 호평파라곤아파트까지.



#별내신도시 & 퇴계원역


별내신도시는 10년이 넘어가서 특징이 없어 보인다. 이제 좀 적당히 자리가 잡힌 신도시의 전형적인 느낌이다. 단지들은 별내역과 별내별가람역세권의 거리에 따라 정직하게 시세를 보여주고 있었다. 별내신도시의 향후 대장인 별내자이더스타가 타워크레인과 함께 20층 전후로 올라가고 있고, 생활형 숙박시설이 들어온다는 곳은 아직 아무런 움직임이 없이 잡초들만 무성하다. 한 바퀴 돌아보니, 이마트 주차장 부지는 ‘스타필드’가 들어오기에는 좀 아주 많이 작아 보였다. 하남이나 고양의 사이즈를 봤을 때, 메가볼시티로 예정되었던 부지까지 스타필드로 개발하지 않는 이상 ‘이마트 에브리데이’처럼 ‘스타필드 에브리위크(?)’ 정도의 사이즈 밖에는 안될 것 같다. 던킨도너츠 옆 배스킨라빈스처럼, 딱 ‘이마트 트레이더스’ 각이다. 광운대역 월계점과 너무 가까워서 안되려나?


별내신도시를 빠져나와 퇴계원역으로 향한다. 한 정거장 차이인데, 30년 전으로 돌아온 느낌이다. 퇴계원에서 유일하게 퇴계원힐스테이트는 그래도 괜찮아 보인다. 동쪽 왕숙천과 퇴계원힐스테이트 사이에는 원래 싸드(THAAD)가 있던 곳이다. 경북 성주시에 싸드를 배치하면서 롯데와 교환한 땅이다. 아직까진 부지개발에 대한 아무런 얘기가 없지만, 왕숙천 건너 왕숙신도시가 들어오면 롯데몰이 들어올 수도 있겠다.  9호선 추가연장이 왕숙까지 올라오면, 퇴계원역도 한 정거장만 갈아타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러면 퇴계원힐스테이트를 선점해야 하나? 아니면 개발에 쏙 들어가 있는 퇴계원쌍용예가를? 호갱노노을 찾아보니 이미 선점은 아닌 듯하다. 참 다들 빠르다.



#덕소 & 도농, 다산신도시


큰길로 나와 덕소로 향한다. 아직까지 구름이 걷힐 기미는 보이지 않고, 구름의 흑백 표현이 조금 더 진해진다. 덕소를 먼저 보고 도농으로, 마지막으로 다산신도시를 보고 집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바람이 차졌다. 바람에서 물 냄새가 난다. 오늘 저녁엔 비가 오려나 보다. 세차는 다음 주에나 해야겠다. 아침부터 홀짝홀짝 시핑 하던 커피가 다 떨어졌다. 어느덧 덕소 구도심이다. ‘여기도 참 낡았다.’ 그냥 이 표현이 가장 적확해 보인다. 맛있는 커피집은 없어 보인다. 메가커피라도 있으면 쿠폰 하나 쓸 수 있는데...라는 생각을 하다 포기하고, 자일리톨 세알을 꺼내 씹는다.


답사를 다니다 가끔 어딘가에 있던 ‘신앙촌상회’에 궁금증이 생긴 적이 있었다. 신앙촌 두부, 간장, 양말을 팔던. 신앙촌은 ‘한국천부교회=전도관’ 신도들이 집단 거주하던 마을이었다. 역사는 1955년부터 시작된다. 소사에 제1신앙촌에 이어 덕소는 제2신앙촌마을이었다. 지금은 그 자리에 덕소두산위브아파트가 올라가 있지만, 그 뒤쪽으로는 “천부교덕소교회”가 여전히 자리하고 있고 신도들도 적지 않게 남아있다. 답사루트를 짜면서, 카카오맵을 보다 괜한 호기심에 들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올라간 곳에선, 나도 모르게 얼어버렸다. 1966년에 완공된 건축물은 마치, 잘은 모르겠지만, 기능과 효율을 강조하고 장식이 없는 르 코르뷔지에나 바우하우스의 건축물처럼 느껴졌고, 잠시 여긴 어디인가 하는, 시간과 공간이 흐트러지는 느낌이 들어 멍하니 서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대부분 할머니들이었지만 신도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해, 후다닥 사진을 찍고 시동도 끄지 않은 차에 올라타 백미러를 응시하며 도망치듯 나왔다.


도농역 바로 앞에 부영e그린타운은 ‘원진레이온’ 부지에 세워진 5,756세대 대규모 아파트단지다. 원진레이온은 아황산탄소 노출사건으로 한국에서 최초로 직업병 문제를 공론화시킨 곳으로 산업재해 질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구리시 인창동에 ‘원진녹색병원’을 세우기도 했다.

부영e그린타운은 다산플루리움으로 세탁하려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플루리움' 이란 이름은 입주민들이 투표를 통해 정했다고 한다. 도색작업은 단지마다 약간의 팬톤컬러의 변화를 주며, 부영 답지 않은 나름 고급스러운 색감을 쓰고 있다. 다행이다. 하지만, ‘창원월영마린애시앙’처럼 애시앙이 붙으면 보통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부영의 시그니쳐컬러를 써야 하나보다. 주상복합 부영애시앙아파트의 색감은 촌스러움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경계를 넘어, 팝초현실주의로 들어선 느낌이다.


남양주답사의 마지막. 가장 최근에 세워진 다산신도시이다. 정말 “쌔” 아파트들로 가득 차있다. 제일 오래된 아파트가 2017년 입주니 말이다. 21년에 입주한 다산자이아이비플레이스는 단지에서 지하로의 연결이 예상되는 8호선 다산역세권을 떠나서도 아파트 그 자체만으로도 남다른 포스가 느껴졌다. 길 건너 상업지역의 ‘김종구 부산어묵’과는 다른 차원의 상가들이 포진하고 있다.


역시 1박 2일 답사는 뒷 날이 짧다. 유럽 여행 가서 ‘우와’ 하다가 이틀이 지나면 다 똑같아 보이는 중세의 건축물들처럼, 그 아파트가, 그 입지가 그게 그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점심도 안 먹고 돌아다니다만 왔으니, 오는 길에, 이틀간 남양주와 함께한 나에게, 교촌치킨 반반 콤보를 선물한다. 치킨이 식기 전에 넷플릭스와 교촌과 함께 얼마 남지 않은 주말을 보낸다. 그렇게 이틀간의 남양주 답사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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