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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제 Jul 06. 2023

엑스포 꿈돌이를 찾아서

너의 부자가 되고 싶은 꿈 : 대전 서구 둔산동 

  “예진아, 나 본가에 좀 다녀와야 할 것 같아. 아부지가 입원하셨다네. 지금 응급실에 계시대...”

  “뭐!? 쓰러지신 거야? 어디 아프시대?”

  “응... 그게, 막 응급응급한 건 아니야. 병실 나기 전까지 응급실에서 대기하다가 수술하고 입원하시는 거래. 간낭종이라고 간에 물혹이 있는데, 사람들 대부분 쪼그만게 다 있대. 근데 아부지는 이게 커지고 부풀어서, 간이 위를 누르고 그러나 봐. 그래서 그 커진 물풍선들 터트려야 한대. 근데, 그리 심한 건 아닌가 봐.”

  “휴... 다행이다. 그래도 걱정되네. 얼렁가봐. 토요일이라 차 막히겠다. 차 가지고 갈 거야?”

  “아니 대전성모병원이니까, 대전역하고 가까워서, 그냥 기차 타고 가려고. 저녁에 형도 오기로 해서, 저녁이나 같이 먹으려고.”

  “아주버님도 오신대? 주말인데 공연 없으신가 보네. 알았어. 아버지 너무 걱정 말고. 괜찮으실 거야. 도착해서 전화하고~!”




  연택의 아버지는 대전 특허청 출원과에서 민원사무관으로 근무했다. 아쉽게 40년 근속을 채우지 못하고 2017년에 정년퇴임했다. 특허·의장·실용신안 접수 및 방식 심사 업무를 평생 해왔다.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해서 5급 사무관을 달고 은퇴를 했으니, 성공적인 공무원 인생이었다.

  정부대전청사로 특허청이 옮겨오게 되면서 연택네 가족은 1998년 대전으로 내려왔다. 연택이 중학교 때까지 살았던 영등포구 신길 6동을 떠나, 대전 둔산동 크로바아파트로 왔다. 당시 크로바 아파트는, 정부대전청사와 시청, 검찰청, 법원 등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공무원 아파트 같았다. 6급 공무원인 연택의 아버지는 '여긴 높은 사람들이 많이 사니, 늘 인사를 잘하고 다니라'고 얘기하곤 했다.




  “엄마, 저 왔어요. 응급실 앞이에요.”

  “응 왔어 아들? 근데 어쩌냐... 아직 시술일정을 못 잡아서, 응급실에서 대기하고 있어. 입원실이 나와야 시술하고 바로 병실로 가는데. 응급실은 아직 코로나 때문에, 보호자 1명밖에 못 들어와서 넌 아빠 얼굴도 못 보겠네에. 요 앞이야? 내가 잠깐 나갈게”

  “아부지는 좀 괜찮으셔?”

  “간에 물풍선 커지고, 황달까지 와가지고는... 아주 누렇게 떴어... 뽈록하던 배도 쏙 들어가고, 팔다린 뼈밖에 없어. 술 한잔 못하시는 양반이 어쩌다가 간이 부어가지고는, 에휴...”

  “또 뭐 하느라고 그러셨대?”

  “뭐... 온 동네 사람 챙기고 다니느라 그랬지. 네 형도 저녁에 온다며? 곧 일정 잡힐 것 같으니까, 아빠차 좀 집에 갔다 놔라. 언제 퇴원할지 모르니까 마냥 병원에 둘 순 없잖아. 퇴원할 땐 그냥 택시 타고 가지 뭐. 형 오면 그때 다시 와봐. 그땐 아빠얼굴 볼 수 있는지 보자.”




  연택은 병원 지하주차장에서 아버지의 차를 찾는다. 은퇴하시면서, 이제 눈치 안 보고 당신도 탈 수 있다며, 평생을 중고차만 사시다가, 처음으로 새 차를 사셨다. 감가상각을 고려하지 않은, 아버지 인생의 마지막 플렉스였다. 연택은 아버지의 퇴직금 일부를 현금결제한 17년식 까만색 그랜저IG에 앉는다. 운전석을 연택의 큰 키에 맞게 조정하면서, 왠지 아버지가 더 작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안쓰러워진다.


  크로바아파트로 가는 길에 연택은 예진에게 전화를 건다.

  “어? 그래? 아버님 못 뵀어? 이따가는 볼 수 있겠지 뭐... 그래서 이제 뭐 해?”

  “이번주 나 좀 피곤했나 봐. 집에 가서 그냥 내방 기웃거리다, 형 오면 나가려고.”

  “오빠, 많이 피곤해? 그래도 대전까지 내려갔는데, 그냥 집에서 뒹굴 거리지 말고, 임장 좀 나 대신 갔다 와~! 오빠 갑천 건너 신세계 새로 생긴데 안 가봤지? 거기도 한번 가보고, 우리 학교 본원 옆 구청 뒤에, 한빛아파트라고 기억나? 거기도 한번 가보고, 문지캠퍼스 쪽에 엑스포아파트라고 거기도…”

  연택은 집에서 쉴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크로바아파트로 향하던 우회전 깜빡이를 끄고 룸미러로 뒷 차선을 확인한다. 다음 신호에 직진을 한다.

  “아, 모르겠닷~! 느므마나~!!! 동선 짜서 문자로 보내줘~ 하나씩 가볼게~”




  아버지의 그랜저IG로 아주 오랜만에 갑천을 건넌다. KBS사거리에서 저 멀리 엑스포타워 오른편에 반짝이는 ‘한빛탑’이 눈에 들어온다. 연택은 엑스포타워 38층 <스타벅스>로 향한다. 대전시내가 훤하게 내려다 보인다. 한 바퀴 돌아보니, 크로바아파트도, 카이스트 본원도, 대전 과학고도 저 아래 그렇게 있다. 연택은 25년 전인 1998년 대전과학고 기숙사에 입소하던 첫날이 떠올랐다.  은색 소나타II의 뒷자리에서 짐을 가득 넣은 트렁크에 손을 올린 채 대덕대교를 건너며 한빛탑을 바라보던 그날이.


  아버지를 따라 서울에서 대전으로 내려와, 친구 하나 없는 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낯가리고 혼자 놀기 좋아하는 연택에겐 엄청난 도전이었다.

  고등학생이 된 연택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를 졸라 세 번이나 왔던 <1993 대전 엑스포>의 기억을 떠올렸다. 전국 초등학생 꿈의 양대산맥이던 '대통령'과 '과학자' 중에서, 연택은 대전 엑스포의 ‘테크노피아관’ 입장 대기줄에 서서, 진심으로 과학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세 시간 기다리기는 기본이었던 ‘우주탐험관’에서는「은하철도 999」의 ‘메텔’로 선명하게 기억되어 있는 한 신비로운 도우미가, 연택을 안드로메다로 데려다줄 것만 같았다.


  한빛탑이 대전신세계 아트 앤 사이언스와 엑스포타워 뒤로 숨어버린다. 정신이 돌아온다. 대덕대교를 건너 좌회전을 해서 학교 쪽으로 간다. 옛 생각이 나서인지 기상청을 끼고 우회전을 해서 과학고 쪽으로 향한다.


  “도전! 과학의 세계로 꿈의 나래를 펴자!”가 붙어있는 본관이 보인다. 아침점호 후 매일 구보로 뛰어다니던, 그렇게 싫던 성두산도 오랜만에 보니 반갑다. 구보길의 마사토가 운동화에 미끄러지며 내던 ‘사그작 사그작’ 하는 소리도 들리는듯하다. 연택은 이곳에서 과학자의 꿈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 과학로 건너 카이스트에 들어가서도 과학자의 꿈을 잃은 적이 없었다.


  예진이 둘러보라는 부동산은 가지 않고, 연택은 홀로 추억팔이 중이다. 오늘은 왠지 그러고 싶은 날이다. 한빛탑의 첨탑에서 연택에게 이상한 신호를 보내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도 모르게 대강당을 지나, E16 정문술빌딩 옆 바이오 및 뇌과학과 건물 앞에 잠시 차를 세운다. <서브웨이> 앞에 한 여학생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저기서 기다리곤 했던 예진이 떠오른다. 아 참, 부동산 가라 했는데... 피곤이 몰려온다. 5월의 나른한 햇살에 ‘5급 사무관 은퇴’라는 아버지의 꿈을 이룬 아버지의 그랜저IG에서 잠시 잠이 든다.

  ‘과학자였던, 나의 꿈은 어디로 간 걸까?’


  “오빠, 우리처럼 카이스트 나와서 삼성이든 SK든 들어가 봤자,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그래봤자 똑같은 회사원이고 직장인일 뿐이야! 월급의 노예라고!!!”
 “예진아, 갑자기 왜 그래?”
 “내 중학교 친구들 보면,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고 그런 거 다 필요 없다니까! 내가 어떻게 공부했는데! 걔네들은 아주 팔자가 그런 팔자가 없어!”
  “오늘 중학교 친구들 만났어? 웬일로?”
  “혜선이가 청첩장 준다고 해서, 하는 수 없이 몇 명 같이 봤어. 근데, 걔 회사 그만두고 나와서, 무슨 뷰티 유튜버 하고 있대. 구독자 몇만 이래나 뭐래나! 근데 그거 알아? 혜선이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에서 결혼식한대. 그건 어차피 돈지랄이니까 한 개도 안 부러운데, 걔네 신혼집이 어딘지 알아? 옥수파크힐스래. 16억짜리!!! 한강이 쫘악 내려다 보인대. 나 압구정현대에서 쫓겨나서 전세살던, 옥수역 옆에 그 중앙하이츠 말고! 그건 진짜 부럽더라. 근데 우리 집은 이게 뭐야! 시골구석탱이자나. 잘 오지도 않는 이상한 기차만 다니는 역하나 딸랑 있는! 오빠가 내 맘 어땠는지 알기나 해? 응? 아냐고오~ 알아 몰라~!?!?”
  예진은 아주 작정을 하고 부르르르 떨며 악에 바친 듯 연택에게 바락바락 소리를 지른다.


  “어~ 어~ 알아~! 예진아아~”

  부르르르~ 컵홀더에 꼳아두었던 아이폰이 진동하며 두터운 플라스틱 마찰음을 낸다. 부르르르~ 잠에서 깨어 주섬주섬 핸드폰을 찾는다. 한 십 분 정도 잠들었을까?


  “오빠, 어디야?”

  “응 그냥, 학교잠깐 와있어.”

  “학교에서 뭐 해? 부동산 아직 안 갔네 그럼? 엑스포까지 가려면 시간 안될 수도 있겠다. 얼렁 움직여.”

  “응. 알았어. 예진아 알겠어. 내가 알아. 내가 알아...”

  “응? 갑자기? 뭘?”


  예진이 연택의 꿈에서 처럼 말한 적은 없지만, 가끔가끔 비치던 그 표정과 기운을 이해하고 있다고 연택은 생각했었다. 근데 이제서야 제대로 알 것 같다. 예진이 어땠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연택의 과학자가 되겠다던 꿈의 발원지인 대전에 와서 자신의 학창 시절을 돌아보니, 이제는 예진의 ‘부자가 되고 싶은 꿈’이 조금 이해가 간다.


  연택은 대학교 때, 과학자로서의 꿈을 잃었다. 메타인지가 발달한 그는 동료들을 보며, 자신이 더 이상 연구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SK하이닉스에서는 AI메모리 솔루션팀에서 초거대 AI를 학습시키고, 불필요한 매개변수를 제거하는 일을 담당했었다. 하지만, 인간처럼 여러 상황을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하기 위한 수준까지는 갈 수 없는 한계에 부딪혀 있었다.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을 견디기 어려웠다.

  헤드헌터의 제안을 받아 면접을 본 건 TL때문이라고 예진에게 말했지만, 연택의 마음 깊은 곳에선 더 이상 연구자로서의 길을 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메모리사업부 전략마케팅실에서는 연택이 학교때 하던 fMRI 뇌스캔을 기반으로 한, 여러 연구방법을 신경마케팅과 연계시키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상대적으로 과학자로서의 부담은 덜 할 것 같아 보여 연택은 이직을 결심했다.




  카이스트 본원의 넓디넓은 도로를 가로질러 예진이 보고오라는 아파트는 건너뛰고 그냥 집으로 향한다. 연택에게 말을 걸어왔던 퓨쳐리스틱 한 어린 날의 한빛탑은, 언뜻 고개를 돌려보니 하얀 첨성대에 은갈치가 둘러져있는 것처럼 보였다. 금새 은갈치 마저 빛을 잃고, 먹갈치로 변해가는 듯 그렇게 사라져 갔다.

  둔산동 크로바아파트 본가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자 마자 맥주 한 캔을 따고, 현관문 앞, 오른쪽 연택의 방에서 '엑스포 꿈돌이 인형'을 찾는다. 책장 위의 먼지쌓인 박스들을 하나하나 열어본다. 먼지마저 끈적끈적해졌다. 찾았다! 나의 빛바랜 노란색 엑스포 꿈돌이.


  물티슈로 닦아본다. 꿈돌이를 다시 깨우고 싶다. 꿈돌이를 놓아둘 책장을 둘러본다. 과학고시절, 기숙사에서 읽었던 「데미안」이 보인다. 몇 년 전, 청주의 공갈빵과 알이 오버랩된다.


금이 가 버린 알, 깨어 저 버린 꿈. 갇혀있는 나.


  1,200쪽이 넘는 넓적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편히, 나의 빛바랜 꿈돌이를 기대 준다. 왠지 어울려 잠시 뿌듯해진다. 은하수 같은 거품의 노란색 아사히 생맥주캔이 아주 맛난다.


  부르르르~ 부르르르~

  “어, 형 도착했어? 어디야 병원이야?”

  “야 인마, 너 어댜? 빨리 안 오고 뭐 해???”

  “왜 무슨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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