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제 Jul 13. 2023

성악가 형의 꿈은 스타벅스 건물주

상상도 안되는 상상의 나래 : 대전 중구 은행동 


  “어무이 봤다. 아부지는 안작 시술일정 못 잡아 몬보고. 오늘 안에는 안될 것 같다 하네. 내 그냥 심심해서 전화해따. 니 빨랑 오라고"

  “아 형 뭐야~!!! 근데... 형, 조폭이야?

  190cm에 110kg의 거구인 주택은 짙은 네이비 스트라이프 슈트에 알렉산더 맥퀸 흰색스니커즈를 신고, 고야드 세나 블랙 브라운 클러치백을 왼쪽 겨드랑이에 끼고 있다.

  “형이 무슨 마블리인 줄 알아? 무슨 「범죄도시」 찍는 줄 알겠네... 형! 은근히 귀여운데?

  “뭐라카노! 이 자식이, 밥이나 무러 가자! 오데갈래?”

  “아니 근데, 부산사람도 아니면서, 왜 어설픈 부산사투리 쓰고 그래?

  “맞나? 내 가아?”

  “아놔 진짜. 이 형이...”

  “내 가아~ 또 카멜레온 아이가! 어디 가든 한븐 자리잡음, 내는 거 사람이 돼뿐다. 그래야 사는 기라. 그때그때 변해야 산다. 안 그름 다 죽는 기라.”

  온몸을 울려 나오는 저음이 낮게 깔린다. 연택과 두 살 터울인 주택은 부산시립합창단 단원으로 베이스 부수석을 맡고 있다.




  “여기요~, 면사리 추가하고요 주전자막걸리 하나 더 주세요~! 응? 밥도? 사장님~ 공깃밥 하나도 추가요~!”

테이블 위의 형의 갤럭시 S23가 울린다.

  “네~ 어무이. 와요? 아... 기래요. 알겠심더. 내 연택이랑 밥묵고 내려갈게요.”

  “엄마야? 뭐라셔?”

  “시술 월욜로 잡혔단다. 주말 내 응급실에 계속 있어야 한다카이. 오늘은 그냥 가고, 담에 병실잡음 함 오라고 하시네.”


  어머니는 무슨 일이 있을 땐 늘 주택에게 전화를 했다. 첫째라서 그런지, 아니면 더 이뻐서 인지 무튼 그랬다. 아버지가 연택이만 대놓고 좋아하셨으니, 어머니 입장에서는 ‘딴따라’인 주택을 더 챙길 수밖에. 고등학교 때부터 집 나가 살고 있는 자식이 더 안쓰러웠을 수도.


  “오~! 형 전화기 언제 바꾼 거야? 쓸만해? 나도 이제 갤럭시로 바꿔야 해서...”

  “얼라? 애플빠가 어쩐 일이고? 맞다! 니 삼성전자 간다 켔지. 오뭬~ 다시 한번 축하한대이. 이노마 진짜 엘리트네 엘리트. 히트다 히트!”

  “엘리트는 무슨! 그냥 월급 쟁이지 뭐.”

 

  “니, 요즘 부동산 공부칸다 안 했나? 그라믄 갤럭시 써야재. 이기 통화녹음이 되니께, 부동산 투자하는 사람들은, 마 다 갤럭시 쓴다카이. 그래, 뭐 쫌 투자 좀 했나?”

  “아니... 그때 얘기했던 오송 꺼 팔고, 그 돈 주식에 몰빵 했다 고스란히 말아먹었지... 그 뒤론, 돈 없어서 그냥 공부만 하고 있어”

  “하이고야. 문디자슥. 뭔 다꼬 개미새끼가 돼가지고 그랬다냐아..?”




  “형은 요즘 부동산 뭐 해?”

  “요즘이야 시장이 하도 안조아가 납작 엎드려있재. 내는 아파트는 안하고 재개발 빌라만 한다. 내가 또 빌라인생 아이가. 내 고3 때 석촌호수 아래 그 5층빌라 꼭대기에 있었잖나. 4층에 이모집이고. 그거 마이 올랐는가 몰겠네. 요즘 거가 송리단길인가 뭔가, 마 엠제뜨들 엄청 몰린다 카이. 그라고, 한양대 근처서 하숙했재. 졸업하곤 서울시합창단 연수단원 할 때, 이태원 옥탑방 살았재. 경리단길에. 니도 와봤재? 서울 놀러 올 때 가끔 자고 갔다 아이가? 내는 그 집이 글케 좋았다. 세종문화회관으로 남산순환도로 타고 출퇴근하는 길이 느므 좋았다. 사계절이 마 온몸으로 느껴졌다 아이가.”

  “맞아! 그 집 원룸 크기만큼 옥상정원 있었잖아. 형이 파라솔도 놓고. 타코 포장해서 코로나 맥주에 레몬 썰어넣고. 남산타워도 보이고, 서울 야경도 다 보이고. 멍하니 맥주 한잔 하기 진짜 좋았어.”

  “그제~ 날 좋은 날엔 여의도도 보이고, 성산대교 옆에 그 분수대 물 쏘는 것도 보였다 아이가. 베란다에 빨래 널면 빠싹 마르고. 오뭬. 추억 돋네. 확 가서 사뿌까?”

  “나원, 아 그래서 요즘 뭐 하냐고~?”

  “안 한다. 아이 몬 한다. 시장이 이래가. 그냥 실실 보고 다니고 있재. 글고보니 니 부산 울 집엔 한 번도 안왔네에. 광안리에서만 보고”


  “형 어디 산다 했지?”

  “내? 지그음? 부산시민회관 옆에 살재. 회사에 걸어 다니는 거 좋다. 한 6년 전에 그리로 이사했재. '대연8구역'이라고 조합설립 전에 드갔는데, 작년인가 사시 신청했다. 언제고, 내 처음 부산 내려가자마자, 시민회관 옆에 집 구하다가, 이태원 뷰가 느껴지는 빌라, 아이재. 거도 아파트긴 했다. 16세대짜리 아파트. “록원월드타워”라고. 그기가 무신 아파트고! 고층 빌라재. 무튼, 거 사부릈다. 베란다에서 고 앞에 '천제산' 이라고 언덕 같은 산하나 있거든. 그거 보면서 맥주 한잔 하믄 가끔 이태원 생각도 나고 그랬다.”


  주택은 사근동 하숙집 이후, 보증금 300에 월세 30부터 1000에 65까지 월세만 전전하다, 취직을 하고 나서 부산에 집을 샀다. 1년마다 월세를 올려줘야 할 걱정을 하지 않을 자유와, 매번 "다 큰 사내자식이 집 한 채 없다" 고 쓴소릴 하던 아버지에게 떳떳하고 싶었다. 대단지 아파트는 아니더라도, 빌라라도, 자신 명의의 집을 가지고 싶었다. 그렇게 월세보증금과 대출, 통장을 탈탈 털어 8천만 원짜리 26평 아파트를 샀다.


  “시민회관 가깝고, 뷰도 조코, 대출받아 살 수 있는 게 딱 그기였는데, 계약할 때 보니 뭐 재개발 구역이라 카데. 조합설립 돼따고 막 이것저것 연락 오니까, 암꺼나 사인할 수는 없고, 공부하게 되더라고. 그르다 그기 사업시행인가 날때 쯤에 3억 5천인가에 팔고 지금 사는 재개발 구역으로 이사했다.”

  “이 사진 함 봐라. 재작년인가, 철거한다 해서 내 살던 집 함 보러 갔었다 아이가. 요요 왼쪽에 붉은거.근데, 요놈 가지고 있어야 했다. 이기 이번 달에 분양 할낀데, 대연 디아이엘이라고, 4500세대 정도 될껄? 되고나믄 8억 넘을낀데... 뭐, 우야겠노! 저거 매도하고, 지금 사는 '대연 8구역'으로 옮겼는데, 여근 뭐 시공사 때문에 말 많다. 포스코가 소송당하고...”


  “와 그럼, 2억 7천 번 거네. 지금 집은 얼만데? 그럼 남은 걸로 또 딴 데 투자했어? 어디 어디 했어?”

  “마! 세무조사 나왔나? 대따!”

  “아니... 그게 아니라, 그냥 궁금하니까 그렇지. 부린이한테 좀 잘해주면 어디가 덧나냐?”

  “니. 내 얘기한 거, 조합설립이니, 사업시행인가니, 이란거 한 개도 몬 알아들었재?”

  “어...”


  “내, 알아듣지도 몬하는 놈한테  뭔 다꼬 니한테 이리 주저리주저리 씨부리쌌노? 부동산 공부해서 쫌 아는 줄 알았더니 한 개도 모르네! 연태가아, 함 받아적어봐라이~”

  주택이 형이 읽어야할 재개발 책들을 하나하나 설명해준다. 

  ‘우리 형이 이렇게 똑똑하고 체계적인 사람이었나?’ 공부도 안 하고 날날이에 놈팽이 한량 같은 형이 ‘재개발천재’로 다시 보이는 순간이었다.

  “몇 시 차고”

  “8시 29분. 한 한 시간 반정도 남았네. 형은?

  “이 시간에 부산 내려가는 건 많다. 역가서 기차표 사도 됀다. 2차 가긴 내도 쫌 그렇고, 나가재이. 바람 좀 쐬자. 니 대전역함 돌아봐야재. 그래야 제수씨한테 안 혼난다 아이가.”




  대전천을 건너 중앙로역 쪽으로 향한다. 골목으로 들어가 <성심당>으로 향한다. ‘튀김소보로’와 ‘판타롱부추빵’을 한 박스씩 산다. 성심당에서 나와 중앙로역 네거리로 향한다. ‘재개발 천재’와 본격적인 재개발 임장이다. 

  “연태가, 니, 2종, 3종, 상업지역, 준주거, 이런 건 알재? 여근 다 상업지역이다. 저그 길 건너가 ‘선화1구역’, 여기가 ‘은행1구역’. 둘 다 상업지역이니께 아파트 하고 오피스텔 들어간다. 선화는 한 40층인가? 근데 여그 은행1구역은 60층까지 올라간다. 롯데캐슬로. 지금은 반 슬럼화 돼찌만 이게 나중에 60층짜리 포함해서 3천 세대, 10개 동이 올라간다 카이. 상상이 되나? 이른 걸 상상할 줄 알아야 한다.”

  연택이 주변을 돌아보며 상상도 안 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다. 주택은 부동산 창문에 붙은 A4 매물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다.

  “워매... 여도 마이 올랐네.  평당 2500이다. 쌩돈으로 6억은 드가겠네.”

  “형 여기, ‘은행동 코오롱 하늘채 지주택...’ 우리 성이 지씨였으면 형은 이름이 ‘지주택’이네!”

  “임마가! 뭔소리고! 니 내이름 모르나? 주인 주(主)에 가릴 택(擇)! 내는 내 인생 알아서 잘 택하며 살아간대이. 우찌돼뜬 지주택은 쳐다도 보지 마라. 혹시나 해서 하는 얘기다 알겠나? 대전역 너머로 가보제이.”


  연택은 한 손에 <성심당> 쇼핑백을 들고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있는 은행동 골목을 지나 대전역광장으로 향한다. 철도공사의 고층빌딩 두동이 우뚝 서있다. 비로소 아까 은행1구역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껴진다.

  대전역을 관통해 5층짜리 철도아파트 쪽으로 향해 ‘중앙1구역’을 걷는다.

  “니 역세권 개발이라고 들어봤재? KTX나 SRT 서는 큰 역에 뭐 이것저것 들어오는 거. 수서역, 오송역, 동대구역, 광주송정역처럼 여그도 마찬가지다. 여근 동대구역처럼 변할끼다. 상상이 되나?”

  ‘상상.’ 미래의 그림. 늘 명확한 정답만 찾던 연택에겐 쉽지 않은 일처럼 다가왔다.

  “역 근처는 한화에서 개발할끼다. '촉진구역' 이그든. 이 '촉진'이 붙음 무조껀 된다. 글고보니 대전은 역시 한화네. 근데, 니 아직도 야구는 "한화이글스"가? 내는 요새 "롯데자이언츠"가 느므 잘해서 좋다카이. 아 사직함 가야 하는데... 한화랑 롯데랑 할 때 함 사직온나~!”

  “질게 뻔한데 뭣하러 사직까지 야구 보러 가냐?”

  “아니 그기 말고, 내 요즘 보고 있는 게 있는데, 니 진짜로, 부산함 안 올래? 수영구 쪽에 초기 재개발들이 오래 걸리지만 1억 미만으로 아직 할만하대이. 내 함 제대로 임장 시켜주께! 제수씨랑 회 무러 함 온나!”

  “진짜? 1억 미만으로? 오오! 집에 가서 일정 잡아볼게~!”

  “오메, 벌써 8시 15분이다. 니 가야게따. 올만에 동생이 만나가 내 시간 가는 줄도 모르다카이.”




  수서로 향하는 SRT362 편의 오른쪽 창가. 잠시 둘러본 ‘중앙1구역’과 ‘삼성4구역’이 보인다. 주택이형이 ‘은행1구역’에서 했던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연택아, 니 꿈은 뭐고? 내는 말이다 스타벅스 건물주가 꿈이다. 글타고 이런데, 막 상업지역에 몇십억짜리 건물 살 수는 없고, 왜 디티있다 아이가. 드라이브쓰루우~, 그런데는 땅 잘 골라가, 스타벅스랑 자알 협의해 가, 스벅 디티 전용으로 건물 짔고 나서, 스벅한테 임대줌 된다. 니 가끔 운전하다 보믄, 주변에 암 껏도 없는데, 디티만 덜렁 있는 거 본 적 있재? 그런 게 다 그런기다. 니 내 요즘 뭐 하냐고 물었재? 그래서 내는 기장 쪽에 요즘 땅 보러 다니고 있다 안카나! 스벅 건물주 함 할라코!!!”


  연택의 잃어버린 꿈.

  노란색 빛바랜 대전 엑스포 꿈돌이.

  연택은 주택의 꿈이 자신의 꿈이 되었으면 했다.

이전 07화 엑스포 꿈돌이를 찾아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