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3개월 만에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운동있는 일상] 달리기 #1. 먹기 위해 달립니다만.

by 우제

무엇이 나를 다시 뛰게 만들었을까?

자기 계발서의 제목 같기도 하지만, 이유는 단 하나였다. 단지 배가 너무 뽈록해졌기 때문이다.

650A5E48-1951-4875-9980-DE3146968110_1_201_a.jpeg 어떻게 나이키앱은 10년전 내 데이터를 가지고 있지? 반가우면서도 두려웠다.

작년 가을, 갑자기 찾아온 미드라이프 크라이시스. 명치 아래가 부풀어 오르고, 체력이 떨어지는 걸 느꼈다. 건강검진에 추가로 50만 원을 더 써서 별의별 검사를 다 해봤다. 위내시경, 상복부 초음파, 심지어 뇌 MRI까지. 떨리는 마음으로 검사지를 받아봤는데, 모든 게 정상이었다. 배가 뽈록해진 건, 간이 부어서도, 위가 부어서도가 아니라 그냥 많이 먹어서였다. 50대 아저씨들의 올챙이 배가 어느 순간 내게로 왔다.


회사에서 업무가 바뀌면서 저녁약속이 잦아졌다. 나의 사랑 맥주는 그렇게 하염없이 진수성찬과 함께 들어갔다. 그간 맥주를 그렇게 마시면서도, 살이 찌지 않았는데, 그래서 남들한텐 '맥주 다이어트'라고 까지 얘기했었었는데.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내 배를 귀엽게만 보던 그분의 알고리즘에 어쩌다 '러닝'이 걸렸는지, 평생 달려보지도 않았던 사람이 달리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터,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커플템으로 러닝화가 집으로 왔다.

8E45E1B2-92FE-4343-91B9-E92A562FEDBD_1_201_a.heic 나이키 페가수스41 프리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고 오래 지속된 라인. 1983년대 나왔으니 40년이 넘었다.

사실 난 10년 차 크로스핏터다. 운동 좀 한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말한다. 10년 전 무거운 몸을 이끌고 30km 넘게 달리다, 허리 디스크가 나가고 말았다. 그 이후로 마땅한 운동을 찾다가 코어를 다지기 위해 크로스핏을 시작했다. 의사들은 허리에 제일 안 좋은 운동이라 하지만, 최근 5년은 허리 디스크 걱정 없이 보내는 중이다. 나는 햇수만 10년이 넘었지, 토할 때까지 버피를 하고 바벨을 들어 올리는 진정한 크로스피터는 아니다. 10년간 나의 스트릭트 풀업의 기록은 단 1개이다. 그 이상은 하질 못했다.


185kg에 90kg. 근육형 과체중이라고 우기고 싶지만, 그냥 과체중이다. 이젠 복부비만까지 추가되었다. 그럼에도 크로스핏은 숨이 찰 때까지 헥헥 대며 무언가를, 억지로인 듯 강요인 듯 시간에 쫓겨가며 심박수를 올리는 행위 자체를 즐겼던 것 같다. 무게를 늘리는 것보다, 나를 극한으로 몰아넣는 것을 좋아하나 보다. 최근에도 나의 심박수는 190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보통 최대심박수는 220에서 나이를 뺀 값으로 계산하는데, 20 bpm은 넘어선 값이다. 작년부터 좀 걱정되기도 하여, 혈압약으로 마음의 안정만 찾았다.

그런데 늘 하던 바벨의 무게도 점점 줄어들고, WOD도 한두 라운드 씩은 쉬게 되었다. 코치도 경로우대인양, 내가 헥헥대고 있으면 그냥 지나간다. "다시 잡아~! 3,2,1"라고 하면 그렇게 했었을 텐데. 반말로 못해서일까? 결국은 200개 하던 싯업도 100개도 못하게 되었다. 뽈록배가 접히질 않아서 더 힘들었나 보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5C4C5207-AE43-4C88-AE2C-2F4F7C05169B_1_201_a.jpeg 크로스핏 박스. 회색옷입고 로프클라이임을 하고 있는게 나라니.

'다시 달려야겠다' 마음먹었다.

다시 달리기로 한건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때문도 아니었고, 장동선 박사가 유튜브에서 얘기하는 신경성장인자를 키우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기안 84의 뉴욕마라톤 때문은 더더욱 아니었고.


2025년 1월 1일 새 러닝화를 신고 달렸다. 얼마나 좋은가. 신년 달리기라니. 그렇게 달린 지 한 달째. 오늘까지 69.5Km를 달렸다. 그래, 난 오늘도 먹기 위해 달린다.


DFAE1D7E-041B-4F6D-BCAD-F3FE9585CC0F_1_201_a.jpeg 그래도 1월1일 보단 많이 빨라졌네. 잘 먹어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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