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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제 Feb 14. 2023

내가 살던 곳은 압구정동, 주소는 신사동

ep. #1 [프롤로그] 부자가 되고 싶어

“내가 사는 압구정동 주소는 신사동 653-1번지”


2000년, 그 유명한 ‘빵순이~ 빵순이~’의 “Run To You”가 들어있던 DJ DOC의 5집 앨범 <The Life… DOC Blues> 중, 11번째 노래 “Someday”에 나오는 가사 중 하나다. 그 빠른 랩 속에 이 가사가 내게 꽂혔다. 나도 그땐 압구정동에 살고 있었으니.


“잘나갔던 시절. 잘나가던 그때가 좋았지.”

“One for the money Two for the money 뭐니뭐니 해도 money 돈이 최고지”


나는 지금 서울 어딘가에 내집에 살면서 나의 첫 번째 브런치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살아왔던 곳과 다르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이라는 것은 나에게 ‘홈 스위트홈’이자, 투자의 대상이기도 하고, 얼마가 될지는 모르지만 머무는 곳이고, 아침에 힘들게 출근을 해야 하는 곳이며, 퇴근 후 편안한 휴식을 때론 가끔 주는 곳이기도 하다.

거의 모든 국민을 부동산 관심 투자자로 만들었던 지난 상승장에서, 나 또한 투자자였고, 영끌했으며, 2023년 2월의 지금, 대한민국 부동산 하락장의 한 복판에 서있다. 


사실 나는 부동산투자자라 하기에는 조금 민망한 수준이다. 5천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수도권도, 광역시도 아닌, 지방 소도시아파트 몇 채의 소액투자가 전부니까. 아파트가 열 채 넘게 있으며, 임대수입이 따박따박 들어오는, 그런 '찐' 투자자들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서울의 아파트 또는 재개발 등의 투자처는 나에게 언감생심이었다. 범접할 수 없는 클래스. 뭘 하려 해도 기본적으로 최소 몇 억 이상은 투자금으로 들어가니 말이다.

그래도 나는 부동산투자자다.


지금이 부동산 공부하기 가장 좋은시기라고 한다. 추격매수 할 일도 없고, 할 수도 없으며, 내가 지난 상승장에서 봐 왔던 대장들이 얼마나 빠졌는지, 또 어떤 곳은 덜 빠지는지, 심지어 이런 상황에 어떤 곳은 또 오르고 있는지를, 잘 살펴볼 수 있는 그런 시기. 그리고 입지를 공부하는 시기.

내일모레 50이 되는 이 순간에, 문득 내가 살았던 곳을 하나하나 다시 찾아가 보고 싶어졌다. 이왕 공부할 거면 말이다.


4년 전 부동산 공부를 시작하고, 임장으로 내가 살았던 곳들을 우연히, 그리고 계획적으로 한 두 곳 씩, 가 보게 될 때면, 다른 곳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과 나의 시간들이, 마르셀 푸르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들렌처럼, 그때의 우리 집 동네의 특유의 냄새와 함께, 느껴지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반면, 때론 내가 여기 살았나 싶을 정도로 이상하게 기억이 하나도 안 나고 낯설게 느껴지는 곳이 있다. 임장을 가기 전 아무리 생각해 봐도 생각이 나지 않는 그런 곳들이 있다. 임장을 다니다 보니, 내가 적어도 1년 이상은 살았던 곳이었음에도 집을 찾아가기 어려운 경험을 해보기도 했다. 그곳의 우리‘집’이었을까?


내가 살아왔던, 주민등록초본에 기록되어 있는 우리 집들을 살펴본다. 주소가 바뀌고, 세대주가 바뀌고 또 바뀌었던 우리 가족의 노마드 히스토리가 신선하게 다가온다. 대출 때문이었을까? 이사를 다닌 것 외에도 부모님께서 고생하셨던 흔적들이 파란 초본엔 고스란히 남아있다.


내가 살거나 살았던 동네들, 지금 내 초본에 프린트되어있는 곳들을 가나다 순으로 나열해 본다.

강남구 압구정동, 강북구 미아동, 남양주시 평내동, 남양주시 화도읍, 노원구 월계동,
성동구 옥수동, 성동구 응봉동, 송파구 문정동, 송파구 석촌동, 영등포구 신길동, 용산구 이태원동.


부모님 집이었던 곳도, 부모님께서 나와 전세살 던 곳도, 내가 월세살 던 곳도, 내 집인 곳도, 내가 전세 주고 나온 곳등, 다양한 집을 '사는' 방식이 주민등록 초본의 주소 너머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나 혼자 전세를 살던 곳은 없었네. 누구에겐 많이 돌아다닌 것처럼, 또 어떤 누구에겐 ‘저 정도면 수도권 내에서만, 옮겨다녔네'로 보일 수 있겠다.


부동산의 ‘입지’의 관점에서 보면, '어떻게 옮겨 다녔으면 가장 이상적이었을까?'라는 아주 자본주의적이고 상투적인 질문도 떠오른다. 지금 쯤 압구정동에 살고 있으면 아주 좋겠지만, 앞서 DJ DOC의 노래 가사를 빌어 말했듯이, 내가 ‘살던' 곳은 압구정동이다. 갑자기, MZ세대들은 ‘디제이 독’으로 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동산 공부를 하면서, 어느 부동산 강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기는 강남에 자랐으면서, 왜 자식은 강북에서 키우려고 해?”

아직 없는 내 자식을 이곳에서 키울 생각에, 잠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부자가 되고 싶었다. 부모님 덕에 잠깐 부자로 살았었지만, 나 자신 스스로 부자인 적은 없었다. 막연하게 ‘부자가 되고 싶어’라는 생각만 가지고 살았을 뿐. 그래서 그렇게 Zion. T의 “나쁜놈들”을 흥얼거렸을지도.


부자가 되고 싶어.

부자가 되고 싶어.

부자가 되고 싶어.

부자가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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