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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

크리스 마틴이 없는 세계

by 차우진

맑고 화창한 아침이었다. 언론에서는 수 년 만의 현상이라며 대대적으로 날씨 기사를 실었다. 사람들은 놀란 표정으로 거리에서 사진을 찍었다. SNS에서는 수시로 맑은 하늘의 사진이 올라왔다.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러시아에서, 미국에서, 유럽에서, 남아프리카에서 맑은 하늘의 사진이 업데이트되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가디언 지는 오랜 경력의 내셔널지오그래피 사진작가가 찍은 런던의 하늘 사진을 발빠르게 보도했다. 그리고 아래에는 이런 문구.


Amazing BLUE Sky! since 2019...

태평양에서 ‘쓰나미 스트림’이 발생한 건 2019년 봄이었다. 태평양 남부, 솔로몬 제도 인근의 산타쿠르즈 섬에서 발생한 첫 번째 쓰나미가 일본의 동쪽을 강타했다. 한국은 다행히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두 번째 쓰나미가 몰려왔다. 그때는 한반도의 동해안이 약간의 피해를 입었다. 세 번째는 두 번째 쓰나미로부터 거의 한 달이 지난 후에 왔다. 인도양이었다. 이전보다 몇 배나 규모가 컸다. 덕분에 말레이시아의 지도가 바뀌었다. 제주도는 절반 가까이 사라졌다. 남해안의 일부도 물에 잠겼다. 한반도 뿐 아니라 세계 곳곳이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그러나 슬퍼할 시간도 없었다.


6개월도 안되어 중국과 러시아, 일본의 화산이 차례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한반도가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건 백두산의 분출 이후였다. 과학자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20년이나 빨랐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규모가 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백두산 주변은 죽음의 땅으로 변했다. 재앙은 그 뒤에 왔다. 화산재와 뒤섞인 황사가 대량으로 남하했다. 예상컨대 북한은 상태가 심각했지만 예상대로 피해 규모는 외부에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한강에서는 죽은 물고기 떼가 떠올랐다. 그 중에는 퉁퉁 불은 신원미상의 시신들도 있었다. 여름이 될 때까지 최악의 상황은 이어졌고, 그 다음 5년이 지나도록 나아지지 않았다. 2019년은 그 모든 일이 시작된 해였다. 그리고 그 해 늦가을, 나는 제임스를 만났다.


제임스는 런던에서 기상학을 공부하던 학생이었다. 할머니가 한국인이었지만 아시안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외모의 백인 소년이었다. 물론 한국과 아시아 문화에 대한 관심과 조예는 깊었다. 우리는 경기도의 한 도시에서 열린 록 페스티벌의 음악 컨퍼런스에서 만났다. 그때 나는 반강제로 교수님을 따라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구식의 동시 통역기가 신기했지만 발표 내용이 재미있거나 흥미롭진 않았다. 천재지변 이후의 음악 비즈니스, 동아시아 음악 산업의 몰락과 아프리카의 부흥, 인류 역사의 암흑기에 열리는 음악 페스티벌의 의미, 과학적 기상 관측과 도시 브랜드, 인공지능 시대의 문화 테크놀로지 등에 대한 발제는 어렵거나 따분했다.


친구들과 나는 그저 어떻게 하면 저 지루한 문화인류학 담당 교수의 빽으로 록 페스티벌의 공짜 티켓을 얻을 수 있을까에 대해서만 열중했다. 거기서 제임스를 만났다. 금발의 백인 청년이 마침 하품을 하고 있던 내게 한국말로 “재미없죠?”라고 물었을 때, 정말 놀랐다. 쏟을 뻔한 커피를 고쳐 들며 “네?”라고 물었더니, 그 옆에는 그 지루한 담당 교수가 나란히 서 있었다. “친구의 아들이야. 혼자 왔으니 잘 안내해줘.”라고 말하며 그는 페스티벌 티켓 두 장을 손에 쥐어줬다. 3일 관람권이었다.


제임스는 딱히 재미있는 남자는 아니었지만 친절하고 상냥했다. 그가 하는 말의 대부분은 기상이변에 대한 얘기였지만 음악에 대한 얘기도 곧잘 해줬다. 런던의 작은 클럽들과 맨체스터의 록 페스티벌에 대한 얘기들.


“콜드플레이의 마지막 공연도 봤겠네?”

“그럼, O2 아레나 공연은 맨 앞에서 봤는걸.”

“응.... 나는 크리스 마틴이 그렇게 되어서 너무 슬퍼.”

“그러게, 휴가지에 쓰나미가 덮칠 줄 누가 알았겠어...”


제임스는 페스티벌이 끝난 후에도 몇 주 더 학교에 머무르며 논문의 자료를 정리했다. 어쩌다가 제임스의 전담 가이드가 되다시피 한 나는 방학 중인데도 학교에 나가 담당 교수와 제임스의 서류 작업을 돕고 있었다. 동아시아의 기후변화를 인류학적 관점으로 서술하는 게 제임스의 연구 주제였다. “그리니치에 가면, 거기에 자오선이 지나는데 공식적으로 지구의 동서를 나누는 줄이 그어져 있거든. 거기에 서면 그리니치 거리와 템즈강이 보여. 나중에 네가 런던에 오면 거기에 가자. 시내에서 15분 정도면 갈 수 있어. 주변엔 아무 것도 없지만 지구를 절반으로 나누는 금을 밟을 수 있는 게 흔한 경험은 아니지. 하하.” 조잘조잘 한국말을 쏟아내는 제임스를 보면서 나는 문득 그의 금발을 만지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제임스가 돌아가기 전날, 우리는 도서관에서 첫 키스를 했다.


그가 런던으로 돌아간 뒤, 우리는 수시로 이메일을 주고받고, 페이스타임으로 하루에 몇 번이나 통화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8시간의 시차를 맞추기 위해 제임스가 새벽까지 깨어있는 게 미안했지만 그래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1년 동안 제임스는 한국에 두 번 왔고 나는 런던에 한 번 갔다. 그리니치의 자오선은 시시했다. 하늘은 잿빛이었고 템즈 강은 너무 탁했다. 그 속에서 제임스의 금발은 은은하게 아름다웠다.


“파란 하늘이라면 정말 좋겠네.”

“몽골은 하늘이 파랗대.”

“정말?”

“응, 그래서... 거기로 갈 것 같아. 아직 위험한 지역이지만 거기라면 이 기상이변을 바꿀 만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것 같거든.”

“몽골이라니, 런던보다 더 멀게 느껴지네.”

“일이 끝나면 서울로 갈게. 그럼 되잖아?”

“...응.”

“꼭 파란 하늘을 찍어서 갈게.”

“...응.”

“그리고 하늘이 다시 맑아지면 함께 살자.”

“...응?”

“교수님이 추천서를 써줬어. 몽골에 다녀온 뒤엔 서울에서 계속 연구할 생각이야. 그때는 매일 함께 있을 수 있어. 어때?”

“...어, 그래... 그렇구나, 그럴 수 있겠네. 아니, 일단, 거긴 너무 멀지만.”

“좋은 거야? 싫은 거야?”

“어, 그래, 좋아. 정말로. 그러니까 무사히 돌아와야 해, 제임스. 안 그러면 혼내줄테니까.”


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았다. 그때 더 분명하게 답했어야 했다. 망설이지 말았어야 했다. 그가 떠나기 전에 확신을 줬어야 했다. 예상할 수 있는, 그러나 그가 잘 몰랐을 어려움에 대해서도 분명히 말을 했어야 했다. 서울에서 사랑하는 남자 둘이 함께 사는 건 너무 힘든 일이라고. 그럼에도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사랑한다고. 우리는 늘 함께 있을 거라고. 그랬다면 제임스는 몽골에서 조금 덜 무서웠을지 모른다. 원정대의 연락이 끊기고 15명이 모두 행방불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존재를 매일같이 깨달으며 절망했다. 그렇게 수 년 동안, 그 그리움 속에서 나는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마침내 하늘이 맑아졌다. 제임스에게 받지 못한 선물을 이제야 받은 느낌이었다. 너와 함께 보고 싶었던 하늘인데, 제임스. 내가 너에게 선물하고 싶던 하늘인데, 제임스. 분명히 나보다 더 기뻐했을 텐데. 이 선물을 줄 수 없어서 나는 화가 나. 너무 너무 화가 나서 속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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