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운 좋은 J씨

정말로, 운이 좋은 2020년의 아저씨

by 차우진

지하철 1호선을 탄 J씨는 자리에 앉자마자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옆자리의 아줌마가 커다란 엉덩이를 비집었지만 J씨는 무뚝뚝하게 그녀를 무시했다. 9월 말이었지만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지하철에 탄 사람들 대부분은 초겨울의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요즘엔 가을이 없나봐. 이게 뭐야, 너무 춥잖아. 젊은 여자가 또래의 여자 친구에게 말했다. 아아, 정말로 이민가고 싶다니깐. 친구가 말했다. 아줌마의 엉덩이는 계속 J씨를 밀어내고 있었다. 하여간, J씨는 생각했다. 늙고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들은 제발 좀 다 없어져버려라, 진짜.


하지만 J씨의 엉덩이는 아줌마보다 컸다. 자취를 시작한 대학시절부터 식생활이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에 이십대 후반을 넘기며 찾아온 비만은 그대로 J씨에게 눌러앉았다. 세 자리 수의 몸무게를 보유한 J씨는 매일같이 1호선 전철을 타고 인천 변두리 작은 빌라에서 강남 대치동에 있는 영어 학원까지 출퇴근을 한다. 인천 빌라는 그의 부모님이 전력을 다해 마련해준 J씨의 결혼자금이었다. 하지만 J씨는 선 자리마다 퇴짜를 맞았다. 몸무게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그는 그렇게 믿었다. 인천 변두리에도 곧 재개발 바람이 불어 닥칠 거라고 호언장담했던 부동산 업자는 J씨가 이사하고 몇 달 뒤 사라졌다. 그 뒤로 집값은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불경기가 부동산 업자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그는 그렇게 믿었다.


그래도 J씨는 운이 좋았다. 몇 년 전 국제학교가 개업하며(사람들은 개교가 아니라 개업이라고 불렀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어 학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그 덕분에 J씨는 수월하게 취업에 성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은 넘쳐났지만 영어 강사는 모자랐고, 좋은 영어강사는 더 모자란 상황에서 J씨는 900점대의 TEPS 점수를 가지고 있었다. 학원장은 어쨌든 그게 좋은 영어 강사의 기본 조건이라고 말했다. 덕분에 지방대학교 인문학과를 졸업한 J씨는 강남 한 복판에 있는 직장을 구할 수 있었다. 그해 J씨의 모교 취업률은 5%였다. 졸업생 100명 중 5명만 구원받는 세상이었다. 그러니까, J씨는 생각했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지.


J씨는 휴대폰으로 전송되는 뉴스를 건성으로 흘려본다. 2020년 9월 25일. 주가는 또 떨어졌다. 2008년에 이어 2013년 초에도, 2020년에도 경제 위기다. 2000년대 이후로 지속된 불황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경제 지수는 바닥을 쳤다. 마침 정권도 바뀌었지만 그들이라고 별 뾰족한 수가 있을 리 만무했다. 결국 여러 회사들이 도산했는데 그 중에는 지난 정부에서 재차 밀어붙였던 청정바다에너지 사업에 참여한 기업들도 있었다. J씨는 중단된 청정바다에너지 사업으로 인천 앞바다에 방치된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나오는 뉴스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방치된 구조물들이 생태계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허물어진 저수지의 뚝 앞에 선 리포터가 딱딱한 어투로 말했다. 정부도, 은행도, 컨설턴트도 도저히 믿지 못할 세상이었다.


그래도 J씨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주가가 폭락하기 몇 달 전에 손해를 감수하고 모든 주식을 팔아치웠기 때문이다. 새삼 자신의 결단을 뿌듯해하던 J씨는 손가락으로 작동하는 구형 휴대폰의 모니터를 터치해 뉴스 페이지를 닫았다. 요즘에는 동공을 트랙킹하는 인공지능 휴대폰이 대세다. 전철 승객들은 모두 눈을 감고 있거나 창 밖을 보거나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눈동자를 굴리면서 커뮤니티 메뉴를 찾아 클릭했다. 접속.


언제까지 그렇게 살래? 어머니는 가끔 그렇게 말했다. J씨도 자신이 언제까지 열 두 살짜리 강남 도련님들에게 수동태와 능동태를 외우라고 닦달해야할지 몰랐다. 하지만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 J씨는 삼십대 중반이 되었다. 금리가 올랐다. 대출금의 이자를 갚는데도 빠듯했지만 집값은 더 오를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팔고 싶어도 팔수가 없는 것이다. 판다고 해도 그 돈으론 서울에서 전세를 구하기도 힘들었다. 별 수 없이 J씨는 매일같이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들을 견디며 2시간 동안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고 있다. 그래도 나는 대치동에서 일하니까. J씨는 생각했다. 운이 좋으면 연예인들도 보고 말이지. 정말 운이 좋다니까.


“이동하면서 즐기는 모바일 커뮤니티. 환영합니다.” 휴대폰의 안내메시지가 떴다. J씨는 커뮤니티 메뉴 중에서 ‘S♡NE’이라고 쓰인 항목을 클릭했다. 팬클럽에서는 요즘 한창 소녀시대 5기의 새 멤버를 뽑는 네티즌 투표가 진행되고 있었다. 5기부터 멤버를 공개적으로 선정했다. 모두 40명의 멤버들이 있었다. J씨는 그 중 3번째 그룹의 한 멤버를 밀고 있었다. ‘S♡NE’에서 투표 현황을 확인한 J씨는 곧바로 다음카페에 로그인해 ‘화수은화’를 찾았다. 2030 친목 게시판에서는 J씨 또래의 팬들이 실시간으로 게시글을 올리고 있었다. ‘버스타고 퇴근 중에 우리 소시 동생들 응원하러 들렀어요!!!!’라거나 ‘저 소개팅 또 나가리... ㅠㅠ’같은 글들이 올라와 있었다. 게시글을 쭉 훑어보던 J씨는 ‘님들, 아무리 5기가 나와도 우리 1기 태연이 만한 애가 없지 않슴매?’이라는 게시글에 덧글을 달았다. ‘1기 태연 하악하악’.


J씨는 2030친목 게시판을 좋아했다. 유행이 지난 인터넷 용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곳에서 J씨는 외롭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있었다. 그건 다른 사람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J씨는 그렇게 믿었다. ‘님들 중 답장 받은 분??!!’ J씨는 휴대폰의 문자키를 하나씩 눌러 게시글을 작성했다. 몇 주 전 4기 태연에게 사연을 남긴 J씨는 아직 답장을 받지 못했다. 학습형 인공지능으로 재구성된 대화형 아이돌이었다. 웬일인지 의기소침해진 J씨는 눈을 껌벅이며 모바일 포털의 소시 채널에 접속해 새로 올라온 짤이 없나 살폈다. ‘추억의 1기, 서현 짤 방출’ 게시글을 열자 고화질 이미지를 다운로드하는데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경고 팝업이 떴다. J씨는 어쩔 수 없이 휴대폰을 껐다가 다시 켜야 했다. 아이씨, 서현이... J씨는 저도 모르게 입맛을 쩝쩝 다시다가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운이 좋은걸. J씨는 생각했다.


다음 역은 동암, 동암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J씨는 그제야 창밖을 봤다. 9월의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휙휙, 잠깐의 틈도 주지 않고 사라지는 가로등들은 무슨 유성들의 행렬처럼 보였다. 반점 같은 불빛들이 어딘가로 맹렬하게 질주하고 있었다. 그게 어딘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 동안 전철은 멈췄고 문이 열렸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렸고 다시 문이 닫혔고 전철은 출발했다. 3분마다 반복되는 일이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이었다. 수 십 년 동안 되풀이된 일이었다. 문이 열릴 때마다 계절에 맞지 않게 찬바람이 들이닥쳤고 사람들은 옷깃을 세웠다. 다들 먹고 살기 힘들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모두들 밀린 세금과 바짝 오른 은행 금리와 도산한 회사와 반토막이 나버린 주식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다들 애들 학비와 병원비와 급식비에 대해, 자식들의 결혼자금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모두들 결혼을 약속한 애인의 대출금과 아내가 아침에 내민 이혼서류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J씨만이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유서 깊은 걸 그룹의 제 5기 멤버의 향방이 그의 손에 달려 있었다. 그러니까, J씨는 생각했다. 나는...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문자 메시지였다. 거기에는 ‘오빠, 태연이에요. 응원해주시니까 태연이는 더 열심히 할게요!’라는 메시지가 있었다. 지하철 1호선은 맹렬하게 달리고 있었다. 운 좋은 J씨는 번득이는 유성들 사이를 지나갔다. 그러니까 나는, J씨가 생각했다, 나는 운이 좋아. 그는 전력을 다해 달려가고 있었다. 도대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쁘지 않은 곳으로, 고금리와 학자금대출과 주가폭락을 피해 낡고 허름한 인천 변두리의 빌라로, 그러니까 서현과 태연의 짤로 가득한 그 어떤 아득하고 아늑한 곳을 향해서 J씨는 전력질주하고 있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파란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