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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코끼리

어느날 갑자기 행운이 찾아왔다

by 차우진

그것은 단지 조그만 조각상일 뿐이었다. 나무로 깎은 코끼리 조각상은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였다. 매끄럽고 반질반질한 표면, 특히 코끼리의 등은 이 조그만 물건이 얼마나 오랫동안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옮겨 다녔는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은혜는 이 코끼리 조각상을 몇 개월 전, 벼룩시장이 열리던 시내의 놀이터에서 주웠다. 주인을 찾아봤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조각상은 작고 귀여웠다.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지만 남 주기에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그걸 가방에 넣어 가지고 집으로 왔다. 어쩐 일인지 뿌듯했다. 모든 일이 잘 될 것 같다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녀는 반질반질한 코끼리의 등을 손바닥으로 쓱쓱, 쓰다듬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은혜는 얼마 뒤 그토록 원하던 회사로 이직할 수 있었다. 채용 기준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곳이었지만 그녀가 입사하는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강남에서 가장 높은 빌딩의 몇 개 층을 몽땅 쓰는 회사였다. 그녀는 더 높은 연봉과 더 좋은 조건과 더 좋은 전망을 얻었다. 몇 개월 뒤, 유가가 비정상적으로 급상승했다. 비닐 납품을 하는 그녀의 아버지는 갑자기 폭등한 원유값 덕분에 그 어느 해보다 높은 수익을 낼 수 있었다. 연말이 가까워오자 졸업 후 2년 동안 취업이 안 되던 남자 친구가 갑자기 여러 회사로부터 입사 제의를 받았다. 남자친구의 실력이 변변치 않은 걸 알고 있던 그녀로서는 그저 운이 좋다는 것 외에 다른 이유를 찾지 못할 정도였다.


연말이 되자 6개월 전에 유방암 판정을 받은 그녀의 어머니가 놀랍게도 자연 치유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드물지만 아주 가끔 이런 일이 있다고, 하지만 자신은 처음 본다고 의사가 말했다. 온 식구가 기뻐서 눈물을 흘렸다. 행운은 그녀 편에 있었다. 지하철을 갈아탈 때조차도 그녀는 기다리는 법이 없었다. 심지어 온라인 고스톱에서도 패를 던지는 족족 사이버 머니를 긁어모았다. 1등은 아니었지만 연달아 3등, 4등의 복권에 당첨되어 <월간 운수대길>의 표지모델로 선정되기도 했다. 잡지에서나 보던 인테리어의 고급 아파텔을 얻어 독립도 했다. 넓은 거실 소파에 앉아 한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 좋은 집이었다. 그녀의 운은 다른 사람들의 운을 다 합친 것보다도 큰 것 같았다. 모든 일이 알아서 준비되었고 알아서 흘러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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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갑자기 찾아왔다. 평화로운 일요일 오후였다.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은혜는 낯선 남자가 거실 소파 옆에 서 있는 걸 봤다. “아, 드디어 만났네요. 오랫동안 당신을 찾고 있었습니다.” 놀라서 얼어붙은 은혜에게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차분한 목소리였다. 훤칠하게 큰 키의 남자는 몸에 딱 맞는 수트를 입고 있었다. 무척 비싸 보이는 수트였다.


“예상 밖의 일이라서 시간이 좀 걸렸지만요. 어쨌든 이제야 찾았네요.”


말을 마치고 남자는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할 순 없었지만 그리 좋은 뜻은 아닌 것 같았다. 은혜는 일단 겁이 났다. 이 남자는 도대체 누굴까. 어떻게 집으로 들어왔지? 하지만 남자는 별 일 아니라는 듯 그저 웃고 있었다. 너무 자상한 미소라서 더욱 믿을 수 없었다. “너무 놀라지 마세요. 그저 일을 제대로 하려고 찾아온 거니까요. 저희는 프로입니다. 믿으셔도, 아니 믿으셔야 할 겁니다. 수 천 년 동안 같은 일을 해왔으니까요. 여기, 몇 가지 서류에 싸인만 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남자는 소파에 다소곳하게 앉았다. “아, 물건은 잘 보관하고 계시죠? 그, 코끼리 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지난 몇 개월 동안 고객님께서는 982명의 행운을 빌려 쓰셨습니다. 그리 많은 건 아니에요. 거의 3,000만 명의 운을 끌어 쓰고 있는 분도 계셨거든요 뭐. 얼마 전까지 청와대에 사셨지만 지금은... 뭐 아무튼, 저희 VVIP고객님이십니다.”


남자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은혜는 온 몸에 경련이 일어난 것처럼 오한을 느꼈다. 하지만 그 미소를 거부할 수는 없었다. 남자는 친절하고 상냥한 미소와 함께 손을 들어 소파를 가리켰다. "앉으세요. 설명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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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계속 말씀드린 것처럼, 저희가 제공하는 서비스 구조는 매우 심플합니다. 고객님의 행운이 늘어난 만큼 다른 사람들이 좀 더 불행해지는 거죠. 그 뿐입니다. 어차피 사람들은 대부분 불행하니까 크게 신경쓰진 마세요. 그게 저희 수익모델입니다. 사실 한 사람이 쓸 수 있는 행운은 매우 제한적이거든요. 저희는 그걸 하나로 묶어서 특정 고객님께 몰아드리는 겁니다. 시작한 지 3천 년이나 된 사업이에요. 믿을 만 하실 겁니다. 히틀러도, 존 레넌도, 케네디도 저희 고객이었어요. 어쨌든 중요한 건 지금까지 고객님께서 사용하신 982명분의 행운을 일단 환급하셔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계속 고객님을 찾아다녔죠. 특수한 경우라서, 음, 기한이 다음 달이거든요. 자 여기 보시면... 일시상환과 분할상환 중 선택하실 수 있고, 담보에 대해선 부동산부터 심장이나 영혼도 가능합니다. 대부분 일시상환으로 하세요. 존도 그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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