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 GALAXY - New Summer (2013)
2013년의 싱글. 영 갤럭시라는 나름 주목받던 인디 기대주의 신곡이었다. 소포모어 징크스를 떨쳐버리듯, 이들의 새 앨범은 상당히 좋았던 기억. 그 중 "New Summer"는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만지려고 하면 정말로 만져질 것 같은 감각이 좋아서 참 많이 들었다. 그러던 중에 뮤직비디오를 찾아 본 다음에는 완전 꽂혀서 몇 번이나 보고 또 봤다. (지금도 이걸 큰 화면으로 틀어놓고 있다.)
나는, 사실 '재앙'이나 '종말', '멸망'에 대해 이상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 설명하려면 설명할 수 있지만, 그걸 또 설명하는 순간 '나의 재미'가 사라지는 느낌이라 그냥 "저는 이상하게도 지구종말이, 좀 좋아요."라고 말해버리고 만다. 아무튼, 다소 기이하지만, 그 '종말'의 이미지 중에 '어찌하려고 해도 어쩔 수가 없는, 절대적이고 압도적이면서 불가해한 상황'에 대한 애착이 있다는 건 분명하다.
이 뮤직비디오는 '재앙' 혹은 '재난'의 이미지로 점철된다. 이때, 재앙이란 무엇인가. 갑자기 불현듯 예고도 없이 들이닥쳐서는 목숨을 빼앗아버리는 상황이다. 지진이 오고 쓰나미가 오고 핵발전소가 터지는 것. 여기서 인간-그러니까 '우리' 혹은 '나'는 선택과 결정이라는 가장 인간다운 권리도 행사하지 못한 채 사라진다. 그냥 사라지는 것이다. 이것은 요컨대, 우리가 무심결에 벌레를 눌러 죽이는 것과도 같다. 그때 벌레에게 무슨 선택권이 있겠나. 그저 가만히 멈춰서 지친 날개를 쉬고 있거나, 먹이를 먹으려고 분주하게 움직이거나, 혹은 그저 어제도 그제도 엊그제에도 하던 일을 오늘도 하던 중이었을텐데. 다시 말해 인간이 벌레의 존재화된다는 것. 절대적이고 압도적인 어떤 존재에 의해서 순식간이 내장이 터지고 사지가 찢겨지고 뇌수가 박살나는 존재일 수 있다는 것. 그때 무슨 이해가 가능하겠냐는 각성. 우리는 그저 죽는다.
이 노래는 바로 그 지점에 대한 낭만적인 송가다. 종말이란, 앞서 얘기한 맥락에서 낭만적일 수밖에 없다. 불가해한 상황에서 그냥 죽어버리는 것. 그래서 이것은 그 '마지막 순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노래다. '라스트 섬머'는 그래서 작년 여름이 아니라 최후의 여름이다. 그런데, 같은 이유로 이 낭만성은 스펙터클로 환원된다. 낭만이 스펙터클로 전환되는 이유는, 그 낭만성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난데없는 죽음이란 이 시대에 블록버스터와 가장 가까운 엔터테인먼트가 되기도 한다.
나는 그래서 이 낭만적인 스펙터클이야말로 21세기를 향유하는 세대의 감수성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서양과 동양을 통틀어 지속되는 정치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우리'는 미래가 없는 세대다. 따라서 지금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지금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가 아니라 지금을 사랑하지 않고는 바로 지금을 버틸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 동시에, 이 비극적인 종말을 스펙터클과 엔터테인먼트로 바꿔치기하는 것이야말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로컬 밴드의 생존전략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 모순적인 감각이야말로 '힙스터 정서' 내지는 '밀레니얼 세대'를 설명할 만한 키워드가 아닐까.
덧붙임
- 뮤직비디오 첫 장면은 2005년의 카트리나 재해를 떠올리게 한다. 내전이 아니라 재난 지역. 미국 역사상 최악의 자연 재해였다.
- 초반에 등장하는 대도시의 먼지구름은 9.11 테러의 이미지 혹은 <어벤저스 1>을 환기시킨다. 어벤저스의 뉴욕 전쟁 역시 9.11 테러의 연장에 있겠지만, 그 둘의 연관성을 빼고 이해하는 게 필요할 것이다. 그러니까 '해석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면서 해석하기.
- 고속도로의 자동차 폭발 장면은 <매트릭스: 리로디드>에서 베껴오다시피 했다. 그야말로 엔터테인먼트를 엔터테인먼트로 재생산하는, 원본없이 복제되는 텍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