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에서 음악은 특히 중요하다
마크 밀러의 그래픽 노블 <시크릿 서비스>를 원작으로 한 영화 <킹스맨:시크릿 에이전트>는 유혈이 낭자하는 대량학살과 B급 유머를 뒤섞은 괴상한 엔터테인먼트다. 여기에는 관습과 혁신, 전통과 현대, 매스미디어와 서브컬처 같은 상반된 가치들이 ‘영국과 미국의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거대한 믹서기 안에서 맹렬하게 뒤섞인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런 쾌락의 카오스를 매끈하게 붙이는 접착제는 바로 음악이었다. 의외의 음악을 적절한 씬에 가져다 붙이며 자유자재로 갖고 노는 듯한 매튜 본의 연출 감각은 <킹스맨: 골든 서클>에서도 마찬가지로 발휘된다.
스포일러 주의!
<킹스맨:골든 서클>에서 킹스맨은 새로운 적과 새로운 위기를 맞는다. 마약 거래를 기반으로 삼은 악의 무리 골든 서클은 유기농 농산물과 로봇공학에 이르는 폭넓은 분야로 확장한 악당 미스 포피의 조직이다. 사업분야만 봐도 알겠지만, 이들은 ‘지켜야 할 가치’ 혹은 ‘윤리’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극단적 자본주의를 상징한다. 엄청난 부를 거뒀지만 그만큼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한 그녀는 마침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로 결심하고 모종의 음모를 꾸미는데, 앞으로 자신의 야심을 분명히 방해할 킹스맨을 지구 상에서 없애버리기로 결정한다. 그래서 이러저러한 사건과 테러가 벌어지고, 우여곡절 끝에 킹스맨은 미국으로 넘어가 ‘사촌’ 조직인 스테이츠맨을 만난다.
스테이츠맨은 텍사스를 기반으로 삼은 세계적인 위스키 회사지만, 실상은 런던의 유서 깊은 양복점으로 위장한 킹스맨과 마찬가지로 첨단 과학기술과 초인적인 에이전트들로 구성된 비밀조직이다. 이 두 비밀 그룹은 영국과 미국에서, 각자 자신의 전통과 가치를 계승하고 지키는 것을 과업으로 삼는다. 미스 포피의 골든 서클과는 대조적이다. <킹스맨:골든 서클>은 이렇게 대립되는 정체성을 가진 조직들이 지구의 안녕과 평화를 가운데 두고 전쟁을 벌이는 이야기다.
하지만 매튜 본은 이런 단선적인 구조에 몇 가지 트릭을 끼워 넣으며 조금 입체적인 구조로 바꾼다. 첫 번째 트릭은 1편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죽어 버린 에이전트 해리가 사실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살아있다는 설정이다. 그래서 예고편에 딱! 등장한 그의 모습은 2편에 대한 기대를 증폭시켰고, 많은 팬들이 <킹스맨:골든 서클>을 선악의 대결이 아닌 생존한 해리의 비하인드 스토리로서 기대했다. 요컨대 사실상 2편의 메인 스토리라인은 ‘갤러해드의 귀환’인 셈이다.
또 하나는 이 시리즈가 깨알같이 보여주는 20세기 대중문화에 대한 애정이다. 사실 <킹스맨> 시리즈가 그저 그런 스파이물과 다른 웰메이드 시리즈로 소비되는 차별점은 전통과 가치에 대한 유난한 애정 덕분인데(=“매너가 신사를 만든다”), 영화에서는 이것 이대중 문화의 역사에서 오리지널리티를 만들어낸 작품이나 아티스트에 대한 찬사로 반영된다.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미스 포피의 입을 통해 언급되는 조지 루카스 감독의 <청춘 낙서> 나 랜달 크레이저 감독의 뮤지컬 영화 <그리스>는영화 역사에 획을 그은 청춘영화의 마스터피스들이고, 초반에 깜짝 등장해서 끝까지 씬 스틸러처럼 인상적인 장면들을 선보이는 엘튼 존은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전설적인(게다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까지 받은) 팝스타다. 컨트리 팝의 대명사인 존 덴버의 명곡들이 영화 곳곳에 흐르는 것 역시 인상적이다.
여기에 미스 포피의 바비 인형 같은 외모와 그녀의 아지트에 배치된 다수의 빈티지 주방기구 와인 테리어 소품들, 미국식 테마파크처럼 구성된 골든 서클의 본거지, 그리고 1970년부터 47년째 열리고 있는 유서 깊은 글래스톤베리 록 페스티벌 같은 소재들이 곳곳에 등장하면서, <킹스맨> 시리즈가 사실은 20세기의 대중문화 유산을 21세 기적으로 반영한 블록버스터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이런 맥락에서 <킹스맨:골든 서클>의 음악도 흥미롭게 들린다. 영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곡은 존 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s”인데, 이 노래는 영화의 테마곡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여러 번, 심지어 캐릭터가 직접 부르면서까지 화면에 흐른다. 엘튼 존과 존 덴버라니, 표면적으로 엘튼 존은 킹스맨을 대변하는 뮤지션으로, 존 덴버는 스테이츠맨을 상징하는 음악가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 더 들여다보면 “Take Me Home, Country Roads”는 앞서 언급한, 이영화의 사실상 메인 스토리라인인 ‘갤러해드의 귀환’과 호응하는 삽입곡이다. 한쪽 눈을 잃었지만 목숨을 건진 해리의 모습과 기쁨과 걱정을 동시에 느끼는 킹스맨 멤버들의 모습 위에 이 노래를 포개면서 <킹스맨:골든 서클>이라는 유혈이 낭자한 B급 유머의 블록버스터에 뜻밖의 감상을 더한다. 덕분에 <킹스맨:골든 서클>은 입체적인 오락영화로 자리 잡는 것이다.
한편 영화에서 엘튼 존과 존 덴버의 노래는 사이좋게 각각 두 곡이 등장하는데, 엘튼 존의 노래는 “Saturday Night`s Alright ForFighting”과 “Jack Rabbit”이, 존 덴버는 “Take Me Home, Country Roads”와“Annie's Song”이 등장한다. 엘튼 존의 곡은 다이내믹한 액션 씬에 흐르고, 존 덴버의 노래는 정적이고 서정적인 장면에 등장하는 것도 소소하게 재미있는 포인트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노래는 컨트리 밴드인 보스호스의“Word Up”인데, 영화의 하이라이트 액션 장면에 흐른다. 그런데 이 노래는, 다른 곡들도 마찬가지지만, 단순히 컨트리 밴드의 컨트리 곡이 아니라서 흥미롭다. (그러니까 <킹스맨> 시리즈에 쓰인 음악이 그렇게 평면적 일리가 없다는 얘기...) 보스호스는 미국이 아닌 독일에서 결성된 밴드로, 활동 초기부터 넬리의 "Hot in Herre",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Toxic", 아웃캐스트의 "Hey Ya!" 같은 팝이나 록, 힙합 장르의 히트곡들을 컨트리 스타일로 커버하면서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영화에 삽입된 “Word Up”은 훵크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그룹 중 하나인 카메오의 명곡으로, 80년대를 대표하는 노래로도 자주 언급되는 곡이다. 원곡과 비교해서 들어봐도 흥미로울 것이다. 새삼, <킹스맨:골든 서클>은 처음부터 끝까지 20세기 대중문화에 대한 애정을 거침없이, 그러나 세련되게 드러내는 영화라는 점에 감탄하게 되는 삽입곡이다.
1986년의, 죽여주는 오리지널은 바로 이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