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운전사> OST | 단발머리, 제3한강교
<택시운전사>의 첫 장면에 조용필의 "단발머리"가 흐른다. 이 노래는 1979년에 발표된 곡으로 조용필의 80년대를 열면서 한국대중음악사에서 유일무이했던 슈퍼스타의 탄생을 알린 곡이기도 하다. 한편 1980년은 박정희의 유신독재가 끝나고, 전두환의 독재가 시작된 시기기도 했다. 군부는 군부인데 '신'군부의 통치가 시작되면서 박정희 시대와 구분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방송통폐합 조치로 대변되는 언론 탄압, 대학로와 국풍81로 대변되는 대학문화 활성화 정책, 프로야구 개막 등이 동시에 진행되었다면 중반부터는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 그리고 87년민주화투쟁과 89년 해외여행자율화 등 국제적으로 한국은 분기점을 만들기도 한다. 3저 시대로 인한 경제 호황은 한국 사회의정치문화적 변화로도 이어졌다. 이 10년은 한국에 어떤 분기점을 만든 셈이다.
단발머리 - 모던한 가요의 출발
<택시운전사>에 삽입되거나 등장한 곡은 모두 3곡이다. 조용필의 "단발머리", 혜은이의 "제3한강교", 그리고 샌드페블스의 "나 어떡해". 이 중에서 "단발머리"와 "제3한강교"가 인상적이다. 앞서 말한대로 "단발머리"는 한국 '가요'가 70년대와 차별화된 장르적 특징과 스타일을 수용하며 발전하는 분기점이기도 하다. 요컨대 '모던한 가요'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한편 "제3한강교"는 경제 중심지로서의 서울과 한국 도시화를 상징하는 곡이다. 현재 '한남대교'인 이 다리는 경부고속도로와 함께 착공된 다리로 강북과 강남을 한 번에 연결하는 첫 번째 다리였다. 박정희 시대에는 여의도가 서울의 신도심으로 경제와 정치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면, 80년대 신군부 시대에는 경부고속도로와 잠실재개발, 강남 인근 대규모 주택지 공사 등이 진행되면서 서울의 중심지가 강남으로 대체되었다. 요컨대 "제3한강교"는 바로 그 지점, 80년대를 '한강의 기적'으로 소환하는 노래다.
제 3한강교 - 강남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가요
이 두 곡과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을 겹쳐보자. 그가 우여곡절 끝에 광주 시내로 진입할 때 시가지는 엉망진창이다. 벽에는 온갖 구호가 적혀 있는데, 그때 '토마스 크레취만'이 도로를 가로질러 설치된 플랭카드를 가리키며 뭐라고 적혀 있냐고 묻는다. 반 쯤 찢어진 거기에는 새마을 로고와 함께 '희망의 80년대로'라는 식으로 적혀 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택시기사 김만섭은 이 독일인 손님에게 "아, 호프.. 호프... 아휴, 그런 게 있어, 80년대는 좀 다르다고." 이런 식으로 설명한다. 나는 이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누군가는 80년대를 조용필의 "단발머리"로 기억한다. 누군가는 혜은이의 "제3한강교"로 기억한다. 정서가 조금 다를 뿐 '변화의 시작'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또 누군가는 1980년대를 '광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 각각의 주체들은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느냐로 오랫동안 대립해왔다. 하지만 사실 한국의 현대사는 이 세 개의 정서와 기억이 동시적으로, 복합적으로 뒤섞인 시공간이다. 오히려 '광주'는 아예 지워질 뻔 했던 역사다. 그래서 <택시운전사>는 내게 80년대를 기억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단발머리"와 "제3한강교"는 그 감각을 툭툭툭 건드리는 곡이다. 감독이 의도했든 안했든, 그러하다.
한편, <택시운전사>의 음악감독은 조영욱.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한국영화 스코어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작곡가로 <택시운전사>의 스코어는 최근작인 <싱글라이더>와 비교하기 좋을 만큼 스토리보다 앞서지 않으며 감정선을 뒤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