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우진 Sep 25. 2017

정처 없는 공간에서
돌아갈 장소를 찾는 것

신나는섬 [집으로] (2017)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들. 많은 사람들이 일본 애니메이션의 특징 중 하나로 오타쿠 문화의 과한 설정을 꼽지만, 나는 이들의 스토리텔링에 관심이 많다. 지구멸망이나 외계인과의 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 놓인 10대 혹은 20대의 캐릭터들이 돌아갈 장소를 찾는 여정. 나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대체로 공유하고 있는 정서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돌아갈 장소. 여기서 ‘장소’란 마음이 머무는 곳이다. 그래서 이 단어는 물리적인 ‘공간’과는 다른 정서를 전한다. 우리에게는 모두 그런 장소가 하나 이상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마음의 고향’, ‘제 2의 고향’같은 말로 전달될 때 그 특유의 그리움과 애잔함을 사랑한다. 신나는 섬이 오랜만에 발표한 [집으로]는 그런 정서를 겨눈다.


2012년 5월, 네이버 온스테이지에 신나는 섬에 대한 글을 썼다. 그때 나는 이들에 대해 ‘현대 도시의 신나는 집시들’이라고 설명했다. 온스테이지 영상의 촬영 장소는 상수동이었다. 거기는 홍대의 번잡함과는 약간의 거리를 둔 장소로 모던한 카페와 오래된 가게들이 섞여 있는 곳이었다. 거기서 나는 이들이 도시의 어떤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 다니는 유랑극단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5년이 지나 다시 듣는 이들의 [집으로]도 마찬가지 생각을 준다. 이들은 여기서 저기로 유랑하며 연주하고 노래하고 공연을 한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사이 우리의 도시는 또 많이 변했다는 것이다. 아니, 도시가 변했다기보다 우리의 환경이 변했다고 하는 게 적절할 것 같다. 돌아보면 5년 사이에 우리는 상당히 빠른 변화의 속도에 몸을 맡기게 된 것이다.


이 속도감은 우리가 이제까지 경험한 것들과는 다른 것이다. 그래서 장소가 새삼 중요하다. 휙휙 달라지는 속도감에 피로해질 때 찾게 되는 곳이므로. 그래서 다시 ‘집으로’에 대해 생각해보자. 집이란 둘아갈 곳이다. 하루 혹은 며칠 혹은 몇 년을 돌아다니다가 ‘돌아가’ 쉬는 장소다.


그 집이 잡지에 나오는 것 마냥 번드르르하거나 우아하거나 멋드러질 필요는 없다. 어디에 어떤 형태가 되었든 ‘마음’을 놓을 곳이면 족하다. 야생동물이 자신만의 은신처에서 온 몸의 긴장을 풀고 넉다운되어 잠드는 것처럼 우리도 도시라는 야생에서 온 몸의 긴장을 풀어버릴 곳이 필요하다. 마침내 돌아갈 곳이 필요한 것이다.


신나는 섬의 [집으로]는 지금 우리에게 돌아갈 곳이 소중하다는 것, 혹은 돌아갈 곳이 필요하다는 것을 계속해서 환기한다. 반복되는 일상과 번잡한 도시에서 향유하는 약간의 여유, 골목과 광장을 돌아다니던 이야기들이 모이는 고즈넉한 밤, 인연과 감정이 교차하던 중에 새로운 이야기가 문득 태어나는 기적 같은 순간들이 떠오른다.


수록곡의 제목으로 두 번이나 등장하는 마크 트웨인은 특히 그 ‘장소를 찾아가는 여정’의 상징이다. 우리는 이 도시에서 모두 꿈꾸는 고아들처럼 매일같이 기대와 불안 속에 여행을 반복한다. 정처 없는 공간에서 돌아갈 장소를 찾아내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신나는 섬의 [집으로]는 그런 일상에, 위로가 필요한 ‘우리들’을 위한 사운드트랙이다.


https://youtu.be/BNwcaYV1g3g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너와 얘기하고 싶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