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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의 원점] 다카노 에츠코
-1992년의 기억

by 차우진

20년 만에, 헌책방에서 우연히 간절히 찾던 책을 만나는 기적같은 일.


찾는 책이 있냐고 묻는 사장님께 "저그럼 혹시, '20살의 원점'이라는 책이 있을까요? 굉장히 오래된 책인데..."라고 했더니 여기 있을 걸요? 라면서 1분 만에 찾아줌.... 이 책을 서른 무렵부터 찾았는데!! 당시 정가는 4천원(각권)인데, 두권에 1만원을 줬다. ㅎㅎㅎ


1992년, 동네 서점에서 "하권부터 읽는 책"이라는 홍보 문구를 봤다. 당시 고2였던 나는 그 말에 혹해서 이 책을 샀다. 1967년 리츠메이칸 대학에 입학 후 학생운동에 투신, 1969년 철로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한 다카노 에츠코라는 학생의 일기다.


몇 년 전에 [아드리안 모올의 비밀일기]가 크게 유행했던 터라 '일기'를 묶은 책이 낯설지 않았다. 게다가 [비밀일기]는 픽션인데 [20살의 원점]은 논픽션이었다! 거기에도 혹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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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다산북스에서 신판본이 나왔다. 자세한 건 여기에.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dasan_books&logNo=220083498154&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kr%2F




[20세의 원점]의 주인인 다카노 에츠코는 운동사적으로도, 문학적으로도 거창한 인물이 아니다. 60년대 내내 일본학생운동사의 중심에 있던 교코대학이나 도쿄대학과 달리 리츠메이칸 대학은 '메인스트림'도 아니었다. 주변적인 인물의 주변적인 이야기이고, 열여섯부터 스무살 무렵에 이르는 애매한 문체로 가득한 책이었다. 부록으로는 '1960년대 일본 학생운동사 요약정리'가 있는데, 출간일이 1992년이라는 걸 감안하면 아무래도 '헌정 이래 최초의 평화적 정권 교체'를 실현한 김영삼의 문민정부+민주화의 분위기가 작용했던 것 같다.


거의 매일 같이 일기를 쓰던, 가난하고 젊은 지역 출신의 유학생은 끊임없이 질문과 질문을 거듭한다. 아마도 이것 때문에 이 책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스무살 무렵 특유의 어떤, 과잉된 정서에 내가 공명했던 것. 또래니까 그랬다.


20년이 지나도 기억하는 장면은, 그녀가 가지고 있던 우산을 비가 그친 뒤, 동네 다리 밑에서 쓰레기와 함께 태우는 장면. 이상하게도, 그날의 일기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이 책은, 이상하게도 내게는, 당시 대유행을 시작했던 무라카미 하루키와 한묶음으로 기억된다. 전공투, 허무주의, 사소설, 일본 등의 키워드를 공유하기 때문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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