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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우진 May 06. 2021

#48 | 하고픈 일을 재정의하자 보인 것들 / 큰미미

윤여정 배우의 오스카 연기상 수상이 내내 화제에요. 한국 뿐 아니라 세계 영화사에서도 상징적인 순간이라 매우 설레요. 그래서 수상소감도 계속 돌려보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커리어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답한 내용이 기억에 남았는데요, "모든 게 한 순간에 이뤄지지 않아요. 한 걸음씩 그 커리어를 쌓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한 순간 '쾅'하고 벌어지는 그런 일은 없어요. 전 그런 걸 믿지 않아요."라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어떤 성공이 순식간에 벌어진다고 생각해요. 물론 세상이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의 성공 스토리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되요. 아니 정확히는 '나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죠. 내게도 저런 순간이 올까? 

그런데, 네네 맞아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아요. 로또 당첨마저도 꾸준히 사고 실패하고 사고 실패한 결과일 거에요. 우리가 손에 쥔 성공 혹은 성과란, 어떤 과정의 결과일 뿐이에요. 심지어 그 결과 또한 어떤 과정의 일부일 거고요. 

이렇게 생각하면 좀 막막하긴 합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 아주 골치 아픈 일들이 사실은 매우 거대한 타임라인의 매우 작은 일부라니. 그래서 필요한 건 폭발적인 성공, 세상을 놀래킬 아이디어, 압도적인 재능이 아니라 지구력인 것 같아요. 오늘은 미미시스터즈의 큰미미님이 바로 이런 얘기를 해주실 겁니다.


오늘의 첫 곡부터 듣고 시작할게요.

중성적인 목소리가 매력적인 싱어송라이터 다린의 신곡입니다. 기분좋은 포크송으로 중간에 불쑥 튀어나오는 슬라이드 기타가 상쾌해요. 그리고 곡 소개에 이 한 마디가 써 있네요. “Always be who you are!“


'반인반미'인 내게 가장 중요한 것 / 큰미미


“이제 미미시스터즈는 그만 하는 게 어떠냐? 10년이면 할 만큼 했지 않니? 아빠는 아무래도 자꾸만 그게 네 발목을 잡는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명절, 일평생 단 한 번도 딸이 하는 일에 반대한 적 없던 아빠가 조심스레 눈치를 보며 꺼낸 이야기에 저는 그만 불같이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미미시스터즈를 그만 하라니. 순간 내 존재 전부가 부정당하는 느낌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죠. 

그런데 저만 그런 것도 아니었어요. ‘너는 아무래도 음악보다 기획에 재능이 있는 것 같아. 기획만 했으면 벌써 성공했을 건데, 미미가 뭐라고... 영 포기가 안 되니?’ 알고 보니 작은미미 또한 저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부모님과 동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계속 들어왔더라고요. �

음악만으로 먹고 살 수 없을까? 이 고민을 안 해 본 건 아니에요. 하지만 아주 잠깐이었습니다. 한 번도 음악을 제대로 배운 적도, 노래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상상을 해 본 적도 없는 제가, 우연처럼 시작한 음악으로만 먹고 사는 일을 계획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걸, 그마저도 상당히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그래서 작은미미와 함께 미미시스터즈의 목표와 원칙을 정했습니다.   


1) 가늘고 길게 활동할 것 
2) 둘 중 한 명이라도 반대하는 일은 토 달지 않고 접을 것


미미시스터즈, 우리가 만드는 음악에 대한 진지한 자세는 유지하되, ‘돈 많이 드는 빡센 취미’로 새롭게 정의하자 고민의 방향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가늘고 길게 활동할 방법을 찾기 시작한 거죠.

일단 내가 ‘큰미미’인 것을 받아들여줄 회사를 적극적으로 찾았습니다. 당연히 쉽지 않았죠. 회사 밖에서 음악 하는 것을 인정해주는 것 뿐 아니라, 사진을 찍을 때는 반드시 선글라스를 써야한다거나, 제 실명을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하지 않는다는 번거로운 조건들이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이런 조건들을 어느 정도 받아들여주는 동료들과 클라이언트들을 결국 찾을 수 있었어요.  


콘서트와 페스티벌을 만드는 회사에서는 홍보와 운영을 맡기도 했고, 모 기업의 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공연장에서는 뮤지션 공모 지원 사업과 트리뷰트 앨범, 무대 등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미미시스터즈의 정규 2집과 세 개의 싱글, 에세이도 발간했어요. 

그리고 지금은, 작은 스타트업에서 처음으로 ‘큰미미’라는 명함을 가지고 일하고 있어요. 음악이 필요한 사람들과 뮤지션을 연결하는 플랫폼을 만들면서, 또 다시 신곡을 작업 중입니다.


반은 생활인, 반은 미미인 ‘반인반미’로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모드 전환’입니다. 일할 때는 철저하게 기획자로 일하지만 누구보다 뮤지션의 마음을 잘 알기에 많은 것을 상상할 수 있고, 기획자로서 만나는 뮤지션들에게는 거울처럼 미미의 모습을 엿보기도 합니다. 반대로 미미일 때의 저는, 기획자의 심정에 너무 공감이 되어서 눈치도 보지만, 오히려 미미라는 정체성에 집중하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민폐라는 점을 깨닫고는 조금은 뻔뻔해지기도 합니다. 


지금도 종종 행복회로를 돌려봐요. 음악만으로 먹고 사는 그 날이 오면 나는 정말 음악만 하고 있을까? 의외로 순식간에 ‘No’라는 답이 나오더군요.

누구보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저는 사람을 만나는 일을 즐기고, 그들을 연결시키고 무언가 일을 벌일 때 가슴이 뛰어요. 이런 나는 음악만 하는 삶에 만족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다만, 언젠가 내게 찾아올 ‘사치스러운 삶’을 꿈꾸기는 합니다. 75세의 나이로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윤여정 언니가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면 사치스러운 거'라고 말씀하셨거든요? 그러려면 일단 오래 살고 볼 일이니 꼭 ‘자연사’해야겠어요. | 큰미미(음악가+언니 덕후)


큰미미님에게서 배운 것: 정확하게 정리할 것


큰미미님의 글에서 제가 인상적으로 배운 것은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정리했다'는 점이었어요. 내가 원하는 것과 내게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정리하는 과정이 곧 '재정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 읽기: https://maily.so/draft.briefing/posts/cd81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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