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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행가 Feb 16. 2019

독일 근대 휴양도시 비스바덴

2월 첫째 토요일 피트 몬드리안 전시회를 보기 위해 비스바덴(Wiesbaden)에 갔다.  독일 마지막 황제 빌헴름 2세가 매년 5월이면 방문했다는 휴양도시 비스바덴.  언제 가보나 했는데 독일 온 지 6년 반이 되어 드디어 가게 되었다.  


초행길인데 미술관 근처 실내 주차장이 닫혀 있다.  다른 외부 주차장을 찾아 들어갔다.  아차 싶었던 게 호주머니에 동전이 없었다.  독일 외부 주차장은 대부분 동전을 사용하는데 이런......  어쩔 수 없이 불안한 마음으로 미술관에서 좀 멀리 떨어진 주택가에 차를 세웠다.  토요일 오후이고 주택가라 괜찮겠지 스스로 위로했다.  미술관으로 걸어가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잘 사는 휴양도시라 들었는데 집들이 좋아 보였다. 


피트 몬드리안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중학교 미술 교과서였다.  추상화라며 몬드리안의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Kompostion mit grosser roter Flaeche, Gelb, Schwarz, Grau und Blau, 1921)>과 칸딘스키의 그림이 있었는데 뭐지 했던 기억이 난다. 시험 보기 위해 작품의 작가는 몬드리안이고 네덜란드 출신의 차가운 추상의 화가라고 암기했었다.  보기에 안 추워 보이는데 왜 차갑다는 건지 모른 채 그냥 외웠던 기억이 난다.  나도 그릴 수 있는 그림인데 왜 유명하지 하는 얼토당토 한 철부지 생각을 했었다.  무식했었다.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Kompostion mit grosser roter Flaeche, Gelb, Schwarz, Grau und Blau, 1921)


나이 들면서 몬드리안에 대해 딱히 눈여겨 본건 아니지만 한국에서 가끔 건물 벽면에 몬드리안의 문양과 원색으로 페인트 칠해져 있는 것을 보고 괜찮네 하고 생각이 들었었다.  그리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 같다.


이제 세월이 훌쩍 지나 몬드리안 그림을 직접 보게 되었다.  어릴 때 생각했던 대로 자로 선 긋고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으로 색칠한 그림이 아니었다.  가까이서 보니 손으로 그린 흔적이 보였다.  내공을 직접 느껴진다.  내면의 평화와 질서를 끝없이 갈구한 작가의 삶이 엿보인다.  차고 넘치지 않는 순간을 잡아주는 절제가 보인다.  열정에 찬 빨간색을 안정감 있게 잡아주는 명인의 붓터치가 느껴졌다.  고수가 칼을 내리치는 것을 TV 화면으로 보면 별거 아니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게 되면 그 뿜어내는 에너지에 숨이 멎는 것 같을 때가 있다.  고수는 수십 년을 베고 베어 그 단순하고 깨끗한 칼질을 만들어낸다.


몬드리안의 작품도 수많은 시간과 열정 그리고 탐구와 성찰을 통해 완성되었다.  몬드리안은 굉장히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였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은 넘쳐났다.  그래서 그는 새로운 자신만의 세계를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였다. 


그는 계속해서 잎이 져버린 나무를 그렸다.  풍차도 그의 소재였다.  최종적으로 수평과 수직선 그리고 삼원색으로 완성된 작품이 나오게 되었다. 


그는 전체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고 살아간다는 자체를 거부한 사람이었다.  타인의 방식과 기준을 철저히 거부하고 자기의 내면을 파고들고 자신의 존재를 찾고자 한 예술가였다.  그는 개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정체성을 찾고 자신만의 색깔을 찾으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이미 있는 길이 아닌 자신의 길을 만들어 뚜벅뚜벅 걸어가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몬드리안 작품을 보다가 옆 방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는데 커다란 돌 구조물이 있었다. 돌덩어리들이 수직과 수평 그리고 살짝 각도가 있는 채로 깎여 있다.  전시실로 들어가니 철과 돌, 종이로 만들어진 추상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몬드리안의 정제된 선과 면의 배열보다는 파격적인 모습이었다.  정제된 속에 뭔가가 꿈틀거리면서 다른 공간을 만들고 있었다.  작가 이름을 보니 에두아르드 칠리다(Erduardo Chillida)이다. 

에두아르드 칠리다(Erduardo Chillida) 작품들


돌덩어리에 사각형의 터널을 파고 뚫었는데 과하지 않다.  조그만 창이 달린 중세의 성채를 보는 듯했다.  철 덩어리에서는 전선에서 구리 동선이 빠져나오듯이 둥글게 원을 만들다 만다.  또 다른 작품은 조명을 받아 바닥에 그림자를 만드는데 흡사 피라미드 윗부분을 잘라 놓은 거 같다.  딱딱 떨어지는 모습이 아니라 조금은 여유와 틈이 보인다. 


몬드리안 작품이 안정감을 주는 댄디보이 라면 칠리다의 작품은 갑옷으로 무장한 기사처럼 묵직한 느낌을 준다. 몬드리안 작품이 디지털적이라면 칠리다의 작품은 아날로그적이다.  그림과 조각의 차이인가라고 보기엔 종이 작품도 무겁다.  종이 작품은 흡사 화선지에 커다란 붓을 들고 추사체를 굵게 쓴 느낌이다.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는데 누가 나를 부른다.  전시회가 끝났다고 한다.  보니 전시실에 나만 남겨져 있었다.  후다닥 전시실을 빠져나왔다.  원래는 6시까지인데 다른 일정이 있어 5시까지만 열린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안내방송에서 뭐라 뭐라 했던 거 같다. 

쿠어하우스(Kurhaus)


이미 입구에는 같이 온 한국분들이 있었다.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이 있는 네로베르크(Neroberg)산으로 향했다.  가다 보니 비스바덴 대표 건축물인 쿠어하우스(Kurhaus)가 보인다.  본관 앞 정원(Bowling Green)에 삼단 분수대가 있고 양 옆으로 바로크 양식의 콜로나덴(Theater-Kolonaden)건물이 서 있다.  콜로나덴은 129미터로 유럽에서 가장 긴 기둥으로 이루어진 홀이다.


쿠어하우스 본관을 들어가면 로비 중간에 21미터 높이의 반원 천장이 있다.  그 주변에 황금색과 파란색의 화려한 천장이 돋보이는 대형 콘서트홀, 노란색 대리석으로 만든 와인방(Weinsalon), 조개와 조약돌, 프레스코화로 장식된 조개방(Muschelsaal), 루이 16세 스타일의 방(Salon-Carl-Schuricht) 등 총 12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에서는 각종 콘서트, 회의, 모임, 결혼식, 파티 등이 열린다. 


본관 뒤로는 영국식 정원이 있다.  이곳에서는 3000명을 수용하는 야외 콘서트가 열린다.


쿠어하우스는 처음에는 도박장으로 시작하였다.  도박장을 방문한 사람 중에 유명한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있었다.  1865년 그는 이곳에서 1,000 탈러 상당의 큰돈을 잃는다.  빚쟁이가 된 그는 호텔에 붙잡혀 러시아에 있는 친구인 문호 투르게네프에게 편지를 써서 500 탈러의 돈을 빌린다.  나머지 도박 빚을 갚기 위해 

<죄와 벌>을 쓴다고 출판사와 약속하고 돈을 미리 받는다.  이후 그는 도박 빚을 갚기 위해 많은 작품을 써야만 했다.  쿠어하우스에는 그를 기리는 도스토예프스키 방이 있다.  죽어서도 그는 쿠어하우스에 기여하고 있다. 


많은 돈을 벌게 된 쿠어하우스는 1907년 지금의 모습으로 증축한다.  독일 황제 빌헴름 2세의 찬사를 받을 정도로 돈을 쏟아부어 종합 휴양시설을 만든다.  분수에 넘치게 건물을 지으면 액운이 낀다는 한국의 풍수가 이곳에도 적용됐는지 새로 단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이후 프랑스군과 영국군 주둔과 대공황으로 비스바덴은 쇠퇴하였다. 

러시안 교회(Russische Kirche)


저녁식사를 했던 네로베르크산에는 러시안 교회(Russische Kirche)가 있다.  건축가 필립 호프만(Philipp Hoffmann)이 러시아 여행 후 러시아 양식에 고무받아 지은 교회건물이다.  둥근 황금 지붕이 인상적이다.  교회 근처에는 러시아 묘지(Russischer Friedhof)도 있다.  18세기 러시아 황제 표트르(1672-1725)는 근대화를 추진하면서 독일과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이후 독일 왕족과 러시아 왕족 간의 결혼을 비롯 정치 군사 경제적 교류가 활발하였다.  자연스럽게 휴양도시인 비스바덴에는 러시아 고위 관리와 귀족들이 머물게 되었다.  지금도 비스바덴에는 수천 명이 러시아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거주하고 있다. 

에두아르드 칠리다(Erduardo Chillida)의 고향에 있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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