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에서 나고 자라고 직장을 다녔다. 한글과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는 학교, 직장, 어디서나 공짜로 쉽게 구해서 썼다. 데스크톱과 노트북 등 하드웨어는 돈을 주고 사지만, 소프트웨어는 돈을 주고 사본적이 없었다.
나는 음악을 즐겨 듣는다. 학생 때는 레코드판, 테이프, CD 모으기가 취미였다. 물론 리어카에서 파는 불법 복제 테이프를 사기도 했다. 사기는 애매하고 듣고는 싶고. 그러면 불법 복제된 투명한 테이프를 샀다. 그러나 전축, 테이프 리코더, CD 플레이어가 상할 수 있다는 말에 주로 가게에서 돈을 주고 정품을 구입했다. 방에 레코드판, 테이프, CD가 쌓이면 마음이 풍족했다.
직장을 다니던 2000년대 초반 거래처나 동료들이 음악을 CD로 구워 선물을 줬다. 일하면서 생기는 스트레스를 복제 CD 음악을 들으며 풀었다. 디지털 음원이 나오면서 CD는 사라졌다. 예전에 자랑스럽던 레코드판, 테이프, CD 컬렉션은 창고로 사라졌다. 디지털 음원 시대가 되면서 누군가가 메일로 음원을 보내주었다. 더 이상 음악을 돈을 주고 산다는 생각은 삭제됐다.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학생 시절 한 달에 한 번은 꼭 영화관에 갔다. 학생 때 “스크린”이라는 영화잡지가 유명했다. 잡지에는 소개가 되었으나 국내에는 상영 안 하는 영화가 많았다. 일본 애니메이션도 수입 불가였다. 하지만 나와 내 친구들은 안된다고 안 하는 대한민국 청소년 그룹에 속하지 않았다. 알음알음 입소문을 통해 귀한 비디오를 구할 수 있는 루트는 공유되었다. 삼삼오오 불법 비디오를 빌려 비디오플레이어가 있는 친구 집에 모였다. 자막이 없는 영화는 자막이 없는 대로 서로 내용을 상상하며 보았다. 간혹 일본어 자막이 있는 경우 한자를 보며 내용을 유추하기도 했다.
세기말 밀레니엄 시대, 인터넷은 산업혁명 시대 증기기관이었다. 모두가 인터넷에 빠져들었다. 영화와 드라마를 이메일로 주고받으며 볼 수 있게 되었다.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보거나 매장에서 돈 주고 비디오, DVD를 사는 것은 무의미했다. 왜냐하면 공짜니까.
한동안 독일에서 살았다.
10년 전이다. 한국 여학생에게 빈방을 임대했다. 그녀는 직장에서 6개월 연수를 보내줘서 온 케이스였다. 우리는 빈방을 빌려주어 살림에 보탬이 되고 그녀는 비싼 기숙사비를 아낄 수 있는 거래였다. 경제적 이익이 불편을 훨씬 넘어선다고 생각했기에 만족했다.
어느 날 우편함에서 뮌헨 소재 법률사무소가 보낸 편지를 발견했다. 불안한 마음에 열어보니 불법 영상 다운로드로 900유로를 내라는 벌금 통지서였다. 벌금을 안내면 고발하고 법정에서 보자는 무시무시한 내용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경찰서를 가본 적이 거의 없었다. 과속 벌금 한 번이 전부다. 벌금은 몇 만 원 정도였다. 그런데 900유로. 세종대왕님 얼굴 초상화 14장이다. 그것도 10년 전에.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이역만리 독일 땅에서. 나는 무뚝뚝하고 눈썹을 추켜올린 독일 판사의 고함소리가 상상이 되었다.
나는 불법 다운로드를 한 적이 없다. 누가 보내 준 동영상이나 음원을 받아 본 적은 있어도 불법은 소심한 나에게 먼 이야기였다. 가족 누구도 다운로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학생 방으로 향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계단을 올랐다.
똑. 똑. 학생이 문을 열고 얼굴을 내민다.
“영화 다운로드해서 봐요?”
“네.”
“무슨 프로그램으로 다운로드하는지 물어봐도 돼요?”
“토렌트요.”
나는 벌금 고지서를 보여주었다. 여학생은 많이 놀라는 표정이었다. 900유로는 큰돈이었다. 싼 방 구해서 돈 아꼈다고 좋아했는데.
범인(?)을 찾았으나 난감했다. 왜냐하면 집 인터넷을 사용했기 때문에 벌금 고지서 수취인은 나였다. 장기 거주자인 우리는 비자 갱신이 이슈다. 당시 난민 문제로 시끄럽던 독일은 비자 발급이 엄격했다. 혹시나 이게 문제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우선 본인이 주변에 알아보세요. 삼사일 내로는 이 돈을 보내야 해요,”
“저 내일 그리스로 일주일간 여행 가는데요.”
이 무슨 시추에이션(Situation) 인가? 화가 났지만 참았다.
돈보다는 비자 갱신 걱정 때문에 힘들었다. 여학생은 자기 이름으로 돈을 보내면 혹시 기록이 남는 문제를 고민했다.
나는 메일로 법률사무소에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일주일 후 머뭇거리는 그녀를 반강제로 은행으로 끌고 가 벌금을 이체했다.
이 사건 이후 온라인에서 공짜로 뭐 준다고 하면 우선 조심한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내 이야기이다. 양심에 찔려서 반성하고 조심하는 것이 아니다. 큰 액수의 벌금 때문이다. 이역만리 도와줄 사람 없는 곳에서의 생활. 이솝우화 서울 쥐의 불안한 심정일 때 이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영화, 음악,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때 돈을 꼭 낸다. 몇 푼 아끼려고 하다가 훅 갈 수 있음을 경험했기에. 세상에 공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