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 씨. 누구야? 짜증!”
지갑이 없어졌다.
강철이는 체육시간에 친구들과 농구를 했다. 농구를 하기 전, 스탠드에 웃옷을 벗어 놓았다.
농구는 강철이의 활약으로 가볍게 승리했다. 우쭐한 마음에 휘파람을 불며 스탠스로 걸어갈 때까지는 좋았으나, 웃옷을 들어보니 지갑이 없다.
지갑에는 어제 엄마가 준 용돈 10만 원, 버스카드, 학생증이 들어 있었다.
무엇보다 절망적인 것은 외할아버지가 준 유일한 흔적인 지갑을 잃어버린 것이다. 화가 치밀었다. 강철이의 화난 얼굴을 본 친구들이 자리를 피한다.
“누가 겁도 없이 강철의 지갑을 건들었지?”
“그러게 말이야.”
선생님에게 말을 했으나 별다른 방법은 없는 듯하다. 별로 관심을 갖고 싶어 하지 않으신 것 같다. 다리를 다친 학생의 관리소홀 문제로 학부모와 소송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사제지간의 질서가 무너진 각자도생의 학교라는 세계. 버티고 살아가기 위해선 어린 내가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내 스스로 범인을 찾아내야 한다’
철이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리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눈썹을 치켜뜬 엄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어떻게 엄마에게 얘기하지. 걱정이네.’
이런 일이 있을 때 엄마는 가혹한 처벌을 내린다. 바로 딱밤. 기절을 할 정도로 강력하다. 혼날 일이 있으면 엄마는 항상 딱밤을 날렸다. 학기 초 버스에 가방을 놓고 내린 날 딱밤 두대 맞고 소파에 쓰러졌다.
집에 도착하여 현관문을 열었다. 엄마가 없다. 다행이다. 그러나 엄마의 까칠한 잔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진다. 머뭇거리다 현관 앞에 가방을 놓고 집을 나섰다. 다시 한번 찾아보자는 생각에 학교로 향했다.
강철이가 다니는 삼강 고등학교는 걸어서 20분 거리다.
체육관에 들어가 스탠드 주변을 살폈다. 역시 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탈의실로 갔다. 있을 리가 없다. 배가 꼬르륵거린다. 지친다. 엄마에게 지갑에 대해 이야기할 것을 생각하니 겁이 났다.
새벽닭 울음소리처럼 세차고 앙칼진 목소리가 귀를 때린다. 심장을 콕콕 찌른다. 엄마는 무엇보다 쉬지 않고 쏘아댄다. 절대 지치지 않는다. 특히 눈썹 사이 깊게 파인 두 줄 주름아래 치켜 튼 눈에서 발사되는 레이저 빔과 마주치면 뇌는 정지된다.
숨고 싶었다. 탈의실 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의자에 앉았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저녁 햇살이 발을 감쌌다. 물끄러미 발을 바라보던 눈이 스스로 감겼다.
2.
숙은 눈썹을 치켜뜬 채로 현관문 번호를 눌렀다.
오늘 직장에서 추근대는 김 과장에게 쌍욕을 박아놓고 씩씩대며 집에 오는 길이다. 숙이는 마트 가판대 시식코너 판매 여직원이다.
김 과장은 40대라고는 안 믿길 정도의 겉늙은 외모의 소유자다. 살짝 벗어진 이마. 165센티미터가 안되어 보이는 키. 달마대사처럼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배. 보디빌더와 같은 팔뚝. 부조화 비대칭이다. 균형미라고는 1도 없다.
가판대 시식코너가 한가할 때면 슬쩍 와서 농을 던진다. 닿을 듯 말 듯 요즘바지 잘 어울려) 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참다가 쌍욕을 날렸다. 그러나 그 후로도 계속 치근댄다.
숙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참자, 왕년의 김숙은 이제 없다.’
고교시절 통합 짱 흑거미파 독사 김숙. 숙은 왼손으로 오토바이 핸들을 잡고 오른손으로 쇠파이프로 땅을 끌며 밤거리를 호령하던 모습을 기억해 본다.
‘아. 그때 정신 차리고 공부할걸. 그랬으면 내 인생이 이렇게 꼬이진 않았을 텐데.’
강철의 가방이 현관에 놓여 있다. 식탁에 차려진 밥은 그대로 있다. 약봉지도 그대로다.
‘얘가 어디 갔지? 9시가 다 되었는데.’
3.
숙이는 싱글 맘이다. 강철이와 단둘이 17평 아파트에 살고 있다.
1년 전. 주말에 철이는 하루 종일 잠만 잤다.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하는데. 형편상 학원을 보낼 수는 없고. 인터넷강의를 듣게 하는데 열심히 듣는 거 같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서 유튜브를 보다 잠을 잤다. 답답했다. 화가 났다. 수업 중에도 졸리다고 했다.
쉬는 날이면 숙이는 소주를 마신다. 머리가 멍해지면 고교동창 영과 통화를 한다. 유일한 낙이고 힘든 삶의 위로다.
영은 항상 숙이의 수다와 넋두리를 들어준다. 영은 숙이가 항상 걱정이 되었다. 고교시절 항상 밝고 명랑했던 숙이는 항상 힘들어하고 말에는 화가 섞여 있다.
“강철이가 잠만 자. 그것도 낮에. 고등학교 1학년이니 공부 좀 했으면 좋겠는데. 저런 화상이 없다. 엄마는 먹고살라고 발버둥 치는데. 성격이나 하는 짓은 광희야. 어디로 혼자 도망가고 싶다.”
남편 광희는 고교동창으로 3년 전 죽었다. 퇴근하다 갑자기 길에서 쓰러졌다. 쓰러지면서 머리를 부딪쳤는데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다. 그날 이후 숙이의 삶은 전사의 삶으로 변했다.
“정도가 심하면 병원에 가봐. 몸에 이상이 있을 수도 있잖아. 그리고 너도 술 좀 작작 마셔. 학교 다닐 때도 혼자 그렇게 퍼 마시더니.”
영이는 광희의 죽음을 기억한다. 걱정이 되었다.
숙이도 덜컥 겁이 났다. 술이 확 깼다.
4.
대학병원 의사는 차가웠다.
“기면병이네. 유전일 수도 있고 뇌에 이상일 수도 있고. 초기증상 같은데 검사를 좀 더 해보자고.”
어린 게 반말이다. 순간 욱했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강철이를 진찰한 의사에게 삼강오륜을 가르칠 수는 없었다.
‘내가 동안이라 20대로 보이나 봐.’
‘남자들의 로망이던 김숙은 죽지 않았나 보네.’
스스로 세뇌하고 인간승리의 과정을 거치며 되새김질했다. 그리고 짧은 심호흡을 했다. 열기 섞인 호흡이 코끝으로 전해졌다.
“일반적으로 항상 졸려. 수업 중에도 졸리고 밥 먹고 나서도 졸리고. 심하면 대화 중이나, 책을 읽거나, 영화 보다가 갑자기 자고 그래. 감정적으로 격하게 놀라거나, 화가 나거나, 웃을 때, 갑자기 근육에 힘이 빠지면서 쓰러지기도 해. 환각에 빠지는 경우도 있고.”
의사가 숙이 가슴을 슬쩍 본다. 순간 숙이의 눈에서 레이저 빔이 발사되고 의사는 눈을 깐다.
“음. 검사를 좀 더 진행하고 지켜봅시다.”
진료실 문을 닫고 나오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광희도 기면병이었을 수 있겠다 싶었다. 잠이 무척 많은 남편이었다. TV를 보다가 소파에서 잠을 잤다. 어디든 기대거나 누우면 잠을 잤다. 철이가 기저귀 차던 시절 새벽에 울어대는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잘 잤다. 꼬집어도 둔한 건지 반응도 없이 그렇게 잘 잤다. 짜증만 내지 말고 병원이라도 가볼 걸 후회가 되었다.
5.
숙이는 급히 강철의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들이 알 리가 없다. 갑자기 손이 떨린다. 주저앉았다. 머리가 핑 돈다. 거실 바닥에 누웠다. 허연 천장 벽지는 곳곳이 때가 끼여 누렇다. 힘들다.
삐비빅. 탈칵.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강철이다.
“왜 이리 늦었어. 지금 몇 신지 알아! 고등학교 2학년이 그렇게 싸돌아 다니면 어떻게 해. 언제 정신 차릴래.”
철이는 물끄러미 엄마를 본다. 엄마의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다. 이때다 싶었다.
“실은 지갑을 잃어버려서. 학교에 다시 갔다가.”
숙이는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말에 화가 났다. 육두문자가 입안에서 나오는 걸 간신히 집어넣었다.
강철이가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더 컸다. 숙이의 목소리는 컸지만 날이 서있지는 않았다.
“깜빡 잠이 들어서.”
잠이 들었다는 말에 덜컥 겁도 났다. 숙이의 목소리는 다소 부드러워졌다.
“됐어, 밥 먹어.”
숙이는 식은 국을 다시 데웠다.
강철이는 밥을 먹다 불현듯 엄마를 본다.
“나 오늘 아빠 만났어.”
“외할아버지도 봤어.”
“외할아버지가 지갑 잃어버린 거 괜찮데. 다시 사 주신다는데. 크흐흐. 아빠랑 농구를 했어. 내가 아빠 위로 점프해서 덩크슛을 넣었다. 아빠가 나를 안고 너무 좋아하던데.”
“그러다 눈을 떴어. 탈의실 문을 열고 나오는데 아빠가 말했어. 괜찮다고. 철이는 잘하고 있다고. 괜찮다고.”
“아빠가 엄마 보고 괜찮다고, 모든 게 잘 될 거라고 전해 달래.”
강철이는 숙이를 차마 바라보지 못한다. 숙이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말이 안 나왔다. 왼쪽 가슴 한 귀퉁이가 살짝 뻐근하면서 답답하다.
숙이는 마냥 강철이를 바라보지 못했다. 베란다 거실창에 철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등이 굽어 보이는 철이가 안쓰럽다. 광희가 살아있을 때는 항상 웃는 얼굴이던 강철이였다.
“허리 세우고 어깨 피고 다녀.”
철이가 숙이를 바라본다. 그리고 허리를 곧게 펴고 어깨를 올린다. 부자연스럽고 우스꽝스럽다. 자기도 어색한지 눈가에 웃음을 띄운다.
숙이도 웃는다. 눈도 웃고 입도 웃는다.
“웃으니 좋네.”
6.
숙이는 화장대 앞에 앉았다. 거울 속에 자신을 본다. 억지미소를 지어본다. 눈 코 입 귀 이마에 주름이 보기 싫다.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광대뼈에 힘이 풀린다. 눈을 깜박여 본다. 코로 숨이 급하게 들어온다.
거울 속 자신의 눈을 응시한다. 굽은 어깨가 눈에 들어온다.
거울 속의 숙이가 다정히 바라본다.
“괜찮아. 숙아. 괜찮아.”
화장대 거울 앞에 놓인 가족사진 속 광희가 환하게 웃는다. 숙이도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다짐한다.
“김과장, 이 새끼 내일 박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