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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jin Park Feb 20. 2019

2월, 냄비나 화분을 중간에 두고 나누는 이야기

너무 다른 배경의 사람들과 어울려야 할 때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갑작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개의 죽음’으로 이 책은 시작합니다. 사회학자인 저자 기시 마사히코는 오키나와 출신의 연구 대상자를 인터뷰하다가 인터뷰이의 아들이 “개가 죽었어”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 죽음은 연구와 아무 관계가 없었고, 인터뷰이 역시 잠깐 침묵했을 뿐 별 반응 없이 그대로 인터뷰를 이어나갔지만, 정작 마사히코의 마음에는 그 일이 오래도록 남아있게 됩니다. ‘그 개는 얼마나 귀여움을 받았을까?’, ‘인터뷰이는 인터뷰 후 눈물을 흘렸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강렬한 것은 그 일의 ‘무의미함’이었다고 저자는 회고합니다. 그런 사건이야말로 아귀가 맞지 않는 퍼즐 조각처럼 맥락에서 떨어져 나온 채 굴러다니는 삶의 ‘단편’ 같은 것이었다고요.


우리의 삶은 사실 저런 단편들을 한 데 쑤셔 넣은 채 지퍼를 억지로 닫아놓은 가방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 무의미함이 주는 혼란과 불안을 견딜 수 없어서 우리는 매끄러운 서사를 지어내곤 하지만, 두고두고 악몽처럼 튀어나오며 시야를 가리는 것은 우연, 광기, 돌출 행동, 스스로도 납득할 수 없고 함부로 널어놓은 빨래처럼 펄럭이는 불현듯한 감정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쉽게 이해한다고 단정해서는 안됩니다. 단편들을 뒤죽박죽인 채로 드러내는 묘사야말로 인간의 삶과 그 삶들이 모여 있는 사회에 대해 가장 충실하고 정직하게 이야기하는 방식이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 무기력함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겨우,  전혀 다른 사람들과 이어질 수 있는 틈이 생깁니다. 누군가를 차별하거나 배제하는 마음의 뿌리에는 어떤 삶이 옳거나 가치 있거나 자연스럽다고 여기는 오만함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사히코의 언급처럼 우리를 겁먹게 하는 ‘모르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을 굳이 직면하려고 할 때 오히려 탈이 생깁니다. 차라리 그와 내가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중간에 놓인 맛있는 음식 냄비나, 식물이 심긴 화분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하지요.


이 책을 읽다가 저 역시, 오래 사로잡혀 있던 기억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7년 전 사회부 기자였을 때 겪었던 사건으로, 한 아주머니가 6세 여자아이를 유괴해 자신의 딸로 삼았던 일입니다. 그 아주머니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고 싶었지만 잘 되지 않았고, 남편의 마음이 멀어지는 것 같아 임신했다는 거짓말을 해버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후에 남편이 출장 간 틈에 혼자 아이를 낳아 다른 지역에 살고 있던 언니에게 맡긴 척했고, 아이를 데려오라는 남편의 채근이 심해지자 놀이터에서 여자아이를 꾀어간 것이었죠.


경찰이 찾아갔을 때, 그녀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몇 년 간의 거짓말과, 거짓말이 낳은 거짓 믿음으로 위태롭게 쌓아 올린 자신의 세계가 우르르 무너져 버린 순간이었을 텐데요. 그 마음을 결코 다 짐작할 수가 없어서, 저는 무참한 기분까지 들었고 아직까지도 막막함이 남아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인생의 가방 밖으로 비어져 나오는 단편이 있으신가요? 그것들을 솔직하게 꺼내어보는 것으로부터 우리는 새로운 생각을 시작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 페이지, 읽어보세요!


어떤 사람이든 다양한 ‘서사’를 내면에 담고 있다. 그 평범함, 보통다움, ‘아무것도 아님’과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마구 쥐어뜯기는 것 같다. 우메다 번화가에서 옷깃이 스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각자에게 ‘아무것도 아닌, 보통의’ 이야기를 붙잡고 살아가고 있다. 평소에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숨어 있는 인생의 이야기가 구술 채록의 현장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현장에서조차 뜻하지 않게 이야기가 늘 새롭게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실은 이런 이야기가 딱히 숨어 있는 것은 아니지 싶다. 그것은 언제나 우리 눈앞에 있고, 우리는 언제나 그것과 접촉할 수 있다. 우리가 눈으로 보면서도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것은 얼마든지 있다.(29)


사실은 남자나 여자나 상관없이, 오사카의 할머니들처럼, 전차 안에서, 길 위에서, 가게 앞에서 학교에서 가볍게 말을 걸고, 가볍게 화분을 주고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무언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언제나 겁을 먹고, 불안해하며, 공포를 느낀다. 차별이나 폭력의 대부분은 그런 불안이나 공포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오사카의 할머니들이 딱히 차별을 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어디에서든 스쳐 지나가는 사람화분과 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 또는 화분 자체를 교환하는 것이 어쩐지 무척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뜻이다.(50)


현재 그녀는 우선 고등학교 졸업장을 취득하기 위해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는 한편, 싱글맘이나 ‘밤일’을 하는 여성들을 지원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그녀에게는 밤일이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창이었다.

밤일이 좋다는 둥 나쁘다는 둥 그런 논쟁도 있겠지만, 창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주변에 널려 있구나 생각했다. 어떤 때는 책이 창이 되었고, 어떤 때는 사람이 창이 되었다. 많은 사람에게 음악도 그러할 것이다. 그것은 때로 생각지도 못한 장소로 반쯤 강제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83)     


어떤 종류의 웃음이란 마음속 가장 깊은 구석에 나 있는 캄캄한 구멍 같다. 무슨 일이 있으면 우리는 거기에 숨어 들어가 바깥세상의 돌풍을 넘겨 낸다. 그렇게 우리는 균형을 취하며 겨우 겨우 살아가고 있다. (101~102)


*이 매거진에서 소개하는 책은 서울 은평구 대조동에 위치한 동네 카페 '다-용도실'@da_yongdosil 내 공유 서가 '멈포드의 서재'@mumford_salon 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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