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oojin Park May 28. 2019

5월, 끝까지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단지 그 꿈

동네 활동하기 <정신은 좀 없습니다만, 품위까지 잃은 건 아니랍니다>

나는 어디에서 어떻게 늙어가게 될까. 은퇴 후 일상의 적적함을 달래려 송아지만한 개 두 마리를 기르며 사는 어머니를 보며, 암 수술 후 후유증을 앓다가 요양원에 들어간 이모의 안부를 들으며, 회사를 그만 두고 지역 공동체에서 활동하러 귀촌한 선배와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합니다. 먼저 살아간 사람들의 소식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라는 질문이 ‘나이듦’과 ‘죽음’에 맞닿아 있음을 불현듯 환기시킵니다. 


늘 그곳에 놓여 있던 바위의 존재를 비로소 알아차린 것처럼, 그 질문이 마음에 무겁게 밟히기 시작한 어느 날 일본 후쿠오카시에 있는 특별한 노인 요양 시설 ‘요리아이’에 대한 이 책을 발견했습니다. 나이가 들어 기운이 없고 정신이 좀 혼미한, 세간에서 비극적인 어조로 ‘치매 노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이라고 하면 덜컥 겁부터 먹을 법한데 웬걸, 책의 첫머리가 너무나 명랑하고 유쾌해서 푹 빠져 읽게 되었습니다. 

요리아이의 풍경은 이러합니다. “노인 둘이 사소한 문제로 말다툼을 시작하자 다른 노인들이 중재에 나섰다가, 다시 사소한 것이 빌미가 되어 말다툼은 한층 더 격렬해지고 직원이 끼어들면서 상황은 이해하기 어려운 사태로 발전한다. 그때 누군가 ”아, 이런 데 왜 만두가 떨어져 있지“라며 둥글게 말려 있는 베이지색 양말을 집어 들어 입으로 가져가려 한다. 그것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는 노인이 있고 주변에서 떠들거나 말거나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잠이 드는 노인이 있다.” 그리고 이 엉망진창이고 뒤죽박죽인 상황을 굳이 줄 세우거나 틀에 집어넣으려 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관리와 감독에서 자유로우며 지배나 속박과는 거리가 먼 시설, 아무리 보아도 시설로 보이지 않는 시설.” 끝내 각자의 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는 삶의 환경을 만드는 일은 이상적이지만, ‘효율’과는 너무 멀고, 따라서 험난하고 가난한 길이지만, 이 시설의 직원들은 기꺼이, 적자를 메우기 위해 돌봄 노동 외에도 대규모 바자회 개최, 잼과 티셔츠와 책 판매 등등의 ‘부업’을 한다고 합니다. 


요리아이 대표인 무라세 다카이씨도 ‘치매에 걸려도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제목의 강연을 해서 강연료를 벌어들이고 있습니다. 요리아이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요양 시설에 들어가기를 완강하게 거부했던 한 할머니였다고 하는데요,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자신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집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겠다는 그녀의 의지에 감명을 받은 무라세씨가 그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일상을 즐길 노인들을 모아 만든 것이 바로 요리아이였다고 합니다. 


그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일상을 즐기는 것. 요리아이가 가장 큰 가치를 두고 있는 이 소박하디 소박한 목표에는 곱씹어볼수록 마음이 뭉클해지는 데가 있습니다. 죽음을 앞두어야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니까요, 사실 그것 없이는 어떤 연령대의 삶도 인간다울 수 없는데, 우리 사회가 저만치 미뤄두고 버려둔 목표이지 않나요. 요리아이는 그 점을 치매 노인들의 가족들에게, 동네에, 일본사회의 곳곳에, 그리고 세계의 독자들에게 일깨워줍니다. 노인들을 격리시키는 시설이 아니라, 노인들의 삶을 지역과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시설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 페이지, 읽어보세요!


“저, 가노코씨, 이번에 지교의 ‘요리아이’에 오실 때....... 그 왜 당신, 오토바이를 타고 오잖아요. 그때 고추 좀 내놓고 와주실 수 있어요?” 

“네?”

“아니, 요즘 지교의 ‘요리아이’는 왠지 너무 진지해져서 재미가 없어요. 당신이 고추를 내놓은 모습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툇마루 쪽으로 들어와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서요.”

“오토바이를 탄 바바리맨이 되라는 말씀입니까?”

“네, 헬멧은 쓰고 있지만 하반신은 알몸인 상태로 오토바이를 타고 오면 웃기지 않겠어요? 노인들도 틀림없이 좋아할 거예요. 어때요? 고추 좀 보여줘요.” 

“아니, 그런 모습으로 오토바이를 타면 경찰에게 체포당합니다.”

“그 정도는 우리가 알아서 할게요. 아르바이트 수당도 지불할게요. 네? 네? 그리고 이건 희망사항이지만, 그걸 내놓고 오토바이를 타고 들어온 다음에 마당에서 한 바퀴 굴러주면 더 재미있겠어요. 네? 네? 아르바이트 수당은 충분히 지불할게요. 네?”(48~49)


진정한 안도감은 돈으로 살 수 없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안도감은 결국 지불한 금액만큼만 손에 쥐는 등가교환의 상품권이다. 멋지고 화려한 팸플릿에 쓰여 있는 희망에 찬 문구는 진정한 희망을 줄 수 없기 때문에 멋지고 화려하게 장식하는 것이다. 그런 존재에게 무엇인가를 맡길 수는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실제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마음속으로 느낀 것,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마주하고 정신없이 대화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나는 인정 같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어려운 지경에 처할 때도 우리는 하나라는, 그런 소박한 사고 속에 돈과는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무언가가 깃들어 있다...... 이런 진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77)


보기는 내게 ‘요코친’이란 ‘밀려난 인간’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예를 들어, 놀이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아이는 팬티 옆으로 고추가 나와도 신경 쓰지 않고 놀이에만 집중하지요. 너무 집중한 끝에 소변이나 대변이 마려워도 위험 수준에 이를 때까지 참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기도 모르게 실례를 하기도 하지요. 저는 그런 걸 보고 싶습니다. 그 정도로 몰두해 전혀 한눈을 팔지 않고 무엇인가에 열중하는 모습...... 또는 그렇게 열중한 결과 세속적인 영역에서 ‘밀려나’ 버린 사람에게 진정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아, 인간이 이루어야 할 예술의 기본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세속에서 ‘밀려난’ 것을 꾸짖거나 단속하거나 팬티 안으로 다시 밀어 넣을 게 아니라 긍정적으로 보고 인정해주어야지요. 그래서 제가 ‘요코친’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172~172)


오바씨는 시모무라를 처음 만났을 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여기서 살다가 객사할 각오가 돼 있는 사람이야!" 대체 '객사할 각오'란 어떤 각오일까. 무엇이 시모무라를 움직인 걸까. 시모무라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화가 났기 때문에 지금까지 계속할 수 있었던 거예요"라고. 무엇에 그렇게 화가 났던 걸까. 제도에 대한 분노, 시설에 대한 분노, 노인을 대하는 세태에 대한 분노. 

하지만 정말 그뿐이었을까. 

무라세는 ‘치매에 걸려도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제목으로 강연을 계속하고 있다. 노화현상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 ‘치매’를 마치 업병(전생의 악업 때문에 생긴,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병)처럼 취급하고 “예방하자!”라고 외치는 세상의 풍조에 대해 “정말 그럴까요?”라고 되물으며 ‘치매 세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풍요로운 삶을 소개하면서 돌아다닌다. 이미 15년 가까이 이런 이야기만 하고 다닌다. 이유가 뭘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치매에 걸려도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말이 성립하는 이유는 ‘치매에 걸리면 평범하게 살 수 없는 사회’이기 때문이리라. 왜 이런 사회가 되었을까. 누가 이렇게 만들어버렸을까. 단순히 ‘치매’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정든 집과 이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비극에 종지부를 찍는 사람은 누구일까. 내쫓듯 노인을 시설에 들여놓은 이후에 마음 놓고 살아가는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그건 그렇고......(189~190)


‘자기 책임’이라는 말이 ‘늙음’이라는 불가항력의 영역에까지 미치게 된 이후, 사람들은 두려움에 젖어 노화 예방과 치매 예방에 모든 신경을 쏟게 되었다. 특별한 문제 없이 자연스럽게 늙어서 서서히 저세상으로 가는 것을 사치라고 불러야 할 시대가 다가온 것이다. 어쨌든 국가는 생존권에 귀속되는 간병 문제를 서비스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민간에 위탁하여 해결하는 길을 선택했다. 결국 간병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부동산 회사나 건축 회사, 이자카야 체인점까지 간병 사업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이 정책은 이미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은 옵션이 추가되는 방식으로 진행될 테고 향후 간병 업계에서는 그런 방식을 기준으로 삼게 될 것이다. 즉 모든 수고를 돈으로 살 수박에 없는 서비스 제공 시스템인 것이다.(207~208)


*이 매거진에서 소개하는 책은 서울 은평구 대조동에 위치한 동네 카페 '다-용도실'@da_yongdosil 내 공유 서가 '멈포드의 서재'@mumford_salon 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5월, 함께 춤추듯 함께 일한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