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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jin Park May 29. 2019

5월, 거창한 아이디어 말고 그저 훈훈한 소문 하나

동네 활동하기 <디자인이 지역을 바꾼다>

일본 아오모리현 하치노헤시의 한 상점가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가게 쇼윈도에 말풍선 형태로 “둘이서 게를 먹으면 사랑이 이뤄져요!”, “지하 도시락만 먹어서 3kg이 빠졌어요!” 등등의 반신반의한 이야기들이 붙기 시작한 것이지요. 믿거나 말거나,지만 단지 그런 말풍선이 붙어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관심을 가졌고, 주인에게 한 마디를 더 건네게 되었으며 도대체 이 소문의 근원이 어디인지를 궁금해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하치노헤시의 마을 활성화 시설인 ‘핫치’에서 벌인 일입니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좋은 시설이 들어선다 해도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동네는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디렉터 요시카와씨와 아티스트 야마모토씨, 그리고 이들과 함께 하는 스태프들은 상점가를 돌아다니며 가게 하나 하나를 취재했습니다. 그리고 주인들의 이야기 중 재미있는 것을 골라 ‘소문’으로 만들었던 것이지요. 이 프로젝트가 마을을 훈훈하게 만들었다는 소문은, 일본 내 다른 상점가에서도 너도나도 소문 퍼뜨리기에 뛰어든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책에는 하치노헤시에서처럼, 지역의 문제를 사람들이 참여하는 행위로 해결한 가지각색의 사례가 실려 있습니다. 이러한 행위를 바로 ‘디자인’이라고 정의하는 것이지요. 기후 변화부터 고령화, 경제양극화와 실업 등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해 지역마다, 지역 특유의 문화를 바탕으로 주민들이 스스로 해내려고 했던 일들은 우리에게도 영감과 용기를 동시에 줍니다.   


기반 산업의 쇠락으로 인구가 줄고 활기가 떨어진 섬을, 외부 청년들이 찾아낸 매력으로 다시 홍보해 관광지로 만든 이에시마, ‘애처가의 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은 마을에서 실제로 애처가 협회를 만들고 ‘양배추밭 중심에서 아내에게 사랑을 외치는’ 행사 등 재미있는 이벤트를 열어 사람들을 모은 쓰마고이촌, 요리를 잘 하는 지역 주민들이 돌아가면서, 그리고 도와가면서 식당을 운영하는 일일 셰프 시스템을 도입한 욧카이치시 등의 사례를 넘겨보다 보면 중요한 것은 단지 기발하거나 엄청난 아이디어가 아니라, 사람들이 즐겁게 꾸준히 할 수 있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 페이지, 읽어보세요!


우리는 디자인이라는 행위를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문제의 본질을 한꺼번에 포착해서 거기에 조화와 질서를 가져다주는 행위 

-아름다움과 공감으로 대다수 사람들의 마음에 호소해 행동을 환기시키고 사회에 행복한 운동을 일으키는 행위 (4)


‘가능합니다 제킨’이란 자원봉사자와 재난을 당한 사람, 자원봉사자끼리, 재난을 당한 사람끼리의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히 하는 툴입니다. 동일본 대지진에 대해, 고베대지진의 교훈이나 경험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도록 고안됐습니다. 제킨의 색은 4가지 색, 붉은 색은 ‘의료·간병’, 푸른 색은 영어, 수화 등 ‘언어’의 지원, 노란 색은 목수나 법률 등 ‘전문기술’, 초록색은 힘쓰는 일이나 밥 짓는 일 등 ‘생활지원’을 의미합니다. 웹사이트에서 자유롭게 다운로드·인쇄해 ‘자신이 가능한 일’과 함께 이름을 써넣어 고무테이프로 등에 붙여 사용합니다. 누구라도 어디서든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이 제킨은 3가지 기능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는 자원봉사자 자신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하는 것으로 참가목적을 명확히 해 책임있는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재난을 입은 사람이 자원봉사자의 기술을 이해해 부담없이 부탁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재난을 입은 사람도 사용해 재난을 입은 사람끼리 대화를 나누고 서로 돕는 싹을 틔우는 일입니다.(158~159)


2011년 마을 활성화를 목적으로 ‘하치노헤 포털 뮤지엄 핫치’가 문을 열었습니다. ‘핫치’는 마을 만들기, 문화예술, 관광, 물건 만들기, 자녀양육 등을 축으로 하는 활동을 지원하는 시설입니다. 그러나 시설을 만드는 것만으로 마을 활성화는 실현되지 않습니다. 

“상점가 사람들이 바뀌지 않으면 마을은 바뀌지 않는다.” 핫치의 디렉터 요시카와씨는 그렇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은 매력적임에도 서로의 접점이 적고,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상점가, 개개 상점, 그리고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시발점을 만들자. 이렇게 해서 ‘하치노헤의 소문’ 프로젝트가 시작됐습니다. 

주역은 상점가 사람들입니다. 상점에는 없는 ‘사람’에게 흥미를 갖기 때문에 아티스트인 야마모토 고이치로씨의 ‘마을의 소문’ 프로젝트를 이용하기로 한 것입니다. 야마모토씨가 하치노헤시 중심가에 있는 100곳의 점포나 사업소를 한집 한집 취재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조그만 자랑거리나 취미나 고민, 즐거웠던 일 등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말풍선’ 형태의 실에 인쇄해 점포나 사무소에 붙이는 것입니다. 말풍선의 수는 약 700개. 1개월간에 걸쳐 노란색으로 시대에 맞게 세련된 말풍선이 마을을 돋보이게 했습니다.(166~167)


붙여진 ‘소문’은 ‘지하 도시락으로 3kg 살이 빠져요!’, ‘둘이서 게를 먹으면 사랑이 이뤄져요!’, ‘아키타 미인이 둘이나 있어요!’ 등등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걱정되는 소문까지 가지각색입니다. 그렇기에 그 상점이나 회사 사람의 사람됨이 보여 새로운 발견이 있는 것입니다. 소문의 말풍선은 지금까지 이야기한 적 없는 사람끼리 이야기할 계기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야마모토 씨가 작업하는 갤러리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세대나 상점가를 초월해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좀처럼 넘어서지 못했던 벽이 상당히 낮아졌습니다. 조그만 것들이 점점 쌓여서 어쨌든 커다란 마을의 변화로 연결돼 간다. 이 프로젝트는 그러한 조짐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준 것이었습니다. 

하치노헤에서는 취재를 담당하는 것은 지역 주민인 ‘핫치’의 스태프입니다. ‘핫치’의 스태프가 마을의 ‘소문’을 찾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가교가 되는 것, 그것이 목표입니다. 

‘마을의 소문’ 프로젝트는 가와사키시 노보리토나 센다이시 상점가 등에서도 실시되고 있습니다. 마을의 소문은 활기를 잃어가고 있는 전국 각지의 상점가를 빛나게 하고, 지역 사람들을 활기차게 해줄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168)


*이 매거진에서 소개하는 책은 서울 은평구 대조동에 위치한 동네 카페 '다-용도실'@da_yongdosil 내 공유 서가 '멈포드의 서재'@mumford_salon 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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